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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의 딸'… 대통령 선거 필승 키워드?

[이재은의 그 나라, 페루 그리고 박근혜 ②] 부자간 세습은 거부감 일으키지만, 딸의 세습은 부정적 이미지 희석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입력 : 2018.09.17 05:00|조회 : 7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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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위).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과 그의 딸 게이코 후지모리 페루 민중의힘 대표 /사진=국가기록원, 위키커먼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위).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과 그의 딸 게이코 후지모리 페루 민중의힘 대표 /사진=국가기록원, 위키커먼스
'독재자의 딸'… 대통령 선거 필승 키워드?
내가 볼 때 나의 페루비안(Peruvian·페루인) 친구는 전형적인 리무진 진보주의자(limousine liberals·한국식으로는 '강남좌파')였다. 그는 집이 유복해 미국 명문대에서 유학중이었는데 그럼에도 빈민·소수인종·여성 등 비주류세력의 권익 증진에 관심이 많았고 본인이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연히 그는 권위주의적 독재 정권을 증오하는 반(反) 후지모리주의자(후지모리 지지자)였다. (☞ 페루에는 예언자가 산다… "박근혜, 대통령 된다" [이재은의 그 나라, 페루 그리고 박근혜 ①] 참고)

친구는 게이코 후지모리가 끝내 페루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게이코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피와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에 반여성주의자야. 뭐, 그래서 지지자가 많긴 하니까 대통령은 되겠지… 게이코가 당선되면 페루 민주주의와 여성인권은 크게 후퇴할 걸." 친구와 대화를 한창 나눈 2012년 9월은 우리나라도 제18대 대선을 석달 앞두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일 때였다. 특히 박 후보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 구호를 앞세워 인구의 절반인 여성의 표를 모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게이코와 박 후보가 꽤나 겹쳐보여서, 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후보도 '여성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여성들에게 표를 얻고자 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자 친구는 "응, 박 후보는 그래서 12월에 대통령으로 선출될 거야. 다만, 여성들 지지 때문이 아니라 그 아버지의 지지자들 덕택에 말야. 여성주의자들은 게이코와 박근혜를 싫어하니까"라고 답했다.

그 해 12월 박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비록 그는 비선실세 국정논란 등 여러 혐의로 2017년 3월 탄핵됐지만, 어쨌든 그 전까진 대통령으로서 △구미시 상모사곡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옆에 새마을공원을 짓는 사업 추진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새마을 운동 되살리기(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새마을운동은 개도국 개발협력의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는 "새마을운동으로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발판을 마련했듯이 이런 구조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언급) 등에 나섰다. 이 같은 이유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신을 그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동일시해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꾀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이 영부인 대행을 맡은 영애 박근혜(왼쪽)와 재일거류민단유공자훈장수여를 하고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박정희 전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이 영부인 대행을 맡은 영애 박근혜(왼쪽)와 재일거류민단유공자훈장수여를 하고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미국 심리학자 모린 머독(Maureen Murdock)은 저서 '여성영웅의 탄생'(The Heroine's Journey)에서 '아버지의 딸'은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아버지의 사랑, 인정, 보호를 받기위해 그와 최대한 유사해지려고 노력한다고 분석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일종의 '유사 남성'이 된 이들은 아버지가 가진 남성성과 여러 특성을 우월한 것으로 보고 여성성을 열등한 것으로 본다. 주로 성공한 여성들 사이에서 이 같은 특성이 나타는데, 우리나라에선 박근혜가 이 사례의 전형적 인물로 꼽힌다. '독재자의 딸' 박근혜가 자신을 아버지 박정희와 동일시했고, 아버지에게 일종의 분신으로 인정 받으며 영부인 대행과 대통령 직을 임했다는 분석이다.

다른 나라에도 이런 사례는 많다. 페루 전 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딸 게이코 후지모리도 이 사례에 해당하고, 필리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딸 마리아 이멜다 마르코스, 칠레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딸 루시아 피노체트, 파키스탄 줄피카르 알리 부토 전 총리의 딸 베나지르 부토가 총리,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의 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르티 전 대통령도 이에 해당하는 사례로 꼽힌다. 딸은 아니지만 이탈리아 베니토 무솔리니의 손녀 알렉산드라 무솔리니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생각과 태도를 그대로 이어받았으며, 그들의 남아있는 지지세력으로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그렇다면 여성주의자들은 '독재자의 딸'이자 '여성 정치인'인 이들의 정치활동을 어떻게 바라볼까. 여성주의자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만큼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주류 여성주의자들의 의견은 그리 좋지 않은 듯하다. 이들을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지만 문화적·사회적 개념인 '젠더' 측면에서는 여성이 아니라고 바라보기 때문이다. 모린 머독이 분석했던 유사남성처럼 말이다.

