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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미안 살고 루이비통 두른 '마이너스 인생'

[창간기획-저성장·저금리, 삶을 뒤흔든다]<3회>
①'빚 권하는 사회' 저금리 대출의 역설

머니투데이 오정은 기자 |입력 : 2014.06.24 08:37|조회 : 168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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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백모씨(39·서울 영등포구 당산동)는 늦깎이 장가를 가면서 연 4%짜리 전세자금대출 2억원을 받아 래미안 24평 3억 전세집에 들어갔다. 주변에서 과도한 대출을 만류했지만 부부합산 연봉이 1억원이니 2억 정도는 금방 갚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매달 나가는 이자는 부담이지만 집 열쇠고리에 반짝이는 '래미안' 세 글자를 볼 때면 뿌듯함을 느낀다.

돈의 값이 싸졌다. 새내기 직장인의 '로망'이던 1억원의 현금도 월 30만원의 이자(금리 3.7% 기준)만 내면 쉽게 빌리게 됐다. 시중금리가 2.50%로 주저앉으며 대출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만만한' 세상이 도래했다.

저금리 시대, 신입 직장인의 필수 금융상품으로 꼽히던 '3개의 통장(청약저축·장기주택마련저축·정기적금)'은 이제 '3가지 대출(주택담보대출·자동차할부금·마이너스통장)'에 자리를 내줬다. 싼 대출, 안 받으면 손해인 '빚 권하는 시대'다.

이미지=김지영 디자이너
이미지=김지영 디자이너
◇"싼 이자? 30년 더해보니 '원금'"=저금리의 도도한 물결 속에 가계대출은 매달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2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485조3000억원으로 전월비 약 1.9조원 증가해 다시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는 올해 들어 5개월 연속된 사상 최대 기록이다.

저금리에 돈을 빌려 다른 곳에 투자하는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도 흔해지고 있다. 회사원 고강인씨(42·서울 중랑구 묵동)는 "최근 주택담보대출을 3.5%에 받으면서 재테크용으로 3000만원을 더 빌렸다"며 "금융상품 투자로 연 4% 정도 수익은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재테크로 고수익을 추구하기 힘든 저금리 시대 연 3~4% 이자를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예금 금리가 연 2%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4% 이자에 해당되는 돈을 저축·재투자했을 때 기회비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정선 TNV 어드바이저 대표는 "투자로 연 4% 수익을 내기 어려워진 환경을 감안하면 연 3.6% 이자는 결코 적지 않다"며 "대출을 받는다는 건 그만큼 미래의 자원을 끌어다 쓰는 대가를 치르는 일이므로 가능한 대출을 최소화해 가계 재정을 꾸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례로 1억5000만원을 3.6%에 빌렸다면 10년간 부담해야 할 이자는 만기 일시상환의 경우 5400만원, 원리금 균등분할상환은 약 2900만원이 된다. 월 45만원을 연이율 3% 복리로 저축하면 5400만원은 6200만원짜리 기회비용이 된다. 즉 대출받는 대신 3.6%에 해당되는 돈을 3%로 10년 굴리면 6200만원의 현금을 쥐게 되는 것이다.

부담을 줄이기 위해 상환 기간을 30년으로 늘리면 이자는 눈덩이로 불어난다. 1억5000만원을 연 3.6%에 30년간(3년 거치, 원리금 균등상환) 빌리면 총 이자는 1억930만원이다. 상환기간이 늘자 이자가 복리로 불어나서다. 저금리라도 장기가 되면 가계 재정을 갉아먹는 '밑 빠진 독'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금리가 오르면 이자는 원금에 필적하게 된다.

박영철 신영증권 청담지점 지점장은 "미래 현금흐름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규모 대출을 받으면 투자로 자산을 축적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며 "저금리라고 이자를 쉽게 생각했다 원리금 상환이 시작되면 인생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빚 내서라도 중산층 되고 싶다"=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특히 주택담보대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5월 국내 은행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전월비 2조원 증가한 334조6000억원(은행 가계대출의 69%)을 기록했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늘리고 있으며 특히 이자를 감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수 억원대 대출도 서슴없이 받는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사면 집값이 올라 이자비용을 상쇄했다. 지금도 여전히 단돈 몇 천 만원만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은행 차입을 통해 주택을 구매하는 사람이 많다. 내 집 마련에 대한 한국인 특유의 집착과 고성장기의 부동산 불패 신화가 맞물린 결과다.

이런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집값 하락의 전조인 출생률 하락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지철원 미래와금융 연구포럼 연구위원은 "예전에는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을 사면 집값이 이자보다 더 빨리 올라 재산이 됐다"며 "하지만 이제 인구 구조상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낮아 과도한 차입을 통한 주택 구입은 위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남들 시선 때문에' 무리한 대출을 받아 비싼 집을 사거나 과분한 전세에 대출로 들어가는 경우다. 특히 경제성장기를 향유하며 자란 20~30대는 체면 때문에 속 빈 강정이라도 그럴 듯한 구색을 갖추고 싶다. 30대 초반에 24평 아파트, 중형차 한 대 정도는 소유해야 한다는 허세 신드롬이 이들을 저금리 대출로 내몬다.

TNV어드바이저 백 대표는 "요즘 젊은 세대는 '주변에서 이 정도는 하는데'라는 생각으로 소득과 무관하게 무리한 대출을 받곤 한다"며 "저금리 때문에 대출에 무감각하게 지내다 원리금 상환이 시작돼 고통받는 사례가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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