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어~? "대형차 더 잘 팔리네"

#사례1 "가격이나 연비에 큰 차이가 없는데 '쏘나타 2.4'를 사느니 '그랜저'를 사는 게 낫죠." 지난주 '그랜저 2.4 럭셔리'를 구입한 자영업자 김모씨는 당초 '쏘나타 2.4' 최고급형을 구매하려다 '그랜저'로 마음을 바꿨다.

'쏘나타 2.4'의 가격이 3000만원인데 '그랜저' 기본형 가격이 3112만원으로 가격차가 100만원 안팎에 불과한데다 연비도 13㎞/ℓ(쏘나타 2.4)와 12.8㎞/ℓ(그랜저 2.4)로 거의 비슷해서다. 김씨는 "사업을 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큰 차를 타는 게 유리하고 최근 수입도 괜찮아 대형차를 구매했다"고 말했다.


#사례2 "고유가로 준중형차도 부담이 되죠. 고민 끝에 경차를 샀습니다." 직장인 이모씨는 준중형차 '포르테'를 사려고 계약까지 했다가 취소하고 경차를 택했다. 자동변속기 기준으로 '포르테'(1475만원)와 '모닝'(1005만원)의 가격차이가 500만원 가까이 나는 데다 연비도 '모닝'(19㎞/ℓ)이 '포르테'(16.5㎞/ℓ)보다 15% 이상 높아서다. 이씨는 "영업직으로 차량이용이 많아 연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유가 행진이 이어지면서 자동차시장에 '양극화' 바람이 불고 있다. 유가에 둔감한 대형차나 아예 민감한 경차는 판매가 늘어난 반면 그동안 최대 차급 자리를 지켜온 중형차와 준중형차의 판매는 감소하고 있다.

4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그랜저'와 '제네시스' 등 엔진 배기량 2400cc급 이상 대형차 판매량은 2만1900여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43.6% 급증했다.


대형차시장 점유율(수입차 제외)도 19.9%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3월에 판매된 국산차 5대 가운데 1대는 대형차인 셈이다. 올 1분기(1~3월) 누적 판매량도 5만4100여대로 전년보다 22.3% 증가했다.

경제성이 좋은 경차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지난달 '모닝'과 '스파크' 등 경차 판매대수는 1만6400여대로 전년 동기 대비 18.9% 늘었다. 3월 점유율은 14.9%로 199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올 2월(18.1%)에는 못미치쳤만 1분기 전체 판매는 4만5300여대로 지난해보다 24% 늘었다.

◇'쏘나타' 대신 '그랜저'…'포르테' 대신 '모닝'＝반면 지난해 내수시장의 49%를 차지한 중형차와 준중형차 판매는 감소세를 보였다.

현대차 (242,500원 ▼6,500 -2.61%) '쏘나타'로 대표되는 중형차 판매는 지난달 2만1200여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4% 감소했다. 1분기 누적판매 역시 전년보다 17.7% 줄었다.

엔트리카로 사랑받아온 엔진 배기량 1600cc급 준중형차도 1분기 판매가 전년보다 7%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고유가 여파로 중산층이 지갑을 닫은 것으로 해석했다. 30~40대 중산층이 주타깃인 중형차시장이 대형차나 경차에 비해 타격을 먼저 입은 셈이다.

서춘관 기아차 (114,600원 ▼5,000 -4.18%) 국내마케팅실장(이사)은 "통상 유가가 오르면 중형차시장이 가장 먼저 반응하고 이어 준중형차 판매가 영향을 받는다"면서 "중형차 구매를 고려하던 고객은 일단 구매를 미루고 차량이 꼭 필요한 상황에서 준중형차나 소형차를 구매하려던 고객은 경차로 눈을 낮추면서 중형차와 준중형차 판매가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기름값 상승세가 지속되면 대형차나 경차는 물론 전체 자동차시장이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고유가로 최근 중형차 판매와 시장점유율이 하락한 것은 상대적인 영향이 크다"면서 "고유가 상황이 지속되면 하반기에는 대형차나 경차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차효과도 한몫＝올해 국내 완성차업계의 신차가 대형차와 경차에 몰린 점도 '양극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지목된다. 신차 효과가 큰 내수시장의 특성상 해당 차급에서 신차가 나오면 판매비중이 높아진다.

대형차의 경우 지난 1월 '그랜저'를 시작으로 2월에는 직분사 GDi엔진을 새로 탑재한 'K7'이 출시된 데 이어 3월에는 파워트레인(엔진 및 변속기)과 디자인을 일부 변경한 '제네시스'와 '에쿠스'가 선보이는 등 매월 대형차 출시가 잇따르고 있다.

'모닝'과 '스파크' 등 차종이 2개뿐인 경차도 '뉴 모닝'이 출시된 만큼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기아차는 오는 8~9월쯤 경차로 분류되는 크로스오버차량(CUV)도 선보인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내수시장은 80% 이상 장악한 현대·기아차의 신차에 좌우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현대·기아차가 지난 2년간 중형차와 준중형차를 내놓으면서 올해는 대형차와 경차가 주로 나오는 것도 주요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