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박 10일 만화가 지망생의 '지옥캠프'를 가다

- "만화 외인구단 지옥캠프? 그림쟁이들의 천국이 따로 없다"
- 이현세 작가 등 현역 10명의 멘토...네이버 문화재단 후원 외부로 문호 개방
















# 세상에 좌절한 프로야구 선수들이 '지옥캠프'를 통해 재활훈련을 마친 후 대변신에 성공, 코리안 시리즈에 도전한다. 결국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이들이 지옥캠프에서 자신을 이기기 위해 보냈던 피흘리는 노력은 많은 소년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만화가 이현세 작가(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 학과 교수)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현실 공간에서 재연됐다. 프로야구 선수가 아닌 만화가 지망생이라는 점이 차이이지만, 9박 10일간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공간에서 오로지 작품에만 열중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공포의 외인구단에 등장한 지옥캠프와 비교해도 긴장감은 떨어지지 않았다.

마감을 앞두고 캠프 참가자들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달 30일 경기도 가평 좋은아침 연수원에서 진행된 '대학생 만화창작 지옥캠프' 현장을 방문했다. 지옥캠프라고 하기에는 시설도 깔끔했고, 마귀같은 조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작업에 몰두하는 참가자와 이들을 지도하는 현역 작가들만이 캠프의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작품 마감에 심혈을 기울이는 대학생 만화창작 지옥캠프 참가자들

"내일이 마감이라 작업 중인 학생들에게는 되도록 말씀을 거는 것은 삼가 주세요."

캠프의 진행을 담당한 김형남 코멘트 프로덕션 대표는 학생들이 마감을 앞두고 극도로 예민해져 있어 작업하고 있는 학생들과의 접촉은 피해 달라고 당부했다.

조용히 작업실 문을 열었지만, 문 여는 소리에도 누구 하나 신경을 쓰는 참가자는 없었다. 오로지 모니터와 준비해온 콘티(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각본을 바탕으로 필요한 상황을 정리해 놓은 얼개)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작품을 완성하는데 몰두해 있었다. 작업실 문 앞에 쌓여있는 커피믹스 박스가 작업에 집중하는 학생들을 대변하고 있었다.

장시간 작업에 지친 학생들은 조용히 복도로 나와 쉬기도 했다. 대번에 보아도 며칠은 날을 샌 것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피곤함이 느껴졌지만, 잠시 휴식을 마치고는 다시 작업실로 들어가 작업에 집중했다.

엄격한 콘티 심사를 바탕으로 선발된 100여명을 참가자들은 마지막 날까지 이탈자 한 명 없이 작품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작품을 그리다가 막히는 순간이 오면 지옥캠프를 이끌어온 이현세 작가와 이두호 작가를 비롯해, 김우준, 원현재, 양예환 작가 등 현역 자가 10여명에게 언제든지 질문을 던진다.

지옥캠프에 견학온 한국애니메이션 고등학교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는 이현세 작가.

멘토로 참가한 김우준 작가는 "나 역시 대학시절 캠프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던 공간"이라며 "만화가가 되기 위해 이렇게 몰두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많은 자극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옥캠프는 이현세 작가가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 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해오던 학과 행사였다. 지금까지 지옥캠프를 거쳐간 작가만 해도 하일권, 국중록, 이상신 등 국내 웹툰계를 대표하는 작가들로 즐비하다. 올해부터는 네이버 문화재단의 후원으로 학교 행사를 외부로 문호를 개방했다.

이현세 작가는 "제자들만 대상으로 하다가 이렇게 문호를 넓히니 전국에 있는 만화 지망생들이 모두 몰려온 것 같다"며 "제자들에게 프로 만화가가 어떻게 생활을 하는지 알려주기 위해 시작한 캠프가 이렇게 발전하게 돼서 이제는 지옥캠프가 아니라 천당캠프다"라고 말했다.

음주와 숙소 이탈을 제외하면 캠프 참가자에게 걸린 제약 '마감 엄수'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아무런 사고 없이 캠프가 진행되는 것은 캠프에 참가한 이들이 현역작가들처럼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처음으로 접해 봤다는 데 있었다.

식사시간에 만난 캠프 참가자들의 모습은 오랜 작업으로 오는 피로와 마감압박을 잊은 듯 밝아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는 산책을 하면서 긴장을 푸는 참가자들도 있었고, 평소에 궁금하던 것을 묻기 위해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참가자도 있었다.

식사시간에 만난 한 참가자는 "내가 캠프를 통해 배운 것 중 가장 놀라운 것은 24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라며 "이렇게 몰두하며 작업을 해본 적은 처음이라 너무 즐거웠다"고 말했다.

이현세 작가는 "엄격학 마감시간과 같이 취미로 해오던 일들이 직업이 됐을 때의 느낌을 미리 알려준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캠프에서 만화를 그리는 즐거움 느끼고 가는 것 같다"며 "우리와는 다른 세대에서 만화를 시작하는 후배들인만큼 더 큰 성장을 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