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반부 접어든 세기의 재판, 삼성 "정황만 있고 증거 없어"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재판이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변호인단과 특검간 공방이 치열하다. 그동안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해명을 삼갔던 이 부회장 측은 공소사실은 물론 공소장에 기재된 오류에 대해서까지도 조목조목 반박에 나섰다.

◇"정황만 가득, 증거는 없어"…'가공의 틀' 깨 가는 변호인단=이 부회장 측 변론을 맡은 송우철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첫 공판기일에서 "경영권 승계에 대한 대가를 합의한 사실도 없기 때문에 뇌물죄는 물론 다른 범죄사실도 성립하지 않는다"며 "승계작업은 대가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가공의 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여섯 차례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변호인단은 부정한 청탁과 대가관계 합의가 입증될 여지나 증거가 없다는 점을 피력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특검 측이 정황만으로 몰아가고 있을 뿐 구체적 증거가 없다는 주장에 힘을 쏟았다. 재판에서 사실의 인정은 증거능력이 있는 증거에 의해 행해야 한다는 '증거재판주의' 원칙에 충실하겠다는 모습이다.

특검 측이 주장한 부정한 청탁의 대표적 사례는 청와대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것. 양사 합병에 부정적이었던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전문위)를 피해 국민연금 투자위원회(투자위)에서 합병건을 다루도록 했다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특검은 양사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필요 과정이었다고 봤다.

이에 대해 변호인단은 "어디에서 결정됐든 그것은 삼성과 무관했다"며 "삼성이 그 과정에 청탁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을뿐더러 양사 합병은 경영활동 일환이었다"고 반박했다.


특히 "투자위에서 찬성 결정이 나기 나흘 전인 2015년 7월6일까지도 전문위원장을 설득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는데 삼성이 부정한 청탁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합병이 될 것을 알고도 '헛발질'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검 측은 "합병 건이 투자위원회 결정사안으로 바뀐 것은 7월8일 오후였다"며 "(구체적 증거로) 차차 입증하겠다"고 맞받아쳤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감사처분 특혜 의혹도 다뤄졌다.

변호인단은 "2차 독대 후 청와대로부터 병원을 감사하라는 지시가 온 것은 오히려 둘 사이 청탁이 오간 사실이 없었다는 방증"이라며 "병원은 지난해 초 의료법 위반에 따른 행정처분뿐만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가능한 감염병 예방·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발조치돼 결과적으로 특혜를 받은 사실도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또 "특검 측은 '묵시적 청탁'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직접 입증이 어려운 부분에 대한 '이심전심'격 무리한 해석"이라고 강조했다.

◇"'~라 생각하고'만 7번"…공소장 기재 오류도 도마 위에=공소장 자체에 대한 오류도 지적됐다.

변호인단은 공소장에 '(중략) 피고인 이재용은 대통령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향후 승계작업에 필요한 대통령과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승마지원 요구를 수락함으로써 피고인 이재용과 대통령 간에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뇌물을 수수하기로 하는 합의가 이뤄졌다'고 기재된 부분을 예로, "증거가 부족한 부분에 대해 '생각하고'란 표현을 썼는데 이같은 표현이 공소장에 7번이나 기재됐다"고 말했다.

즉, 특검이 이 부회장의 머릿속을 들어갔다가 나오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대가를 바랐을 것이다'라고 단정하고 공소장을 작성했다고 변호인 측은 주장했다.

또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3차 독대 시점에 대한 오류도 지적됐다. 공소장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2016년 2월15일 오후 이 부회장과 대통령 안가에서 독대하며 이 부회장에게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사업계획안을 직접 전달했다.

이 부회장이 사업계획안을 직접 전달받았는지 여부는 이 부회장의 센터 지원 관여 정도가 달리 판단될 수 있어 중요하다.

그동안의 진술 등을 종합하면 3차 독대 당일 오전 9시55분에, 장시호씨 자택에서 계획서가 출력됐고 이후 최순실씨에게 서류가 전달됐다. 최씨는 자신의 운전기사를 통해 이를 이영선 청와대 경호원에게 건넸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 시간은 오전 11시로 계산된다. 이후 이 경호원이 정호성 전 비서관을 통해 대통령에게 서류를 전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변호인단은 "이 부회장 차량이 안가에서 나온 시간은 당일 오전 11시8분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서류를 직접 받은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 부회장에 대한 2차 구속영장실질심사 때에도 독대 시간이 오전이라는 것을 강조했지만 특검 측은 공소장에 오후에 만났다고 기재했다"고 말했다.

특검 측은 "선입견을 갖고 공소장을 쓰지 않았다"며 "누구도 그날의 기억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간접사실 등을 토대로 공소장을 작성했지만 필요할 경우 청와대에 사실조회를 신청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4월 한달 간 서증조서가 끝나면 5~6월까지 약 20명의 증인신문을 모두 마치고, 7월말까지 결심공판을 하고, 8월 중 1심 선고가 이뤄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