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어느 날 이별이'

'화수'(화가+가수) 조영남을 인터뷰하러 가는 후배 기자를 따라나섰습니다. 최근 그가 쓴 2권의 책을 재밌게 읽었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과 '어느 날 사랑이'라는 책이었습니다.
　
미술공부를 해보겠다며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려 보았지만 헷갈리기만 하던 현대미술을 조영남의 책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냥 바람 피운 이야기인 줄 알고 관음증을 채우려는 욕망에 읽은 책은 그의 솔직함과 따뜻함 때문에 상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집에서 점심으로 우동과 짬뽕을 시켜먹으면서 3시간 정도 얘기를 나눴습니다. 짬짬이 화투짝과 바둑 장기 등을 소재로 지극히 한국적이고 대중적인, 팝아트 계열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의 작품을 배부르게 감상했습니다.
　

▲ 화투를 소재로 한 조영남의 작품. 그의 집 전체가 화실겸 작업장이다 ⓒ최용민기자

미술이야기를 꺼내자 그의 눈은 금세 빛났습니다. 현대미술이 50%쯤은 사기라는 점을 솔직히 고백하고, 무관객 공연을 100회 이상 한 백남준의 위대함을 역설했습니다. 예쁘고 섹시한 그림을 잘 그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현대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에 대해선 이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며 극찬을 하더군요.
　
이야기를 미술에서 사랑으로 옮겼습니다. 남자에게는 늘 베르테르적 본성과 카사노바적 본능이 섞여 있다는 이야기부터, 남자들 간의 사랑이 남녀 사이의 사랑보다 더 뜨거울 수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요즘 세태를 반영, 사랑이야기는 이별과 이혼이야기로 옮겨 갔습니다. 이제는 한 사람하고만 평생 살 수 없는 시대가 되고 있다는 점에 서로 공감했습니다. 사람의 건강수명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복지와 소득수준 향상으로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살 수 있는 시절이 돼버린 데다, 사회 전반의 투명성 제고가 이혼과 헤어짐을 재촉한다는 것이지요.

특히 휴대폰과 e메일 등 개인 통신수단의 발달은 한 남자, 한 여자의 은밀한 바람기조차 온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이별과 헤어짐을 부추긴다는 것이죠.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멋지게 헤어지는 법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조영남이 써야 할 책은 '어느 날 사랑이'가 아니고 '어느 날 이별이'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와 아내 세실리아처럼 쿨하게 헤어지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화수'는 대답했습니다. "사랑도 음악도 인생도 엔딩이 중요합니다. 처음 만날 때, 함께 살 때, 너무 축복하지 맙시다. 잉꼬부부니, 어쩌니 하면서 너무 과시하지도 말고요. 잔치가 화려할수록 빈 그릇, 쓰레기가 많은 법입니다. 만나고 사랑할 때부터 담백하게 합시다, 너무 축복하지 맙시다, 그러면 이별을 하더라도 쿨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 듣기. 광기와 광분 속에서의 고독과 우울함이 주제다.
　
제대로 된 엔딩, 이별문화, 쿨하게 헤어지는 법을 익히고 가르치는 것은 비단 사랑하는 남녀나 부부 간에 필요한 것 만은 아닌 것같습니다. 삼성그룹 법무팀장을 역임한 김용철 변호사가 벌이는 비자금 폭로전을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7년 동안 삼성에 재직하면서 스톡옵션 등을 포함, 100억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돈을 받았고, 퇴직 후엔 3년간 매달 2000만원의 고문료를 받은 그룹의 핵심 인사가 회사와의 관계가 끝나자마자 바로 비자금 등을 폭로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공범이라며 양심선언을 했고, 신부님들이 그를 보증했으니 폭로한 내용의 진실성을 믿어야겠지요. 삼성으로선 뼈를 깎는 자성의 시간을 가져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의 얼굴 위로 헤어지자마자 과거 사랑한 남자들의 치부를 온 세상에 까발리고 있는 어느 여자 연예인의 얼굴이 자꾸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