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헤맬라'… 弱달러에 고민 깊어진 글로벌 중앙은행

미국 달러의 약세가 새해에도 이어지자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과 일본 당국자들이 일제히 자국 통화가치 절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쏟아냈다. 유로와 엔화의 강세가 물가상승 압력은 물론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리면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정상화 행보를 꼬이게 할 수 있어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비토르 콘스탄치오 유럽중앙은행(ECB) 부총재는 17일(현지시간) 한 인터뷰에서 "갑작스러운 (유로) 움직임이 우려된다"며 "(유로화 강세는) 펀더멘탈(기초여건)이 반영된 움직임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ECB 통화정책위원인 에발트 노보트니 오스트리아 중앙은행 총재 역시 "유로 절상이 도움이 안 된다"고 동조했다.

유사한 우려가 일본에서도 흘러나왔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16일 엔화 급등과 관련, 엔/달러 환율이 110.8엔 수준이면 "큰일은 아니다"면서도 "급격한 환율 변화는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엔화 강세(엔고)에 대한 우려감을 드러냈다.


이 같은 발언은 달러 약세에 대한 유로존과 일본의 우려를 보여준다. 달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들어서도 하락세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이번 주 3년 저점으로 하락했다.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올해 들어서만 3% 가까이 올랐고, 엔/달러 환율 역시 이달 초 113엔대에서 이번 주 110엔대까지 내려왔다(달러 대비 엔화 강세).

전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가 과도하게 하락하는 건 이들 국가에 악재일 수 있다. 수출경쟁력을 약화시켜 경제 회복세에 제동을 걸 수 있어서다. 여기에 자국 통화가치가 오르면 수입물가가 떨어져 가뜩이나 오르지 않고 있는 물가상승률 회복에도 부정적이다.

이렇게 되면 ECB와 일본은행(BOJ)을 비롯해 올해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섰거나 나설 예정인 주요 10개국(G10)의 셈법도 복잡해진다. 수출 위축으로 경기회복세가 느려지거나 물가상승률이 더 둔화되면 글로벌 금융위기 후 단행한 통화부양책을 줄인 뒤 긴축에 착수해야 하는 중앙은행들이 계획대로 통화정책을 펴는 게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환율이 다시 한 번 통화정책 전망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예상이 제기된다. 실제로 콘스탄치오 부총재 발언 후 유로가 달러 대비 반락하는 등 시장이 즉각 반응했다. 안체 프레케 코메르츠방크 외환투자전략가는 "유로 절상이 다시 시장에서 감안해야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로존과 일본이 자국 통화가치 절상을 막기 위해 강력한 구두 개입엔 나서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미국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어서다.

마크 챈들러 브라운브라더스해리먼 애널리스트는 아소 부총리 및 ECB 관계자들의 발언을 가리키며 "변덕스러운 미국 정부를 적대적으로 만드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신중하게 발언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달러 약세 여파가 통화정책에 미치는 영향 자체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데릭 할페니 MUFG 투자전략가는 "달러 약세가 다른 선진국 통화정책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며 ECB가 지난해 이미 양적완화를 통한 채권 매입 축소 계획을 내놓은 만큼 환율과 관계없이 이를 추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그는 "유가가 오르면 통화 절상이 물가를 끌어내리는 영향을 상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