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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내 뱃속에서 탯줄을 꺼내 뜨개질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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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2.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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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강기원 시인 ‘지중해의 피’

[편집자주] '시인의 집'은 시인이 동료 시인의 시와 시집을 소개하는 코너다. 시인의 집에 머무는 시인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감상하고, 바쁜 일상에서도 가깝게 두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시와 시집을 소개한다. 여행갈 때,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시 한편을 읽을 수 있는 여유를 갖는 일, 시 한수를 외우고 읊을 수 있는 삶의 여유를 갖는 것 또한 시인들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시인의 집]내 뱃속에서 탯줄을 꺼내 뜨개질하는 여자
정원에 한 그루의 나무가 서 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나무는 사람의 힘을 빌리거나 죽어야만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다. 집안에서 그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엄마라는, 아내라는 자리에서 좀체 벗어나지 않는(‘못 하는’이 아닌), 발은 있되 발 없는 나무와 다를 바 없는 시인은 스스로 하지 않는, 할 수 없는 굴레를 시로 욕망한다.

시인의 몸은 집(가족)이라는 말뚝의 쇠사슬에 묶여있고, 의식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사회적 규범과 종교적 가치관에 매어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속의 나와 많이 닮아있다. 합리와 질서를 중시하는 나와 비합리와 무질서의 자유인 조르바를 합쳐놓은 듯한, 그런 부조화의 조화를 시인은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격렬하게 결합하는/ 창”(‘흑점 폭발’), “性과 聖의 미묘한 배합”(‘향기의 바이러스’)으로 인식하면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보여준다.

책표지의 어여쁜 프로필 사진과 달리 강기원(1997년 ‘작가세계’로 등단)의 시에는 해골, 뇌수, 피, 두개골, 관 등 죽음을 연상시키는 시어가 난무한다. 또한 해골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의/ 낯가죽 뒤에서 환하게 웃고”(‘해골’) 있고, 임사 체험 피정의 날에 “내가 나를 먹어 대기 시작”(‘나의 창세기’)하고, 이란산 석류가 입 안 가득 “죽음의 향내”(‘이란산 석류 1’)를 풍기고, “살갗 트인 복부 깊숙한 곳에서/ 붉은 탯줄을 꺼내/ 뜨개질”(‘탯줄의 뜨개질’)을 하기도 한다.

투명한 볼 속에 희고 검고 파랗고 노란, 붉디붉은 것들이 봄날의 꽃밭처럼 담겨 있다. 겉도는, 섞이지 않는, 차디찬 것들. 뿌리 뽑힌, 잘게 썰어진, 뜯겨진 후에도 기죽지 않는 서슬 퍼런 날것들. 정체불명의 소스 아래 뒤범벅되어도 각각 제맛인, 제멋인, 화해를 모르는 화사한 것들. 불온했던, 불안했던, 그러나 산뜻했던 내 청춘 같은 샐러드. 샐러드라는 이름의 매혹적인 불화 한 그릇 입 속으로, 밑 빠진 검은 위장의 그릇 속으로, 생생히 밀려들어 온다. 나, 언제나 소화불량이다. 그 체증의 힘으로, 산다, 나는. 여전히, 내내, 붉으락푸르락 샐러드. 나는 불안한 샐러드다. -‘나는 불안한 샐러드다’ 전문

문학평론가 류신은 ‘백적흑청(白赤黑靑) 사색의 샐러드 시학’이라는 시집해설에서 강기원의 시를 “이질적인 날것의 언어가 버무려진 불화의 샐러드”라면서 “시인은 만성 언어 소화불량자”라고 규정한다. 여는 시 ‘나는 불안한 샐러드다’는 “화해를 모르”고 “불온했던, 불안했던, 그러나 산뜻했던” 시인의 심리상태를 잘 보여준다. “희고 검고 파랗고 노란, 붉디붉은 것들이 봄날의 꽃밭처럼 담겨 있”지만 겉돌면서 섞이지 않을 뿐 아니라 “뿌리 뽑힌, 잘게 썰어진, 뜯겨진 후에도 기죽지 않는 서슬 퍼런 날것들”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내면 깊숙이 감춰진 욕망을 화려한 색깔과 빈번하게 사용한 쉼표(,) 그리고 “제맛인, 제멋인”과 같은 언어유희를 통해 감추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한다. 그건 거울 앞에서나 물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욕실 거울 앞에 알몸으로 서 있는 ‘나’와 “이목구비 없이 젖가슴뿐인 바다”(‘지중해의 피’)에 뛰어드는 ‘나’는 “굽이치는 내 안의, 밖의 여울/ 여울의 거울”(‘여울의 거울’)이다.

절제되어 있는 시인의 욕망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원죄의식에 닿아 있다. 하여 “죄에 물들”(‘무화과를 먹는 밤’)어 조르바처럼 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신앙심 깊은 시인이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무거운 짐이다.

◇ 지중해의 피=강기원/민음사/172쪽/9000원

[시인의 집]내 뱃속에서 탯줄을 꺼내 뜨개질하는 여자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6년 2월 12일 (18:00)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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