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뉴스 도중 "전쟁 반대" 난입한 직원…"최대 15년형 가능성"

마리아 오브샤니코바가 14일(현지시간) 러시아 국영 채널1 스튜디오에서 기습 시위를 진행한 모습/사진=트위터 영상 갈무리

'전쟁 반대. 전쟁을 멈춰라. 선전 선동을 믿지 말라.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14일(현지시간) 한 여성이 이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러시아 국영 채널1 스튜디오로 뛰어 들어왔다. 러시아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저녁 뉴스 프로그램이 생방송으로 진행되던 중이었다. 기습 시위를 펼친 이 여성은 채널1 프로듀서인 마리아 오브샤니코바. 당황한 뉴스 앵커는 큰 목소리로 대본을 읽었지만, 오브샤니코바가 "전쟁 반대! 전쟁을 멈춰라!"고 외치는 목소리는 그대로 전파를 탔다.


오브샤니코바는 시위 직후 체포됐다. 이후 12시간 동안 변호인들과도 연락이 닿지 않아 신변 안전에 대한 우려가 급속히 확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직접 오브샤니코바 구명에 나섰다. 마크롱 대통령은 "대사관 보호나 망명 등을 통해 보호하는 외교적 노력을 시작할 것"이라며 "블라디미리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구체적인 방식으로 해법을 제안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14시간 넘게 심문을 받은 오브샤니코바는 이튿날인 15일,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법정에 출두했다. 검은색 정장을 착용한 그는 파랑과 노랑의 우크라이나 국기 색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오브샤니코바는 이날 승인되지 않은 공개 행동을 조직한 혐의로 3만루블(약 34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법정에서 "난 여전히 러시아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확신한다"며 무죄를 주장했다고 한다.

오브샤니코바는 법원 밖에서 기자들을 만나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날이었다. 거의 이틀간 잠을 자지 못했다"면서 "가족이나 가까운 이들에게 연락하는 것이 금지됐다. 법적 대리인과 접촉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아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고 토로했다.
우크라이나인 아버지 둔 오브샤니코바, 최대 15년형도 가능오브샤니코바의 기습 시위가 벌금 34만원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이 벌금형은 오브샤니코바가 시위 전 녹화해둔 '동영상'에 관한 처벌이어서다. 해당 영상은 시위 직후 러시아 인권단체 OVD-인포를 통해 공개됐다.


오브샤니코바는 이 영상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우크라이나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범죄이며, 러시아는 침략국이다. 이번 공격의 책임은 오직 한 사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있다"고 말했다.

15일(현지시간) 오브샤니코바가 벌금형을 선고받은 후 취재진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AFP

이어 "(크름반도 강제병합이 이뤄진) 2014년 우리는 침묵했다.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독살 시도를 당했을 때도 우리는 거리로 나가지 않았다. 우리는 이 반인권적인 정권을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면서 "지난 몇 년간 근무 중인 채널 1에서 크렘린궁의 선전을 내보내는 일을 해왔는데 너무나 부끄럽다. TV를 통해 퍼지는 크렘린의 거짓말을 방관했고, 러시아인을 좀비로 만들도록 내버려 뒀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은 사법 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오브샤니코바의 '가짜 뉴스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군 관련 가짜 뉴스로 간주되는 내용을 고의로 퍼뜨리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법안을 서명했다. 이 법안은 러시아군에 대한 명백한 허위 정보를 공개적으로 유포할 경우 최대 징역 3년형에 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 경우엔 최대 15년의 징역형을 부과한다.
"국가를 위해 일하던 그, 우크라 침공 후 분노 극에 달해"오브샤니코바는 두 아이 엄마로, 평안한 일상을 꾸리며 살아가던 여성이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그동안 쌓아온 조국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오브샤니코바의 친구 A는 가디언에 기습 시위 이틀 전, 그가 시위 계획에 대해 털어놨다고 말했다. A는 "우크라이나인 아버지를 둔 오브샤니코바는 전쟁 발발 후 러시아의 행보에 대해 깊은 불안과 분노를 표했다"며 "국가를 위해 일해온 오브샤니코바는 러시아의 국가 시스템을 두려워했고, (시위로 인해) 자신이 쌓아온 삶을 잃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오브샤니코바가 그렇게 목소리를 낸 건 매우 용감한 일이지만 너무 걱정된다. 친구들과 주변인을 아끼는 매우 마음 넓은 사람이었다"며 "평소에 그를 보면서 '저렇게 솔직한 사람이 어떻게 거짓말을 일삼는 채널1에서 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고 털어놨다.

오브샤니코바의 용기 있는 행동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직접 감사를 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밤 영상메시지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허위 정보에 맞서 싸우는 러시아인들에게 고맙다"며 "채널 1의 스튜디오에 반전 포스터를 들고 간 여성에게 개인적으로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반면 크렘린궁은 오브샤니코바의 행동을 난동 부리는 축구 광팬 '훌리건'에 비유하며 폄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