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자문제도, 보험금 거부 수단 VS 보험사기 대처 방안

보험회사가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과잉진료 등이 없었는지 전문의 소견을 받는 ‘의료자문제도’를 두고 논란이 가열된다.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지적이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가운데 무조건 소비자가 청구하는 대로 보험금을 줄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올 상반기만 해도 보험사기 적발금액이 4000억원을 돌파할 정도로 허위·과다입원과 치료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다.


◇보험금 부지급률 증가 vs 허위입원·치료도 기승=지난달 열린 국정감사에서 보험사의 의료자문 건수가 매년 증가하며 보험금 지급을 감액하거나 거부하는 부지급률이 지난해에 49%로 올랐다는 지적이 나왔다. 보험사가 의사들에게 자문료를 주고 자문을 받으면서 보험금을 덜 주거나 안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이에 대해 보험사는 판단이 어려운 보험금 청구가 많아진 데 따른 결과라는 입장이다. 올 상반기에 금융당국이 보험사기로 적발한 금액만 4000억원으로 역대 최고 금액을 경신했다. 이중 허위·과다입원과 치료·사고내용 조작 등이 전체의 70% 넘는 2851억원을 차지했다.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할 때 피보험자를 진료한 주치의가 작성한 진료기록부 등을 보고 환자의 상태, 치료방법, 경과 등을 살펴보는데 이 과정에서 판단이 어려운 부분이 생기면 주치의에게 소견을 요구한다. 주치의가 이에 대한 소견을 거부할 때 표준약관 등에 따라 제3의 의료기관에 의료자문을 의뢰한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의료자문 건수가 매년 증가하는 것은 그만큼 과잉진료나 연성 보험사기가 늘고 있다는 의미”라며 “무조건 보험금을 안 주려고 비용을 들여 자문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보험금 지급으로 불필요한 누수를 막아 보험료 인상 요인을 줄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문의 면담 의무화 vs 제도 유명무실화=최근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 등은 자문의가 보험금 지급 거절이나 감액 등의 의견을 낼 경우 피보험자 직접 면담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자문의가 피보험자를 면담조차 하지 않고 자문하면 보험사에 유리하게 심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이유다.

이에 대해 의료업계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보험사는 객관성을 위해 대학병원 교수 등으로 자문단을 꾸린다. 진료예약에만 수개월이 소요되는 전문의들이 보험금 지급과 관련한 자문을 위해 별도의 시간을 내 진료에 준하는 면담을 해야 한다면 사실상 자문의를 맡지 말라는 의미라는 지적이다. 자문의가 피보험자 면담 후 보험금 감액이나 부지급을 결정한다면 이후 자문의에 대한 진료방해나 악의적인 민원 등이 발생할 우려도 크다. 이 때문에 지금도 보험사는 자문관련 정보를 비공개로 한다.

의료업계 한 관계자는 “감액이나 부지급에 대한 자문 의견을 낼 때마다 피보험자를 면담하라고 하면 전문의들이 자문 자체를 기피하거나 뒷말이 없도록 소비자 편향적인 자문만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자문을 하는 데 면담이 필수불가결한 절차인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통상 보험금 지급은 치료가 끝난 후 이뤄지기 때문에 증상이 완치되거나 호전됐을 가능성이 높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적절한 진료가 이뤄졌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치료 당시 상태를 진술하며 감정에 호소하는 것보다 진료기록부 등을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며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과잉진료 여부를 심사할 때 피보험자에 대한 면담 없이 진료기록부 등을 보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가입자에 정보비대칭 vs 제3의 자문기관 필요=금융감독원은 국회의 법안 발의와 별도로 의료자문제도를 개선하는 방향의 의료분쟁 매뉴얼을 추진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계약자가 보험금 감액이나 부지급의 충분한 사유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정보제공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문제”라며 “정보비대칭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보험업계의 의견수렴 등을 거쳐 개정이 필요한지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업계는 제도 개선에 협조한다는 방침이지만 궁극적으로 제3의 의료자문기관 설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 다른 관계자는 “피보험자 입장에서는 보험사가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아 불만일 수 있지만 반대로 보험사도 피보험자가 진료기록 열람에 동의하지 않거나 수술부위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판단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며 “객관적으로 의료자문을 수행할 별도의 기관이 생긴다면 소비자는 물론 보험사도 불필요한 비용이나 분쟁을 줄일 수 있어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