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韓方)' 먹은 금융당국

금융감독원이 수개월째 끙끙 앓고 있다. 정치권과 한방 의료업계가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한방치료를 실손의료보험에서 보장하라고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어서다. 총선을 앞두고 압박 수위는 더 높아졌다. 진웅섭 금감원장은 국정감사에서 "선행요건이 해결된다면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금융위원회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실손보험 정상화'에도 역행한다.

자기부담금을 2배 늘려 실손보험 손해율을 잡겠다는 목표가 자칫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더구나 금융위가 실손보험 표준약관을 폐지키로 발표한 가운데에 표준약관을 개정해 한방치료 보장을 끼워 넣는다면 정책 일관성도 떨어진다. 금감원은 '한방특약' 신설을 검토 중이다.


◇추나·약침, 건강보험 안되고 실손보험으로 해결하라?=정치권에서는 약침과 추나 등 한방치료가 환자 부담이 크기 때문에 실손보험에서 보장하라는 논리를 폈다. 한방의료기관에서 가장 많이 받는 치료는 침(48.0%), 물리요법(20.3%)이다. 양방의 '도수치료'와 유사한 추나는 물리치료의 대다수를 이룬다.

이렇게 광범위한 한방치료라면, 전국민이 혜택을 보는 건강보험(급여)에서 보장해야지, 민영보험인 실손보험에 떠넘길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건강보험에서 한방치료를 아예 보장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약침·추나를 제외하고 여러 한방치료가 보장된다. 정치권에서 당장 도입하라고 압박하는 추나는 복지부가 2018년부터 건강보험 급여(단 일부 항목만 적용)에서 보장키로 발표까지 했다. 실손보험이 아니더라도 건강보험에서 보장한다는 얘기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약침, 추나를 건강보험 급여에 포함 시키되, 본인부담금을 높이면 실손보험이 급여 본인부담금도 보장하는 만큼 '윈윈'할 수 있다"며 "건강보험 급여는 투여량, 일수, 진료수가 등을 관리받기 때문에 한방 의료업계에서 비급여 실손보험을 더 선호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금감원 '한방특약' 신설 가닥.."한방병원, 광주가 대전의 16배"=보험사들이 실손보험에서 한방치료 보장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진 원장의 지적대로 '선행요건'이 해결돼야 한다는 것. 실손보험에서 보장하려면 치료용으로 처방된 건지, 투약횟수나 가격 등이 표준화 가능한지 따져봐야 한다. 추나와 유사한 양방의 도수치료는 실손보험 적용대상으로 포함되면서 치료비가 몇천원에서 수십만원으로 뛰었고 과잉진료도 상당하다.

정확한 보험료 산출을 위해 한방치료 기초 정보도 필요하다. 현재 보험개발원에서 관련 정보를 집적 중이지만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이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특정 지역 쏠림 현상도 정확한 위험률 산출에 걸림돌이다. 전국 한방병원의 32%는 광주광역시에 쏠렸다. 광주 한방병원은 인구가 약 7배 많은 서울에 비해 2배 많고, 인구가 비슷한 대전에 비해선 무려 16배나 많다.

정치권·금융당국·보험업계·한방 의료계의 '치킨게임'으로 치달은 한방치료 보장의 대안은 무엇일까. 금감원은 한방치료만 보장하는 특약(혹은 정액보장) 신설을 우선 검토 중이다. 표준약관을 개정해 모든 보험사가 다 보장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보험사만 실손보험의 특약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한방특약으로 자료가 축적되면 추가로 표준약관 개정도 가능하나 금융위는 이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