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경기부양책, 노출된 재료다

서동필 IBK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

유럽중앙은행회의는 6월 가장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벤트다. 디플레이션을 방어하기 위해 유럽중앙은행(ECB)이 경기부양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암묵적이면서도 강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드라기 ECB 총재가 유로화 강세에 대해 언급하자 1.40달러에 육박하던 달러/유로 환율은 다시 1.36달러 수준까지 하락해 ECB가 뭔가를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한껏 반영되고 있다.


나아가서는 증시도 유동성을 더 향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강하다. 밸류에이션은 비싸고 기술적으로도 버거운 수준이라는 걱정에도 주식시장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금리도 상황은 비슷하다. 경기 회복론과는 무관하게 금리는 연일 하락해 채권 가격도 상승하고 있다. 주식과 채권이 모두 강세를 보이고 있는 셈인데 이는 전형적인 유동성 장세의 일종이다.

미국 중앙은행은 풀던 자금 규모를 줄이는 수순을 밟고 있으니 미국발 유동성 장세를 논할 일은 없어진 셈이다. 중국도 비슷하다. 중국이 자금을 풀면서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란 기대 자체를 하지 않고 있지만, 한다고 해도 위안화 공급이 늘어 유동성 장세가 온다고 전망하는 것은 넌센스다.


상황이 이러하니 비빌 언덕은 이제 유럽밖에 없다는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어찌 보면 ECB가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을 내놓지 않으면 시장은 배신감에 빠질지도 모른다.

유럽중앙은행회의가 다가올수록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은 유동성 장세를 한 번 더 믿어 볼 것인지, 아니면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파는 전략을 취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필자의 답은 뉴스에 팔고 싶다는 것이다.

5월 ECB에서 디플레이션 방어를 위해 무엇이든지 다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면서 주가도 오르고 채권가격도 오르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펀더멘털에 의한 움직이기보다는 정책 기대감이 선반영된 결과라도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간과하는 부분은 돈이라는 것이 아무리 많아도 비빌 언덕이나 명분이 있어야 움직이게 되는데 유동성이 움직일만한 충분한 명분이 있는가에 대한 반문이 필요해 보인다.

유럽의 경기가 개선된다고 하지만 결국은 물가를 자극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점도 인지해야 한다. 기준금리는 이미 최저수준이다. 금리 인하와 같은 경기부양책에 대해서는 실효성에 의문이 생긴다.

시중에 돈이 없어서 물가가 하락하는 것으로 여기는 투자자는 없을 것이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돈이 돌 유인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정책으로 돈을 회전시키는 것이 정책의 목적이지만 실물 경제가 돈을 유통시킬 의향이나 여력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나아가서는 기업실적도 걸림돌이다. 비단 국내기업들의 실적만이 문제가 아니다. 유럽기업들의 실적도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주가는 계속 오른다. 어딘가 어긋나고 있다는 의심을 해야만 한다. 의심은 대상을 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나의 안전을 위해 냉정해지는 것이다.

실물과 주가의 괴리가 벌어지고 있다는 경고음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ECB의 경기부양책이 자산가격과 실물경기와의 괴리를 줄여준다고 해도 실물경기가 움직이는 속도를 감안하면 괴리를 메우는 것이 단숨에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인 접근일 것이다.

경기가 후퇴하는 것이 아닌 상황에서 돈을 푼다면 분명 유동성 장세를 즐기려 할 것이며, 과격한 충격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유럽중앙은행회의가 끝나면 바로 선물/옵션 동시만기일인 쿼드러플 위칭데이가 기다리고 있다. ECB의 정책기대감이 반영되면서 급하게 오른 이후 맞이하는 쿼드러플 위칭데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재료가 노출된 후 숨고르기에 들어서도 어색하지가 않다.

결국은 한번 숨을 고를 만한 시점에서 쿼드러플 위칭데이라는 명분도 얻을 수 있으니 한번쯤은 쉬는 것을 전술로 삼아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경기부양책을 기대하면서 주가가 오른 것은 돈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면 명분 없이 따라 붙는 것보다 명분이 생기는 시점을 노리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