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보이스피싱'도 등장, 가상화폐 범죄 활개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직장인 김모씨(28)는 올해 6월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을 당했다. 금융기관 직원을 사칭한 평범한 보이스피싱 수법이 아니었다.

본인을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직원이라고 소개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해외 IP(인터넷프로토콜) 접속 기록이 있어 보안상 위험하다"며 "해외 접속 차단 조치를 하려면 지금 문자로 발송되는 인증번호를 불러달라"고 말했다.


올해 가상화폐 비트코인에 입문해 500만원을 투자한 김씨는 보안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에 바로 인증번호를 불러줬다. 사기범은 이를 이용해 비트코인을 담아두는 김씨의 전자 지갑을 털어갔다. 김씨는 당시 3.9비트(1비트당 한화 약 400만원·현재 가치 1000만원)를 갖고 있었다. 비트코인에 2000만원을 투자한 이모씨(20)도 김씨와 같은 방식으로 전자 지갑을 털렸다.

가상화폐는 다단계식 투자 사기가 아닌 정상적인 투자를 하더라도 '해킹'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기껏 투자에 성공한다 해도 가상화폐를 거래하는 거래소가 해커들에게 뚫릴 경우 한순간에 돈을 날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제도권 금융투자에서 거래계좌가 안전하게 보호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실제로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은 올해 6월 해킹으로 3만1000명의 회원 정보가 유출됐다.


빗썸 계정이 해킹당한 뒤 영문도 모른 채 가상화폐가 다른 곳으로 이체된 사례도 있다. 박모씨(23)는 빗썸에 950만원 어치 가상화폐를 구입해뒀으나 해킹된 뒤 모든 돈이 다른 곳으로 이체되는 피해를 입었다. 빗썸에서 계정 해킹, 신종 보이스피싱 등으로 피해를 입은 회원 100여명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가상화폐 열풍이 불면서 해킹 외에도 이들을 노리는 각종 투자사기가 활개를 치고 있다. 독자적인 가상화폐를 개발했는데 여기에 투자하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이 대표적이다.

부산에 사는 40대 여성 조모씨도 올해 5월 가짜 가상화폐인 '원코인'에 280만원을 투자해 피해를 봤다. 원코인은 이른바 '유사 코인' 중 하나다. 독일 원라이프사가 개발했다고 알려졌지만 원코인 공식 사이트에는 사업구조조차 나와 있지 않다. 참여자가 돈을 내면 그만큼 원코인을 지급받고 또 다른 참여자를 데려와 돈을 내게 만들면 그 투자금 일부를 지급하는 전형적인 다단계 방식이다.

조씨 역시 지인의 소개로 원코인에 투자했다. 이들은 스마트폰에 앱을 깔아주면서 원코인을 현금처럼 쓸 수 있다고 소개했다. 내년에 상장하면 회사 가치가 수십배 가까이 오른다고도 홍보했다. 하지만 현금화를 못한 투자자들의 피해 사례가 속출했고 금융감독원은 대검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청주지검은 원코인 판매업체 그룹장 등 6명을 방문판매업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경찰은 투자 대상이 가상화폐로 바뀌었을 뿐 전형적인 유사수신·사기 범죄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경찰 관계자는 "허무맹랑한 수익률을 제시하기 위해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를 끌어들이는 것뿐"이라며 "피해자들이 가상화폐에 대해 잘 모르니 실제 돈을 불리는 시스템이 있는 줄만 안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기 일당을 수사하더라도 피해자를 찾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본인이 피해를 입은 줄도 모르는 경우가 상당해서다. 가상화폐 사기 일당을 지나치게 믿거나 돈을 못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고소를 취하하는 피해자도 더러 생긴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가상화폐 관련 범죄에 대해 수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신속한 수사로 피해 확산을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