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명분쌓기…'강경화' 한마디도 없었지만 野 "난감하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일자리 추경' 시정연설에서 서청원 자유한국당 의원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17.6.12/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0년이 넘게 시정연설을 국회에서 봐 왔지만 저런 모습은 처음 보네요."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마친 뒤 나온 야당 보좌관의 넋두리다. 그는 문 대통령이 국회 본청을 떠나는 마지막 모습에 주목했다. 문 대통령은 친박(친박근혜)계 좌장인 서청원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다가가 먼저 목례를 하곤 악수를 청했다. 정우택 원내대표 등 한국당 지도부들에게도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인사청문회 협조를 구하기 위해 만남을 청했다가 거절당한 직후였다. 시정연설 전 예정됐던 ‘차담회’에도 한국당은 불참했었다.

주고 받은 것은 악수와 덕담이었지만 야권엔 이보다 강한 압박은 없을 것이라고 야당 인사들은 입을 모았다. 한 야당 의원은 "문 대통령이 저런 식으로 나오면 야당으로서는 선택지가 좁아진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날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역대 대통령 중 취임 후 최단 기간 내에 이뤄졌다. 공교롭게도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의 청문보고서 제출 마감일을 이틀 남겨둔 시점이었다. 시정 연설의 제목은 일자리 추경이지만 문 대통령의 이른 국회 방문엔 다양한 함의가 있다. 문 대통령은 30여분을 온전히 추경에 할애했다. 인사청문, 인선, 국정운영 등 다른 주제는 건드리지 않았다. 시정연설 직전있었던 차담회에서도 문 대통령은 각 당 지도부에 인사청문회 등의 이슈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그게 국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고, (인사청문회를 언급하는 것은) 주제를 흐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런 접근이 인사청문회를 포함한 현안에 대해 야권의 전폭적인 협조를 요구하는 압박으로 들렸다. 한국당의 불참으로 문전박대를 당한 상황이 됐지만 문 대통령은 불편한 감정을 보이는 대신 미소를 택했다. 편할 리 없는 속을 숨기고 한국당 원로들과 지도부에 악수를 청했다. 문 대통령의 손을 맞잡은 한국당 의원들도 미소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한 의원은 "정우택 원내대표의 표정이 특히 복잡미묘하더라"고 했다. 정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자리까지 찾아줘서 고맙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경 반대'는 야당의 주요 카드다. 야당은 청와대가 강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경우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본회의 인준투표와 추경 처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문 대통령이 국회 앞에 서는 형식을 취해 사실상 국민들에게 추경 처리 동의를 호소했다. 이후 만나지 않겠다는 야당을 찾아 먼저 고개를 숙였다. 야당으로서는 추경을 볼모로 강 후보자를 마냥 비토하는 데 부담이 커졌다.

문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추경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면서 국민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조목조목 짚었다. "작은 정부가 아니라 일하는 정부가 필요하다"고 했다. 행정부는 지금 장관 교체기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새 장관 임명 없이는 일하는 정부가 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은 또 "국민은 버틸 힘이 없는데 기다리라고 할 수는 없다"고도 했다. 역시 추경을 호소하는 동시에 빠른 행정부 가동을 촉구하는 발언인 셈이다.

물론 문 대통령의 방문 만으로 인사청문 실타래가 풀릴 수는 없다. 야당은 여전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장관 임명을 강행할 수 있는 명분 쌓기엔 성공했다는 평가가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일자리 추경' 시정연설을 마친 뒤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17.6.12/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