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다시 내리막…OPEC '악몽' 실현되나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근월물 선물가격 추이(단위: 배럴당 달러)/자료=블룸버그

지난해 말부터 가파르게 오르던 국제유가가 급락세로 돌아섰다.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가격이 2월에만 9%가량 추락했다. 미국의 원유 증산, 글로벌 원유 수요 둔화가 국제 유가 안정을 위한 주요 산유국의 감산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브렌트유 선물가격은 지난 9일 배럴당 62.79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초 61달러 대에서 지난달 말 71달러에 근접한 뒤 하락세로 돌아서 2월에만 9% 떨어졌다. WTI는 지난 주말 59.20달러로 지난해 12월 말 이후 처음 심리적 지지선인 60달러 선이 무너졌다. 이달 들어 8.5% 내렸다.


국제유가가 한동안 이어진 부진한 흐름에서 지난해 말 강세로 돌아선 건 OPEC과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이 기존 감산 합의를 올해 말까지 연장한 덕이었다. 이들은 2016년 11월 산유량을 하루 180만배럴 줄이기로 합의한 뒤 시한을 거듭 연장하며 국제유가를 떠받쳤다.

지난해 말 국제유가 상승세가 가팔라지자 미국 월가에서는 국제유가가 올해 배럴당 8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의 원유 증산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대가 무색해졌다. 줄리언 리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11일(현지시간) OPEC의 유가 '나이트메어(악몽) 시나리오' 가운데 절반이 이미 실현되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OPEC은 미국의 원유 증산, 글로벌 원유 수요 증가세 둔화가 원유시장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다고 본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의 산유량은 지난해 11월 하루 1004만배럴로 1970년 이후 처음으로 1000만배럴을 넘어섰다. 1월에는 1020만배럴로 늘었다. 리는 미국의 원유 증산 속도가 2014~2015년의 1차 셰일 붐을 압도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산유량 추이(단위: 하루 백만배럴)/자료=블룸버그

EIA는 미국의 산유량이 올해와 내년에 각각 1059만배럴, 1118만배럴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미국이 폭발적인 산유량 증가세로 올해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될 것이라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전망을 뒷받침한다. 미국 투자은행 씨티그룹은 미국이 올 여름에 러시아를 제칠 것으로 봤다.

사우디는 하루 1200만배럴까지 생산할 수 있지만 감산 합의로 하루 산유량이 1000만배럴쯤 된다. 러시아는 이보다 많은 1095만배럴을 생산한다.

미국은 요 몇 년 동안 퇴적암층(셰일)에서 원유를 생산하는 셰일 개발로 산유량을 대거 늘려왔다. 2014년 중반부터 국제유가가 급락해 한때 생산에 제동이 걸렸지만 최근 국제유가가 반등하자 다시 생산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미국 에너지서비스업체 베이커휴즈에 따르면 지난주 현재 미국에서 운영 중인 원유 채굴시설은 791기로 한 주 만에 26기 늘었다. 3주 연속 증가세로 지난주에는 1년여 만에 가장 많이 늘었다.

그나마 글로벌 원유 수요는 올해도 탄탄한 모습이다. 리는 다만 올해 원유 수요 증가세가 OPEC의 예상치인 하루 153만배럴에 못 미칠 조짐이 나타나면 OPEC의 석유장관들이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IEA는 이미 올해 글로벌 원유 수요가 하루 130만배럴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OPEC과 IEA는 이번주에 새 전망을 담은 보고서를 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