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깃국 대신 어묵국' 어린이집의 이상한 대체 식단

서울 한 어린이집에서 예정과 다르게 제공된 급식. (왼쪽)카레라이스, 근대된장국 등이 예정돼 있었지만 국이 빠져 있는 모습과 예정된 설렁탕 대신 어묵국이 제공된 모습./사진=독자 제공

서울 한 어린이집에 6살 딸아이를 보내는 엄마 권시온씨(37)는 최근 식단 문제로 어린이집과 갈등을 겪었다. 어린이집에서 자꾸 예정된 식단과 다른 급식을 제공하면서다. 예정된 식단은 카레라이스에 근대된장국, 깍두기, 과일, 짜 먹는 요구르트였지만 실제로 국은 쏙 빠졌다.

아무 공지 없이 콩비지찌개가 무국으로, 설렁탕이 어묵국으로 바뀌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한 달간 권씨가 확인한 것만 3건이었다.


권씨는 "식단이 무단으로 변경되는 일이 자꾸 반복되자 해당 어린이집 원장에 항의하니 처음에는 고치겠다고 했지만 변한 게 없었다"며 "'대체 식단을 짤 수 있다'는 안내 문구를 들먹이고 '불만이 있으면 구청에 신고하라'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 워킹맘들은 이를 알면서도 다른 어린이집을 구할 수가 없어 그대로 당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어린이집이 학부모들을 상대로 갑질을 하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아무런 공지 없이 식단을 바꾸는 일은 해당 어린이집만의 문제가 아니다. 5살 아이의 엄마 김모씨(36)도 "어린이집 기존 메뉴는 소불고기 김밥이었는데 실제로는 국도 없이 짜장밥과 깍두기, 요구르트가 나온 적이 있었다"며 "예산을 대체 어디에다 쓰는 건지 화가 났다"고 밝혔다.


또 다른 학부모 이모씨(32)도 "방학기간 식단을 공지하지 않아 무엇을 먹이는지조차 알 수 없다"며 "아이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해 눈치 보는 워킹맘이라 식단 가지고 캐물을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100인 미만 어린이집은 영양사를 두지 않아도 되지만 각 시·도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영양사가 작성한 식단을 사용하도록 돼 있다. 보건복지부 보육사업에 따른 조치다.

원칙적으로 어린이집은 센터에서 제공한 식단을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 물론 식자재 수급 사정 등에 따라 대체 식단을 짤 수 있다. 다만 고깃국은 고기류나 생선류로 대체하도록 돼 있다. 설렁탕을 소고기무국으로 변경할 수 있는 식이다. 또 식단을 다른 식품으로 대체하게 된 사유를 문서로 기록하고 학부모에게 사전에 공지해야 한다.

하지만 권씨 사례처럼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는 어린이집이 적지 않다는 게 학부모들의 불만이다. 식단을 멋대로 바꿀 경우 어린이집 평가인증 과정에서 '영양' 부분은 0점을 받을 수도 있다. 어린이집 평가인증은 한국보육진흥원에서 진행하고 있으며 각 지표가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어린이집 관리·감독 기관인 관할 구청은 식단 공시 의무를 여긴 어린이집에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소명기회를 준 뒤 사유가 불분명하면 시정 조치를 내리고 행정지도를 하는 방식이다.

3년 내에 똑같은 일이 재발해 2번 이상 시정명령을 받으면 어린이집 운영 정지 조치도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린이집에 대한 제재는 쉽지 않다. 어린이집에 다니던 아이들을 당장 맡아줄 곳이 마땅치 않은 등 대안 마련이 어려운 탓이다.

권씨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 관할 구청 관계자는 "한 번 더 현장을 방문해 해당 어린이집이 예정된 식단을 무단으로 변경한 사실이 있는지 확인할 것"이라며 "정확히 사안을 파악한 뒤 그에 맞는 조치를 내리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