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싸져야 하는데…다른 통화가 더 떨어지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긴축 중단을 넘어 정책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얘기가 월가에 나돌고 있는 상황에서도 미 달러화 가치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금리가 내리면 달러도 약세를 보여야 하는 데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세계 경제가 어렵다 보니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이 연준보다 더 비둘기파(통화 완화) 쪽으로 돌아선 까닭이다. 상대적으로 경제 상황이 좋은 미국으로 글로벌 자금이 몰린 것이다.

유로와 엔 등 다른 6개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지수(DXY)는 24일(현지시간) 98.08을 기록해 2017년 5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서 2% 가까이 올랐으며, 1년 전과 비교해서는 7.6% 급등했다. DXY는 연준이 지난해 정책금리를 네 차례나 올리면서 가파른 상승 흐름을 보이기 시작했다. 금리가 오르면 자금이 몰리면서 통화 가치가 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달러 가치 상승 이유가 달라졌다. 금리 요인보다 세계 경제 침체가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연준이 올 들어 금리를 동결하고 심지어 금리 인하 가능성까지 제기된 상황에서 달러 가치가 떨어져야 정상이지만 반대로 움직였다. 유럽과 신흥국 경제가 흔들리고 있지만 미국은 뉴욕증시 주가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비교적 탄탄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금이 몰릴 탓이다. 달러가 강세를 나타냈다기보다 다른 통화 가치가 더 떨어졌다는 얘기다.

예컨대 유로화 가치는 유럽의 경제의 양대 산맥 독일과 프랑스가 흔들리면서 계속 내림세다. 무역전쟁과 수요 둔화로 독일 제조업이 부진에 빠졌고, 프랑스는 '노란 조끼' 시위로 말미암은 생산 차질로 성장 동력이 약화했다. 이날 발표된 유로존 소비자기대지수는 4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나타냈으며, 독일 IFO기업환경지수도 이달 99.2로 예상치와 이전치를 모두 밑돌았다. 이에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2017년 6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밀렸다.

캐나다달러도 사정은 비슷하다. 캐나다은행(BOC)은 이달까지 정책금리를 1.75%로 네 차례 연속 동결했으며 이달 통화정책회의 뒤 발표한 성명문에서 인상 가능성을 내비치는 문구도 삭제했다. 현재 달러 대비 캐나다달러 가치는 올해 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신흥시장은 더욱 심각하다. 터키 리라와 아르헨티나 페소 가치는 정치적 불확실성 극대화로 올 들어 각각 10%, 14% 내리는 등 최악의 상황이다. 일본은행도 25일 열린 통화정책회의에서 적어도 내년 봄까지는 정책금리를 마이너스(-) 0.1%로 유지하기로 했다.


투자은행 UBP의 키에란 칼더 아시아 증시 연구책임자는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달러 강세는 다른 통화 약세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이 때문에 달러화 가치가 더 가파르게 오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