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가장 싼 날, 무조건 담아"…러 국민들은 지금 '패닉바잉'

[서울=뉴시스]러시아 시베리아에 위치한 한 슈퍼마켓의 모습.(사진출처: 데일리메일 홈페이지 캡쳐) 2022.03.09.

러시아가 최악의 인플레이션 위기를 맞았다. 우크라이나 침공 감행 이후 서방의 전방위 경제제재가 시행되면서 화폐 가치는 급락하고, 생활물가는 치솟는 대혼란에 빠졌다. 생필품 부족 공포가 사재기 조짐을 불러 주요 유통매장이 텅 비는 사태가 속속 확인되고 있다.

1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러시아연방통계청은 올해 2월 26일~3월 4일 러시아의 주간 물가 상승률이 2.2%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이는 통계를 시작한 2008년 이후 주간 기준으로 최대 상승률이다. 이달 4일 기준 러시아의 연간 물가 상승률은 10.4%를 기록했다.


품목별로는 러시아 국산차가 일주일 새 17% 이상 뛰었고, 수입차와 TV는 각각 15% 이상 값이 올랐다. 스마트폰 가격은 10% 가까이 상승했다. 토마토·바나나 등 과일은 7%대, 종합비타민 등 의약품은 5%대 상승률을 보였다.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뛰면서 러시아 전역에선 과도하게 생필품을 구매하는 '패닉 바잉'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 당국과 대형 슈퍼마켓 체인점 등은 일부 품목의 구매 물량과 가격을 제한하는 등 통제에 나섰다고 뉴욕타임스(NYT)·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전했다.

자영업자들도 물가 상승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모스크바의 한 유명 음식점인 아부고시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일부 식재료 가격이 300% 뛰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커피숍은 환율 변동으로 매주 금요일마다 가격을 조정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100만원→60만원' 된 현금…공포심리가 수요폭증으로이처럼 러시아 물가가 치솟은 것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제재가 이어지면서 고립 상황에 빠졌기 때문이다. 산업 전반에서 러시아와의 수출·수입을 제한하는 금수 조치가 시행되면서 자동차부터 TV, 스마트폰 등 물품을 구하기 어렵다는 공포 심리가 수요 폭증으로 이어졌다.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서 악순환은 더 가속했다. 실제로 루블화 가치는 올 들어 40% 가까이 급락했다. 쉽게 설명하자면 원래 100만원이던 돈의 가치가 60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얘기다. 특히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걷잡을 수 없이 무서운 속도로 환율 쇼크가 시작됐다.

올 초 달러당 75루블 안팎이던 루블화는 2월말 100루블을 넘어서더니 지난 7일에는 장중 158루블까지 급등했다. 루블화 가치(환율과 반대)가 2개월여 만에 반토막 났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루블화 가치 하락을 막으려고 종전 연 9.5%였던 기준금리를 연 20%로 인상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때문에 부랴부랴 환전을 중단하는 강제 조치를 마련했다. 러시아는 오는 9월 9일까지 약 6개월간 루블화를 외화로 환전하는 것을 제한하는 등 시장 개입에 나섰다.

[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서방국가들의 러시아 제재 발표 이후 루블화 가치가 사상 최저인 30% 가까이 폭락했다. 2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사설환전소에서 업주가 루블화를 정리하고 있다. 2022.02.28.

금융시장은 올 연말까지 러시아의 물가 급등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블룸버그는 러시아의 연간 물가상승률이 오는 7월쯤 19%로 정점을 찍고, 연말에는 16%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올해 러시아의 물가상승률이 20%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영국 국립경제사회연구소(NIESR)는 20% 이상을 기록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이 같은 전망이 적중할 경우 러시아는 20여년 만에 최악의 물가 상승 위기를 겪게 된다. 지난 2001년 이후 러시아의 연간 물가상승률이 20%에 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