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주변지역 인터내셔널 존 만들자”

“대학 주변 거리를 국제화의 시범지역으로 만들어 보면 어떻습니까”

어느 한 자치단체장이 내걸 법한 말이지만 아니다. 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KAIST)의 첫 외국인 여성 교수인 메리 톰슨(27.건설환경공학과) 교수가 최근 학내 회의에서 제안한 내용이다. 톰슨 교수는 지난 10월 카이스트 첫 외국인 여성 교수로 임용됐다.


지난 27일 카이스트에서 장순흥 교학부총장 주재로 이색적인 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 주제는 ‘카이스트의 글로벌화를 위한 행정지원 방안’이었다.

하지만 회의 주제는 ‘주변 동네의 국제화 거리 조성’에 모아졌다. 그 단초는 회의에 참석한 벽안의 외국인 여 교수가 생활 전반에 걸친 불편함을 지적하는 건의서를 통해서였다.

톰슨 교수는 이날 회의에서 “카이스트 인근 식당에서 메뉴를 주문하기 힘들다. 메뉴를 사진으로 찍거나 그림으로 그려 표시하지 않느냐”고 말해 국제화 거리 조성의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이 자리에서 모두 공감대를 형성한 것.


이에 따라 카이스트는 인근 유성구청까지 1㎞ 정도의 지역을 학내 외국인 교수와 학생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인터내셔널 존’으로 만들 계획이다.

이를 위해 카이스트는 이 지역 약국, 병원, 주점, 편의점, 식당, 제과점 등 각종 생활편의시설 이름과 식당 메뉴판에 영어를 병기토록 하는 캠페인을 벌일 방침이다. 외국인 학생이나 교수 등이 평가해 불편함 없이 잘된 곳에 대해 일종의 ‘모범 표식’을 달아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해당 구청도 환영하고 나섰다. 이날 장 부총장은 직접 진동규 대전 유성구청장에 전화를 걸어 “우리도 시작할 테니 구청도 구민들에게 전파해 달라. 서울 이태원보다 외국인들이 더 살기 좋은 글로벌 지역으로 만들어 보자”고 제안, 구청장으로부터 “적극 나서보겠다”는 확답을 받아내 사실상 공동캠페인(?)이 성사됐다.

카이스트가 이 같은 캠페인을 하고 나선 것은 학내 수많은 외국인 교수.학생 등은 물론 인근 대덕특구의 외국인 방문이 잦은 지역적 특성 때문이다.

현재 카이스트에는 전임직 정교수 7명, 겸직교수 2명, 대우교수 9명, 연구교수 13명, 초빙교수 38명 등 총 69명의 외국인 교수와 48명의 외국인 포스트닥(박사후 연구원), 학사 55명, 석사 77명, 박사과정 90명 등 외국인 학생 222명을 포함해 총 340여명의 외국인이 생활하고 있다. 인근 대덕연구단지 역시 외국인 연구원들이 상당수 근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카이스트 장학순 부총장은 “외국인의 눈으로 본 시각을 통해 개선점을 찾기 위해 제안한 건의서가 실제 국제화의 좋은 아이디어가 됐다”며 “거창한 영어마을 같은 걸 조성해보자는 게 아니다. 생활의 작은 실천을 통해 국제화에 다가서 보자는 의도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카이스트와 유성구도 조만간 구체적인 실천방안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