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엘피다 인수 불참"…장고끝 결론"(종합)

↑최태원 SK그룹 회장(가운데)이 4일 열린 SK하이닉스 정기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대치동 SK하이닉스 서울사무소에 결의에 찬 표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인수합병(M&A)은 기회가 있으면 계속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 엘피다 인수 본입찰에 참여 않기로 한 것과 관련) 지금은 전략적으로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4일 SK하이닉스 (174,200원 ▼1,700 -0.97%) 서울사무소에서 열린 정기이사회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이사회 결과가 어땠느냐는 질문에 "입찰할 때 전략적인 가치가 중요하다. 하지만 이사회는 (이 부분에서) 안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이날 이사회에서 D램 메모리반도체 업계 3위인 일본 엘피다 인수를 위한 본입찰에 참여할지 여부를 두고 논의했다. 최 회장은 엘피다 이외 추가적인 M&A를 추진할 계획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기회가 있으면 계속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략적으로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당초 엘피다를 인수하기 보다는 경쟁사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예비입찰에만 참여할 것으로 여겨졌다. 이날 최 회장이 엘피다 본입찰 여부를 결정하는 이사회에 직접 참석하면서 SK가 그룹 차원에서 엘피다 인수에 상당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하지만 이날 이사회가 예상과 다른 결정을 내리면서 SK하이닉스의 엘피다 인수계획은 백지화됐다. SK하이닉스 이사회는 이에 앞서 2001년 말에도 미국 마이크론으로의 매각 안건을 부결시킨 바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본입찰 불참 배경과 관련해 "우선 엘피다 인수를 추진하는데 있어 시간과 정보가 부족했고, 또 재무적인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일본 도시바 등 파트너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점 등이 반영된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엘피다 채권자들의 반대도 SK하이닉스의 본입찰 불참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엘피다 채권자들은 마이크론이 엘피다 파산보호신청 직전에 제안했던 1500억엔(약 2조1000억원)에 매각될 경우, 별도 회생방안을 법원에 제출하겠다며 입찰과정에서 으름장을 논 바 있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엘피다 채권자들의 고가매입 요구가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 주주들과 펀드들의 반대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주주들은 최근 SK 계열사로 편입되면서 회생의 길로 접어든 SK하이닉스가 부실한 엘피다를 인수하는 것에 반기를 들고 있다. 이날 본입찰 불참을 발표한 직후 하이닉스 주가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 5% 급등한 점도 이를 반영한다.

당초 SK하이닉스를 포함해 미국 마이크론, 미국 및 중국 투자펀드 컨소시엄 등 3곳이 본입찰 참여가 유력했으나, 이번 SK하이닉스의 불참으로 엘피다 인수전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전망이다. 엘피다는 이날 정오까지 본입찰 제안서를 마감하고 이달 말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한편 최 회장은 이날 이사회 예정 시간인 오전 10시를 넘긴 27분에 SK하이닉스 서울사무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서울사무소를 나간 시각이 12시 35분인 점을 감안하면 이날 이사회는 2시간가량 진행했다.

이사회에는 최 회장과 하성민 SK하이닉스 이사회의장(SK텔레콤 사장), 권오철 SK하이닉스 사장, 박성욱 SK하이닉스 부사장 등 사내이사 4명을 비롯해 김두경 한국금융연수원 전문자문교수, 박영준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 윤세리 법무법인율촌 파트너 변호사, 김태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창양 전 산자부 산업정책과장 등 5명의 사외이사를 포함해 총 9명 이사진이 참석했다.

이사회가 일반적으로 1시간 30분을 넘기지 않는 점을 감안할 때 이날 이사회는 엘피다 본입찰 참여와 관련해 9명 이사들 간 치열한 찬반 논의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