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은행"…이자만 1000억 챙기고 부도몰아

　정확한 사업성 평가 없이 건설사에 수천억원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해주고 고금리로 1000억원대 이자를 받아 챙긴 후 사업이 어려워지면 '나몰라라'하며 원금 회수에만 나서는 은행권의 무책임한 행태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시공능력평가순위 40위의 임광토건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간데 이어 대기업 계열사 고려개발까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건설사들의 줄도산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시공순위 38위의 고려개발은 지난달 30일 저녁 주채권은행인 농협에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지난달 만기가 도래한 3600억원 규모의 경기 용인 성복지구 사업장 PF대출의 만기연장을 채권단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고려개발의 금리 6.5%대, 만기 3년 요청에 채권단인 농협과 외환은행은 동의했지만 KB국민은행이 7.5%대에 만기 1년 연장을 주장,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결국 6.8%대 금리에 만기 3년의 수정안이 나왔지만 워크아웃을 피할 수 없었다.

건설업계는 고려개발의 모기업인 대림산업이 하루 전인 지난달 29일 500억원 규모의 신규자금을 지원하는 등 최근 1년새 3800억원가량을 쏟아부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표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대주주의 '살리겠다'는 의지가 충분함에도 과도한 조건을 내걸어 워크아웃으로 내몰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림산업에 따르면 고려개발의 경우 PF대주단을 포함한 금융기관들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신용공여한도(크레디트라인) 축소와 회사채, PF 상환을 통해 7300억원 규모의 유동성을 회수했다.

특히 성복사업장 PF대주단은 초기 4%에 불과하던 이자율을 금융위기 이후 최고 15%에 달하는 고금리로 변경하는 동시에 6개월 초단기로 만기를 연장해왔다. 대주단의 요구로 고려개발은 1년간 2차례 만기연장을 했다.

고려개발은 이 과정에서 2007년 10월부터 올 11월까지 4년 동안 3600억원의 PF금액에 대해 이자비용 등으로만 총 1050억원을 지출했다.

　지난달 법정관리에 들어간 임광토건도 PF대출로 인해 쓰러졌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경기 화성 기산반월지구 PF대출 2000억원에 대해 6개월치 선이자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 초에도 LIG건설, 동양건설산업 등이 PF 지급보증을 했다가 만기를 연장하지 못해 잇따라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때문에 건설업계는 이자는 이자대로 회수하고 해당 기업은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으로 내몰아 채권을 회수하는 은행들의 무책임한 행태를 꼬집었다. 한 건설사 임원은 "최근 저축은행사태로 건설경기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시중은행마저 돈줄을 죄면 건설사들은 줄도산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한건설협회 자료에 따르면 현재 100대 건설사 중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을 신청한 기업은 고려개발까지 포함, 모두 24개사에 달한다. 현재 분위기대로라면 40~50% 돌파도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흘러나온다.

대형건설사 한 관계자는 "그동안 은행들은 시공사 지급보증을 통해 리스크를 없애고 '땅 짚고 헤엄치기'식으로 영업을 해온 셈"이라며 "막무가내식 PF대출 축소가 이어지면 적잖은 건설사가 부도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시공사에만 모든 책임을 지운 PF대출 관행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PF대출은 기업이나 개인이 아니라 대출자금이 투입될 사업(프로젝트) 자체의 수익성을 보고 대출해주는 것인 만큼 금융회사도 일정부분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호 GS건설 경제연구소장은 "기본적으로 사업참여자간 리스크 분담이 이뤄져야 한다"며 "PF 취지에 맞게 금융회사가 사업성 평가를 제대로 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