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상품권 조사, 중소형제약사 떨고 있다

국세청이 100개가 넘는 국내 제약사 대부분을 상대로 상품권 사용 내역에 대한 조사를 벌이는 가운데 이번 조사가 중소 제약사들의 상품권 리베이트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세청은 100여곳의 국내 제약사들을 대상으로 2010년 이후 상품권 사용 내역을 조사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 대부분이 조사 대상인데 실제로는 매출 규모가 큰 대형제약사들은 조사에서 자유롭다는 진단이다.


의사들에게 처방을 대가로 상품권을 제공하는 것은 과거부터 지속돼 온 제약사 특유의 영업방식이다. 법인카드로 구매한 상품권을 의사에게 주거나 상품권을 현금으로 바꾸는 깡을 통해 지급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2010년 11월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 이후 대형 제약사들은 강도 높은 조사의 표적이 됐고, 이후 스스로 과거 영업방식을 대거 바꾼 상태다. 대형 제약사의 한 관계자는 "대형 제약사의 경우 리베이트 조사와 세무조사 등이 동시 진행된 경우가 많아 상품권을 사서 의사들에게 주는 뻔한 방식의 리베이트를 더 이상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법 테두리 내에서 상품권을 쓸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며 "상품권 구입이 미미한 수준이어서 자체 검토 결과 이번 조사에서 큰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그동안 중소형 제약사의 경우 정부 단속에서 자유로웠다. 내부자 고발에 의한 조사를 제외하고 리베이트 조사나 세무조사를 받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 의사들에게 상품권을 지급하는 관행을 이어왔을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의 리베이트 단속이 강화된 이후 매출 상위 10개 제약사의 전문약 시장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이 자리를 중소형 제약사가 채워왔다. 의약품조사기관 유비스트에 따르면 중하위 제약사의 전문약 시장 점유율은 2012년 7월 43.7%에서 지난 10월 48.6%로 4.9%p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매출 상위 10개 제약사의 점유율은 4%p 줄었다. 상위 대형 제약사의 점유율을 대부분 중소형 제약사가 가져간 셈이다. 제약담당 한 애널리스트는 "대형제약사들의 영업력이나 브랜드 인지도가 중소형 제약사들보다 좋은데도 불구하고 실적이 부진하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중소형 제약사들이 공격적으로 영업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만약 제약사들이 상품권을 리베이트에 사용했더라도 상품권 사용내역을 밝히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제약사들이 리베이트 처벌보다는 수위가 약한 세금 추징을 선호할 수 있어서다.

그동안 제약사들은 상품권 구매금액을 접대비 항목으로 회계처리해왔다. 하지만 제약사들이 상품권을 받은 대상을 정확하게 밝히지 않을 경우 상품권 구매금액은 상여로 처리돼 총 구입금액의 38%를 세금으로 내게 된다. 때문에 상품권을 많이 쓴 제약사의 경우 수 억~수 백 억원대 세금 추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부 제약사의 경우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판매관리비(접대비 포함) 비중이 35%에 달해 이중 상품권 구매 비용이 상당하다면 그만큼 세금도 불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