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부터 놀아! 국가놀이위원회 만들자"

7월12일 서울 종로구 머니투데이 본사에서 열린 [창간기획-놀이가 미래다, 노는 아이를 위한 대한민국] 대담에 참석한 전문가들 /사진=임성균 기자

놀 줄 아는 어른이 없다. 한국 아이들이 놀이를 뺏긴 현실을 두고 전문가들이 내놓은 분석이다. 놀이의 가치도 방법도 잘 모르는 부모, 선생님, 정치인, 공무원 등 어른들 사이에서 아이들은 '놀이'를 잃었다. 이대로 우리 사회는 괜찮을까.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 머니투데이 본사에 빈약한 국내 아동 놀이 상황을 우려하는 각계 전문가가 모였다. 머니투데이 기획기사 '놀이가 미래다, 노는 아이를 위한 대한민국'이 두달여에 걸쳐 전한 영국, 핀란드, 호주, 미국, 독일 등 5개국의 아동 놀이 현실을 토대로 우리의 문제점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의했다.

이날 대담은 김익태 머니투데이 사회부장이 사회를 맡았다. 전문가 토론자로는 김명순 연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 김수현 참교육학부모회 팀장,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대리, 채은화 서울 서대문구 육아종합지원센터장, 최윤종 서울시 푸른도시국장이 참여했다. 다음은 대담 내용 전문이다.

▶(김 부장) 점심시간 때 간혹 보면 무교동에 '차 없는 거리'를 조성해서 도로를 막아놨더라. 차가 안 다니니 좋더라. 아이들은 오죽할까.

▶(최 국장) 동네에 한적한 도로를 막아놓고 '한 번 맘껏 놀자'는 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교육) 프로그램이다.


▶(김 교수) 아이들은 평등해선 안 된다. 보호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른들이 놀이터에 주취자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듯이 말이다. 아이들만 있을 수 있는 공간, 아이들이 맘껏 놀 수 있는 공간들을 성인이 마련해줘야 한다. 사회적 책무다.

서울시와 연세대 산학협력단이 서울 상암 (월드컵) 놀이공원에 '움직이는 놀이터'를 진행하고 있다. 공원 문화라고 하면 이전에는 부모들이 아이들과 주로 쉬거나 먹는 것밖에 없었다. 아이들과 함께 노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움직이는 놀이터'의 목적이다. '움직이는 놀이터'를 10회 동안 진행하면서 관찰해보니, 아이들이 같이 놀 친구가 없을 때 부모님들이 함께 놀아주는 경우는 50~60명 중 한 명 있을까 말까다. 놀이 파트너가 없을 때 나(부모)라도 함께 놀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굉장히 적다.

'움직이는 놀이터'에 특별한 놀이 기구나 기가 막힌 놀이터를 만든 건 아니다.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솔방울, 바닥에 깔고 앉았던 신문지 등을 가지고 논다. 부모들 대부분은 3미터쯤 떨어져서 팔짱을 끼고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 보기만 한다. 그래서 '아이들 놀이에 가까이 다가가서 관찰해 주세요', '아이들이 필요할 때는 파트너로 함께 해주세요' 라고 플래카드를 붙여 놨다. 그러자 부모님들이 조금씩 바뀌시더라. '움직이는 놀이터'는 어디든지 다 놀이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머니투데이 기획 제목처럼 '놀이가 미래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 노동의 대부분은 기계로 대체된다. 우리나라가 지향하고 있는 학업 성취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인간성이 더 부각될 것이다. 지금 아이들은 앞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아이들을 더 인간답게 키우기 위해서는 사회나 국가 전체가 놀이를 중요한 정책으로 생각해야 한다. 놀이 시간과 공간, 기회를 더 많이 줘야 우리 사회가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김 팀장) 국가 차원에서 놀이를 정책으로 추진한다는 데 모두가 동의한 것 같다. 그 차원에서 안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 사회는 안전에 대한 감각이 일반 수준을 넘었다. 현재 지자체에서 '(어린이) 안전보험' 갖춰 놨다. 학교에도 안전공제회가 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부모들에게 '아이가 다치면 보험 처리가 된다'고 이야기해도 '에이, 뭐 이것저것 증명해야 하지 않나'라고 한다. 아니라고 해도 설득이 안 된다. 부모들이 '우리 아이가 어디서 다쳐도 보상이 나온다'고 느낀다면 아이들을 더 쉽게 놀게 할 것이다.

'국가 놀이위원회'를 마련해 12세까지 모든 아동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으면 한다. 이미 보험은 다 갖춰져 있으니 추가로 드는 비용도 없을 것이다. 학교 밖이냐 아니냐를 따지지 않고 모두 다 보험 적용을 받게 해줘야 한다. 놀이터 보험만 추진해도 부모들이 안심할 수 있다.

'놀이터 상담센터' 혹은 '놀이터 공동체 회복위원회'가 생겼으면 한다.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플레이 워커(놀이 전문가)를 양성해서 아이들이 학교가 끝나면 놀게 하는 거다. (저희가 이와 비슷하게 시도하고 있는 것이) '와글와글 놀이터'다.

