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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중퇴·9급말직에서 3선 군수 된 비결은 '以小成大'

머니위크
  • 김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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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12.2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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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정갑철 화천군수와 以小成大

공고를 중퇴하고 읍사무소 말단 공무원으로 출발해 군수에 오른 사람. 정갑철(65) 화천군수다. 그는 군수도 압도적인 표차로 3선을 할 만큼 인기 있는 화천 스타다.

이제 화천하면 떠오르는 두가지 심볼, 산천어축제와 소설가 이외수 씨의 감성마을이 바로 그의 작품이다. 지난 2002년 군수로 데뷰한 그는 고심 끝에 2003년 산천어축제를 론칭했고, 2005년에는 춘천 살던 이외수 씨를 화천의 홍보대사로 모셨다.

평화의 댐에 '세계 평화의 종 공원'을 만들고 그곳에 6·25 참전국에서 기증받은 탄피를 녹여 '평화의 종'을 설치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정 군수의 하루일과는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사업장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출퇴근도 자전거로 하고, 휴일에 지역행사장을 둘러 볼 때도 자전거를 이용한다. 자전거가 그의 자가용인 셈이다. 그래서 자전거가 꽤 비싼 것인가 하고 살펴봤더니 10만원짜리도 안 되는 싸구려다. 그런 자전거를 탄 게 벌써 수십년 됐다.

정 군수는 "시골에서는 차보다 자전거가 더 편리할 때가 많다"며 "자전거 출퇴근은 나의 일상적인 삶 자체였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전시용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정 군수는 몇년 전부터 화천 물길을 따라 '자전거 100리길'을 만들고 있다. 청정 화천을 '자전거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게 그의 꿈이다.



이런 것을 보면 그는 타고난 일꾼이고, 빼어난 '스토리텔러'다. 세상에 먹히는 '스토리'를 만들어 가면서 일을 도모한다. 그의 좌우명 자체가 '작게 시작해서 크게 키운다'는 것, 즉 '이소성대(以小成大)'다.

그는 10년 가까이 군수를 하면서 화천에 작은 씨앗들을 많이 뿌려 놓았고, 지금도 열심히 뿌리고 있다. 그중 어떤 것은 싹을 틔웠고, 또 어떤 것은 산천어축제처럼 크게 자랄 것 같다.

그의 삶도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소성대'다. 그는 성동공고 3학년 시절 가세가 기울자 학업을 파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중졸자가 할 만한 일이 별로 없었다. 처음 시작한 일은 화천 재래시장의 야간경비원. 이후 포항의 발전소 건설 공사장으로 일자리를 찾아 내려가려다가 우연찮게 친구의 권유로 9급 공무원 시험을 본다. 황급히 보름을 공부하고 본 시험에 큰 기대를 할 수 없었는데 덜컥 1등으로 붙어버렸다. 그것이 그의 운명을 결정했다. 그는 1970년 화천 읍사무소의 9급 말단 공무원으로 임용된다.

그리고 한계단 한계단 올라 16년 뒤인 1986년 5급 사무관으로 승진했고, 다음해 도청에서 '콜'이 들어왔다. 군청 사무관이 도청으로 스카우트된 셈이다.

'큰물'로 간 그의 소감은 어땠을까. 막상 가보니 인간미를 느낄 수 없었다. 정도 없고, 모두 경쟁의식 속에 묻혀 살았다. 학연, 지연, 혈연이 득세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과장으로 승진하고, 국장으로 가는 첫번째 길목인 총무과장을 꿰찼다. 공무원 조직에서 총무과장은 아무에게나 맡기는 자리가 아니다. 그만큼 일 잘하고, 성격 무난하고, 대인관계 좋고, 이해갈등을 원만하게 조율할 수 있다는 인증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2001년 그는 화천 부군수로 14년 만에 금의환향했고, 이듬해 선거에서 군수가 됐다. 올해 3선에 성공했으니 2013년이면 군수직도 완전 끝이다. 미관말직에서 시작해 3선 관록의 지방 군수까지, 어찌 보면 입지전적이지만 뚜벅뚜벅 자기 길을 걸어온 '이소성대'의 성실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당연히 이제는 도지사 감이라는 말도 나오지만 정작 그는 진짜로 농사지으러 갈 것이라며 손사레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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