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의 꿈이 '매일 10억원 쓰기'라면?

↑도시형 대안학교 도시속작은학교의 경제 수업. ⓒ이경숙 기자

26일 오후 3시 '도시속작은학교(www.bigschool.or.kr)'의 교실. 강사가 들어와도 아이들은 휴대전화 자판 누르느라 바쁘다. 민인엽 에듀머니 재무주치의가 공통 관심사로 말문을 연다.

"너희들 지난주에 학교에서 지리산 둘레길 다녀왔다면서? 가서 뭘 쓰고 왔어? 소비한 게 뭐야?"


아이들이 구시렁거리기 시작한다. "돈이요." "시간이요." "체력이요." 한 아이가 외친다. "내 인생이요. 10대의 마지막 생일이요! " 강사와 아이들이 동시에 폭소를 터트린다.

◇'되고 싶다'보다 '갖고 싶다'가 많은 아이들='도시속작은학교'는 서울시 서대문청소년수련관에 자리 잡은 도시형 대안학교다. 이 학교는 사회적기업 에듀머니와 함께 9월부터 대안적 경제 수업과정을 개발해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경제 수업 중 나누는 대화가 방송사 시트콤 못잖게 기발하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경제강사가 아이들에게 "지금 하고 싶은 일, 6개월 후와 3년 후에 하고 싶은 일, 10년 후 하고 싶은 일을 정리해보라"고 했다.


17세의 한 소녀가 말한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은 하루에 10억 원씩 쓰는 것이에요. 성형수술을 받을 거예요. 쌍꺼풀, 양악, 모공축소, 다리 지방흡입··· 그 다음엔 대학을 전액장학금 받아서 졸업하고요, 10년 후엔 글로벌 갑부랑 결혼해서 삼성을 먹을 거예요."

18세 다른 소녀가 말한다. "지금 하고 싶은 건 성형수술 받고 두바이 호텔에서 스파 받는 거예요. 그리고 명품 백 선물 받기, 옷 100벌 사기. 6개월 후엔 미국으로 유학 가서 10년 후에 졸업할 거예요. 학교를 일찍 졸업하고 싶지 않아요. 그동안에 쇼핑도 하고, 오픈카도 탈 거 예요."

↑민인엽 에듀머니 재무주치의(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도시속작은학교 학생들과 '아바타 인생설계'를 하고 있다. ⓒ이경숙 기자

이들에 비하면 17세 한 소년의 바람은 수수하게 들린다. "지금은 친구들이랑 당구 치고 싶어요. 시급 6000원짜리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고 싶고요. 6개월 후엔 무전여행, 1년 후엔 군대에 가고 싶어요. 3년 후엔 국회의원이 될 거고요, 10년 후엔 대통령이 될 거예요."

"아이들이 어른들 놀라라고 일부러 과장하는 것"이라고 민인엽 재무주치의는 웃으며 설명했다. 이 정도면 이 학교 아이들은 다른 학교 아이들보다 '건전하다'는 것이다. 그가 출강했던 일반학교에선 '그런 것 생각해봐야 부모가 못해준다'거나 '나는 커서 직장에 못 다닐 것'이라고 말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심지어 친구들한테 이자놀이를 하면서 '나중에 사채업자가 되겠다'고 한 아이도 있었어요. 많은 아이들이 '소비'의 형태로 원해요. '무엇을 갖고 싶다'는 식으로요. '무엇이 되고 싶다'는 형태로 소망하는 아이들이 별로 없어요."

육신혜 도시속작은학교 교사는 아이들 진로상담을 하다가 대안적 경제 수업의 필요성을 느꼈다. 명확한 진로보다는 '돈을 벌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부잣집 아이는 '아빠 돈이 내 돈'이라며 진로를 생각하지 않고, 가난한 집 아이는 하고 싶은 일보다는 큰 돈 버는 일을 꿈 꿔요. 돈이 힘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갖고 싶은 뭔가를 가질 수 있게 하는 힘이요."

문제는 아이들이 앞으로 자기가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는가는 물론, 지금 자기가 어떻게 돈을 쓰는지도 제대로 모른다는 데에 있었다. 도시속작은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경제 용어 대신 소비의 개념을 이야기해주기로 했다. 수업방식으로는 '대화'를 선택했다. 아이들은 달라졌을까?

수업시간엔 짓궂은 공상으로 어른들을 놀라게 한 학생들이었지만 실제 일상에 대한 질문엔 진지해졌다. 한예지 양(17)은 "경제 수업을 들은 후 평생 처음 저금을 시작했다"며 "다른 수업은 공식을 가르치지만 우리 경제 수업은 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걸 알려준다"고 말했다.

"이 수업 후 1개월 전부터 저금을 시작했는데, 6만5000원을 모았어요. 제가 아르바이트로 번 돈 말고는 제일 많이 모은 돈이에요. 모았든, 벌었든 둘 다 제 피 같아서 쓸 수가 없더라고요."

◇경제적 선택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은 "아이가 아이폰을 사달라고 할 때 '안돼'라고만 말하면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억압당한다고 느끼고 자유를 원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때 수많은 매체에서 흘러나오는 광고는 '자유를 주겠다'고 말한다. 이 자유엔 대가가 따른다. '돈'. 결국 아이들은 돈을 갈망하게 된다. '갖고 싶다'는 욕망은 돈에 대한 욕망으로 바뀐다. 돈에 속박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홍 소장은 "진짜 자유를 원한다면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서 욕망과 소비를 재구조화해야 한다"며 "경제적 선택은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아이들이 "내 꿈은 돈 펑펑 쓰는 것"이라고 말할 때 시작해야 할 것은 '대화'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진짜 필요, 진짜 자유에 대해 함께 생각해야 한다. 어른들이 여기저기 심어둔 대량소비의 환상에 아이들의 꿈이 완전히 잠식당하기 전에 말이다.

[팁] 도시속작은학교의 경제 교과 1강. 화폐 이야기 : 역사와 문화로 읽는 화폐 2강. 돈 이야기 : 교환과 시장의 등장. 화폐와 유통 3강. 가격 알아보기 : 물건카드와 쇼핑의 진실 4강. 내 밥상을 차리자!! 5강. 우리 집 돈은 어디로 갈까? 6강. 'OO요금'이 뭐지? 생활요금 알아보기 7강. 내년엔 몇살이지? 내 아바타를 키우자 (미래설계) 8강. 좋아하는 일? 어울리는 일? 직업을 알아보자. 9강. 풍요와 결핍. 많으면 더 좋아? 얼마나 있어야 충분하지? 10강. 돈 이야기 : 순환 그리고 경제3주체 11강. 세금 이야기 : 왜 뺏어가는 건데? 12강. 도전 골든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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