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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0만원 벌던 사장님, 부도후 결국 경비원으로

[기획-한국형 프리터族의 비극④]재취업 은퇴 후 필수코스…질 낮은 일자리뿐

머니투데이 박소연 기자, 김유진 기자 |입력 : 2014.10.01 05:01|조회 : 193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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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일자리는 밥벌이다. 동시에 꿈과 희망, 미래다. 생계가 팍팍하면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것은 쉽지 않다. '알바 공화국' 대한민국이 위태로운 이유다. 시간제 근로자가 200만명을 넘어섰다. 10대와 20대의 알바는 그나마 낭만이라도 있다. 가족을 책임져야할 30~40대, 노후를 즐겨야할 60~70대가 어쩔 수 없이 알바로 내몰리고 있다. 이들의 실상을 머니투데이가 들여다봤다.
서울시내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이 가득 찬 음식물쓰레기통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서울시내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이 가득 찬 음식물쓰레기통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뉴스1

#1"자녀들에게 도움 받을 생각도 없고 아내도 아픈데… 나이가 들면 할 만한 게 없잖아요. 그냥 놀 수는 없으니까 이렇게 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밥 먹고 살고 있으면 그걸로 만족해야죠. 몸이 허락할 때까지 일할 겁니다."

아파트 경비원 박희봉씨(가명·58)는 오늘도 새벽 4시에 찬이슬을 맞으며 서울 근교 집을 나선다. 먹고 살려면 두 시간 넘는 출근길도 마다할 수 없다. 아침 6시 반까지 아파트에 도착해 다음날 아침 7시까지 꼬박 24시간을 근무하고 받는 돈은 131만원 남짓. 재활용 분리수거부터 각종 민원처리까지 일은 끝이 없는데, 새벽에 잠시 졸기라도 하면 '졸지 마라' 새파랗게 어린 주민들 타박과 훈계에 설움이 북받친다.

박씨는 젊어서 잘나가는 사장님이었다. 고졸 출신인 그는 시장 밑바닥부터 경험을 쌓아 20대 중반 의류매장 두 개를 인수해 자수성가했다. 하루 수입 100만원은 예사였다. 강동구 '유지'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1996년 사촌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하루아침에 부도를 맞았다. 23년간의 노동은 물거품이 됐다. 어떤 금융구제도 받지 못했다.

박씨는 자녀 둘과 아내를 부양하기 위해 곧 이런저런 사업을 시작했지만 손해만 봤다. 결국 택시회사에 취직해 배차업무를 시작했다. 매일 수많은 기사들과 부딪히고 야근을 밥 먹듯 하며 월 200여만원을 받고 10년을 버틴 박씨는 체력적·정신적 한계에 부딪혀 퇴사하고 말았다. 그 후 박씨는 8개월째 경비원으로 살고 있다. 58세에 달리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2공사장 경비원 김만수씨(가명·54)는 전직 고등학교 미술교사다. 개인 사정으로 교직을 그만둔 뒤 미술학원을 차려 3년간 인기를 누렸으나 IMF 즈음 어린이집이 생겨나며 다수의 동네 미술학원과 마찬가지로 폐업을 맞았다. 이후 2000년부터 수학학원을 운영, 전국수학경시대회 대상자를 다수 배출하며 '신지식인상'도 수상하고 월 1000만원 이상을 벌었지만 '방과 후 학교' 정책 등에 타격을 받아 결국 올 1월 접었다.

김씨는 "사람들이랑 부딪히는 게 체면 상해서 공사장으로 왔다"며 "50대 중반에서 60대 중반까지는 할 수 있는 일이 경비 외에 크게 없다. 치매가 아닌 이상 노인 대부분은 100만원짜리 일자리에 목숨을 거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은퇴 시기는 빨라지고 기대수명은 길어지는데 마땅한 노년 일자리가 없다. 노후를 대비하지 못한 대부분의 중장년층은 고학력과 경력을 막론하고 경비일과 청소일 등 사실상의 생계형 '알바'에 뛰어들고 있다.

◇"일해야 하는데 할 게 없다"

한국의 중장년·노년층은 생계를 위해 황혼까지 쉬지 못하고 일을 한다. 지난 7월 통계청의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55~75세 고령층 인구(1137만8000명) 가운데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62%(705만2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가 '생계비 마련'(54%) 때문이다. 고령층은 72세까지 근로를 희망하지만 실제로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에서 그만두는 연령은 만 49세로 나타났다. 은퇴 후 재취업이 '필수'인 것이다.

문제는 노년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높은데 일자리는 경비원이나 청소원, 주차관리인 등 질 낮은 임시직에 제한돼있다는 점이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근로자의 61.85%가 임시직(OECD 가입국 평균 19.53%)으로 일하고 있다.

하루 100만원 벌던 사장님, 부도후 결국 경비원으로

고령화가 가속화된 현재는 경비원 취직마저도 '하늘의 별따기'가 되고 있다. 서울지역 공사현장 경비원 김모씨(54)는 "근처 한 공사장의 경우 경비원 대기자가 20명"이라며 "5년 전만 해도 경비로는 쉽게 들어갈 수 있었는데 요새는 경쟁률 세서 아무나 못 들어간다. 50대에 밀려서 60~70대는 어렵고 학벌도 본다"고 귀띔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삶…내일은 없다

지난 3월 OECD가 발표한 '2014년 한눈에 보는 사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실질 은퇴 연령은 71.1세로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늦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늦게까지 일하지만 급격한 경제적 계층·자존감 하락으로 한국 노년의 사회생활은 윤택하지 않다.

경비원 박희봉씨에겐 평균수명인 80세까지 22년이 남았다. 하지만 박씨에겐 삶의 의미도, 낙도 없다. 박씨는 "젊어서는 자녀 교육에 투자하고 50평짜리 전원주택과 부동산을 사들이며 노후 대비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 처분하고 달랑 작은 아파트 하나 남았고 그마저도 시세가 폭락해 팔지 못하고 있다"며 "연금도 없어 기댈 곳이 없다"고 했다. 이어 "한창 땐 등산이나 여가, 사교활동도 즐겼다. 경찰서 자문위원, 청소년 선도위원도 맡았다. 지금은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완전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 100만원 벌던 사장님, 부도후 결국 경비원으로

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 회장은 "우리나라의 80~90% 중장년층이 어떤 노후준비나 생애 목표도 없이 조기퇴직이나 정년을 맞았다"며 "대개가 자녀교육에 올인했거나 IMF 등에 쓰러진 후 패자부활전 없이 그냥 늙어가고 있다. 마지못해 근근이 50만원, 100만원 급여 받으며 생을 끌어가고 있는데, 유럽의 노년층이 사회참여나 자원봉사, 여가생활을 논하는 것과 상반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 회장은 "고용노동부나 구청 등에서 제공하는 일자리가 많아 보이지만 허수가 많고 괜찮은 소수의 일자리는 경쟁이 심하다"며 "노년의 가장 큰 고통은 경제적 빈곤문제다. 빈곤이 해결되면 역할상실, 고독감은 사회생활을 통해 자연스레 해결되는 만큼 국가와 기업은 연령차별을 줄이고 질 높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소연
박소연 soyun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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