'와글와글 놀이터'를 진행하다 보면 민원 전화가 많이 들어온다. '아이들이 바쁜데 왜 놀게 하냐', '우리 애가 학원 가야 하는데 자꾸 와글와글 간다고 해서 괴롭다'는 전화다. 이런 내용이 95%다.

어떤 부모님은 '이 시간(와글와글 놀이터)이 생기고 나서 아이의 모든 문제가 드러났다. 그 전에는 학교 잘 다녔다'고 하더라. 아이가 문제가 있는데 그냥 조용히 학교에 갔던 거다. 아이가 (학교에서) 아무것도 안하니까 그냥 조용히 있다가 올 수 있었다.

그런데 놀면서 (친구들과) 관계가 만들어지고 갈등이 생기니까 아이의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미 드러났어야 하는 문제였다. 놀지 않고 아이를 키우겠다는 것은 아이의 사회성을 은폐하겠다는 말이다. 놀면 아이의 모든 것이 발휘가 된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지역에 놀이터가 만들어지면 온갖 민원이 들어온다. 민원 대부분은 뻔한 내용이다. 예를 들면 '동네 놀이터에서 큰 아이들이 공을 차서 작은 아이들이 다친다'는 식이다. '놀이터 갈등센터'는 마을 공동체 위원회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공동체가 함께 지켜보자는 것이다. 공동체를 성장시키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다.

7월12일 서울 종로구 머니투데이 본사에서 열린 [창간기획-놀이가 미래다, 노는 아이를 위한 대한민국] 좌담회에 참석한 김수현 참교육학부모회 팀장이 발언하고 있다./사진=임성균 기자

▶(제 대리) 부모들 의사에 따라 아이들의 놀이가 종속돼 있다. 아이들이 플레이 스트리트(거리를 막아 만든 놀이터)를 만들고 싶다고 아이들끼리 만들 수는 없다. 부모들 중 뜻 있는 분들이 관(官)과 이야기해서 만들고, '자 이제부터 놀아'라고 해야만 가능하다. 아이들의 놀이가 부모들의 의지나 허락에 따라 결정되는 부분이 있다. 우선 놀이터를 충분히 지키고 가꾸고 확보한 이후에 더 다양한 놀이(프로그램)를 추진해야 한다.

특히 산업화 이후 도시가 고도화돼 공간 싸움이 일어났다. 아이들이 놀 공간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놀이 공간을 지켜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손 쓸 수 없이 놀이터를 빼앗기게 된다. 어쩔 수 없다고 해서 포기하기보다는 의지를 갖고 공간을 지켜야 한다.

미래에는 자동차가 많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차 공간들이 남게 될 텐데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아이들 놀이터가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놀이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기조를 가져야 한다. 사회 인식이 확대돼야 한다. 막상 그때 가서 아이들 공간이 (후순위로) 밀리게 되면 정말 답이 없다. 아이들의 놀이 공간을 지키는 문제만큼은 정부가 의지를 갖고 밀어붙여야 확보될 까 말까 한 문제다.

플레이 워커도 중요하다. 사실 아이들끼리 놀기가 어렵다. 어른 한 명이 '시끄러워, 놀지마!' 하는 순간 아이들은 다 흩어진다. 아이들이 맘껏 놀 수 있게 보호막을 쳐주는 사람이 플레이 워커다. 놀이를 가르쳐주는 역할이 아니다. 영국의 경우 플레이 워커는 지역사회의 자원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학습해야 한다. 지역사회 자원이 필요한 이유는 놀이터를 지키기 위해서다.

우리나라도 '이건 구청이 관리하니까 민원 넣고 말자'는 식의 태도를 버리고 민간이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가 플레이 워커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정확한 가이드라인과 교육 자료를 준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연구도 필요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놀이 자체에 대한 연구가 많이 부족하다. 놀이 관련 정책이나 공간 등 제대로 된 연구가 없는 상태다. '국가아동놀이연구소'와 같이 체계적으로 연구와 실태조사를 하는 중앙 기관이 필요하다. 연구가 제대로 이뤄져야 예산을 투입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할 수 있다.

▶(채 센터장) 놀이는 아이 자체의 삶이다. 아이들의 시간을 들여다봐야 한다. 학원 가야 하고 늦게까지 잠도 못 잔다. 놀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연령에 따라 학원에 갈 수 있는 시간을 제한하는 방식으로라도 아이들에게 노는 시간을 확보해줘야 하지 않을까. 부모가 아이를 학원 여러 군데에 보내다가 결국엔 키 크는 약을 먹이지 않나.

▶(최 국장) (서울시 푸른도시국에서는) '유아 숲 체험' 공간 100군데 정도를 만들었다. 특별한 시설 없이 공간만 준다. 플레이 워커처럼 '유아 숲 지도사'도 파견한다. 문제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단체로) 오면 뭔가를 배우라고 하는 것 같다. 그건 안 된다. (뭔가 배우게 하려는)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지자체의 역할은 공간을 많이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서울은 산이 많다. 일정 공간은 유아만을 위한 공간, '창의 놀이터'처럼 어린이들 전용 공간을 만들 수 있다. 다양한 용도, 연령대를 위한 공간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서울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확산되길 기대한다.

국가 차원의 컨트롤타워도 필요하다. 지자체는 지자체 나름대로 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잘 놀 수 있는 공간, 놀이문화가 발전해야 하는데 아직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