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촘해지는 '대중 포위망'…日·네덜란드, 美반도체 규제 동참

머니투데이

윤세미 기자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에 대해 공식 제소했다. 사진은 미국과 중국 국기/ⓒAP=뉴시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로 본격적인 대응에 나선 가운데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업체를 보유한 일본과 네덜란드가 미국의 대중 반도체 포위망에 합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장비 구매가 막히면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는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일본과 네덜란드가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에 동참하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은 두 나라가 앞으로 몇 주일 안에 지난 10월 미국이 발표한 대대적 수출통제 조치 가운데 일부를 도입한다는 내용을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구체적으로는 14㎚(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장비의 수출을 금지하는 내용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상무부는 10월 7일 미국 기업이 특정 수준 이상 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첨단 기술을 판매할 경우 별도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수출 통제 조치를 공식 발표했다. 미국 기업이 △18㎚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14㎚ 이하 로직칩 등 고성능 반도체 제조 장비와 인공지능(AI) 관련 반도체,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첨단 반도체 등을 중국에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 내용이다.

이미 2020년 말부터 대중 반도체 제조장비의 수출통제 기준을 10㎚ 이하 공정으로 유지하다 올해 7월 개별기업들에 통지문을 통해 14㎚이하로 확대한 뒤, 10월 이를 공식화해 자국 모든 기업에 적용했다. 수치가 낮을수록 어려운 공정인데 수출통제 범위를 늘린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고성능 반도체를 군사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속내에는 중국의 첨단 산업 추격 방지 의도가 있다.

공식 조치 발표 이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업체를 보유한 일본, 네덜란드에도 동참을 압박해왔다. 반도체 장비 시장의 경우 미국의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 램리서치, KLA 외에 일본 도쿄일렉트론, 네덜란드 ASML이 핵심 5인방으로 꼽히는 만큼 두 나라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게 미국 정부의 판단이다.

두 나라를 설득하기 위해 타룬 차브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기술·국가안보 선임보좌관과 앨런 에스테베즈 상무차관은 지난달 네덜란드를 방문했고, 지나 라이몬도 상무장관은 지난주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장관과 전화 회담을 가졌다. 네덜란드는 당초 자국의 경제적 이익이 중요하다며 동참에 난색을 표했으나 미국의 압박 속에 협조로 기울어진 모양새다.

이들 3개국 동맹은 중국이 첨단 반도체 제조를 위해 필수적인 장비 구입 루트를 막는 구도를 형성한다. 미국 투자자문회사 샌포드번스타인의 스테이시 라스곤 애널리스트는 "중국은 스스로 첨단 산업을 구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기회가 없다"고 블룸버그에서 말했다.

수출통제가 현실화할 경우 반도체 장비 기업들의 실적 악화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ASML의 전체 매출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5%에 달한다. 일본 역시 지난해 반도체 제조장비 수출액 가운데 40%가 중국에서 나왔다. 때문에 도쿄일렉트론뿐 아니라 시장의 마이너 사업자인 니콘, 캐논 등은 중국 시장을 지키고 싶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1일 브리핑에서 일본 및 네덜란드와의 협의에 대한 질문에 "우리는 우려를 공유하는 광범위한 국가들과 진행되고 있는 논의의 솔직함과 실효성 등에 매우 만족하고 광범위한 정책 일치에 이르기를 원한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