이들의 아버지들은 권위주의 체제하 비주류 세력의 권익을 묵살하고 오히려 인권을 탄압했다. 자연히 이들 체제에선 여성 역시 눈요깃거리나, 술자리에 필요한 장식 정도로 전락했다. 즉 이 같은 상황을 보고 자랐음에도 '독재자의 딸들'은 아버지에 본인을 투영했기에, 소수자로서의 여성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없으므로 젠더로서의 여성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여성학자 정희진도 저서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박근혜의 몸은 '아버지 박정희'를 매개한다"면서 "그의 정체성은 '공주'이지 여성이나 시민이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페루의 우파 정당 인민세력당의 대선 후보이자 수감중인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인 게이코 후지모리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집회를 열었다./AFP=뉴스1
페루의 우파 정당 인민세력당의 대선 후보이자 수감중인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인 게이코 후지모리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집회를 열었다./AFP=뉴스1
게이코 후지모리가 대통령 선거에 나왔을 때 수많은 여성 단체들이 거리에서 항의 시위를 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다. 대표적인 건 '펠리그로 후지모리'(peligro·위험)와 '소모스 2074'다. 그의 아버지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재임(1990~2000년) 당시 '가족계획 정책'의 일환으로 원주민·농민에게 불임수술을 강제했다. 2002년 알레한드로 톨레도 페루 행정부가 의회 위원회를 구성해 조사에 들어간 결과,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최소 34만6000여 명의 여성과 2만4000여 명의 남성이 강제로 불임수술을 당한 것으로 추산됐다.

또 강제 불임수술은 사전 진료·진단 없이 이뤄졌고, 후지모리 행정부는 거부할 경우 의료혜택을 박탈하겠다는 협박까지 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페루의 안데스 및 아마존 원주민 여성기구(ONAMIAP)에 따르면 불임시술 과정에서 2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불임수술 정책으로 1990년 여성 1명당 3.7명이었던 출산율이 10년 뒤 2.7명으로 떨어져 후지모리가 원하던 성과는 얻어냈지만, 인권은 퇴보했다. 소모스 2074는 "게이코는 불임수술이 자행되던 때 영부인을 대행했다"면서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여성인권은 퇴보할 것이다"라면서 허벅지에 피를 상징하는 붉은 색 페인트와 자궁으로 디자인 된 벨트를 착용하고 거리를 행진했다.
'게이코 노 바'(Keiko no va)의 그래피티. 게이코 후지모리가 대선에 출마한 것을 반대하는 이들이 그렸다. 이는 게이코 후지모리의 아버지,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자행했던 불임시술을 잊지말자는 의미에서 그려진 것이다. /사진=위키커먼스
'게이코 노 바'(Keiko no va)의 그래피티. 게이코 후지모리가 대선에 출마한 것을 반대하는 이들이 그렸다. 이는 게이코 후지모리의 아버지,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자행했던 불임시술을 잊지말자는 의미에서 그려진 것이다. /사진=위키커먼스
후지모리주의자들은 그에게 아버지의 굴레를 씌우는 게 너무하다고 말한다. 특히 게이코가 수차례 사과한 만큼 계속해서 반성을 요구하는 건 일종의 연좌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6년 4월3일,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게이코 후지모리는 후보 토론회에서 아버지인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권위주의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에 서명했다. 그가 서명한 문서에는 자신의 아버지가 인권, 언론의 자유, 민주적 기관을 탄압한 것을 인정하고, 이들을 존중하며 다시는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담겼다. 또 의회 감독 정보 위원회에 견제 권한을 부여하고 강제로 불임수술을 받은 여성들에 대한 배상 약속도 포함했다. 물론 트위터 등엔 그를 비난하는 메시지가 잇따랐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게이코는 여성권을 비롯 인권 운동가들의 반대에도 3수 끝에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 답은 2021년 대선에서 나온다. 그의 동생 겐지 후지모리 의원이 2021년 대선에선 누나에게 도전해 승리를 쟁취할 것이라고 선전포고한 상태지만, 무슨 일인지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게이코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 겐지 의원의 부패 스캔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 사람은 아버지의 정치적 유산인 정당 '민중의 힘' 주도권을 두고 경쟁해왔는데, 지난 6월 겐지 의원은 부패 혐의로 의원 자격을 정지당했다. 그는 자신의 혐의는 누나 게이코의 공작이라며 법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게이코가 여성이라 반감이 더 적은 것도 이유다. 이에 대해 정희진 여성학자는 "'독재자의 딸'이 아버지의 권력을 이어받기 용이한 이유는, 부자간 세습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만 딸의 세습은 이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첫 '생물학적' 여성 대통령이었다. 아마 페루에 탄생할 첫 생물학적 여성 대통령도 다른 누군가가 아닌, 게이코가 될 것같다. 젠더적 '여성' 대통령이 나오긴 어렵지만, '독재자의 딸'은 대통령 필승 키워드니까. 민주주의 불모지, 페루에 평화는 언제 찾아올까.

참고문헌
페루 아시아계 이주민의 정치적 성공과 인종 갈등: 후지모리 사례를 중심으로, 중남미연구, 박윤주
페루 대통령 선거 결과와 향후 경제정책 전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미숙
페루 정당체제의 탈제도화와 민주주의의 지연, 라틴아메리카연구, 김유경
페루의 이중적 부패 구조와 반부패정책의 한계, 글로벌정치연구, 김유경 

☞[이재은의 그 나라, 핀란드 그리고 차별 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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