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중반 써낸 삼성의 '깐깐한' 부동산 투자 스타일 눈길

머니투데이

장시복 기자

삼성 서초사옥 스케치 /사진=이동훈 기자

서울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인 강남 삼성동 한국전력 (20,600원 ▼1,200 -5.50%) 부지 입찰전(戰)에서 또 다시 삼성 특유의 깐깐한 부동산 투자 스타일이 드러나 눈길을 끈다.

◇삼성전자, 입찰가 4조 중반 써낸 듯=18일 한전부지 입찰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전날 오후 4시에 마감한 한전 부지 입찰에 참여한 삼성전자가 4조 5000억원 전후를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은 이번 부지매각 예정가와 감정평가액을 3조 3346억원으로 책정했는데, 삼성전자는 이보다 약 30~40% 정도의 프리미엄을 붙여 응찰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실제 시세가 감정가보다 소폭 높은 수준이라는 점과, 이미 3조 3346억원이 미래가치를 반영한 가격이라는 측면에서 낙차를 위해서는 4조원대가 합리적인 수준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5조원을 초과하는 가격에 낙찰될 경우 사실상 개발이익을 내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었다.

그러나 경쟁이 붙었던 현대차그룹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감정가의 3배 정도인 10조 5500억원의 천문학적 금액을 베팅해 낙찰자가 됐다. 삼성보다 두 배가 넘는 액수를 적어낸 것이다.

현대차 (241,500원 ▲4,500 +1.90%)는 "미래가치를 볼 때 무리한 수준이 아니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은 우려를 반영하듯 현대차 주가가 전일 대비 9.17% 떨어지는 등 관련회사의 주가가 급락했다.

재계 관계자는 "입찰 마감 직전까지 재계 1~2위 라이벌이 정보력을 총동원해 뜨거운 눈치싸움을 벌였지만 아무리 많아도 4조~5조원 범위에서 승부가 날 것이란 관측이 높았다"며 "통합사옥이 절실한 현대차가 삼성을 의식해서인지 파격적 선택을 한 것 같다"고 전했다.

◇삼성, 기술·설비와 달리 부동산에 유독 '깐깐'=일각에서는 각 기업의 문화가 이번 입찰 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대가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저돌적인 성향이라면 삼성은 치밀하게 따져보며 돌다리 두드리듯 신중히 접근한다는 뜻이다.

삼성은 특히 부동산에 유독 깐깐한 것으로 유명하다. 무리다 싶으면 아예 접는 스타일이다.

대표적인 게 서초동 삼성타운 앞 '꼬마빌딩' 사례다. 삼성은 2000년대 중반 그룹의 본진인 삼성타운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인근의 6층 규모 '윤빌딩'을 매입하려 했지만 예상 시세와 맞지 않자 포기했다. 그룹의 상징적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건물 부지를 피하도록 설계를 변경해 공사에 들어갔다.

일원동 삼성서울병원도 설계 당시 인근 개인 묘지의 땅주인이 부지를 팔지 않겠다고 하자 그 부지 주위로 병원 건물을 지었던 일화도 유명하다.

골프장도 마찬가지다. 삼성물산과 에버랜드는 한 때 1조원을 호가하던 레이크사이드CC를 틈틈이 노리던 중 불황과 주주간의 문제로 시세가 떨어지자 올 초 총인수액 6500억원의 저가에 매수하기도 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위기 때 투자해야한다'는 지론이어서 삼성은 기술이나 설비투자에는 적극적인 것으로 유명하다"며 "반면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이 '땅 장사'는 하지 말라는 등의 유지가 있어 부동산 투자에 있어서는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는 데 이번 입찰전도 그런 사례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