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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방은 '여론 재판장(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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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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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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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 판결난 사안에 대해 '여론 재판' 양상… 삼권분립 저해·2차피해 양산·차별적 시선 강화 비판

청와대 국민청원방은 '여론 재판장(場)?'
청와대 홈페이지 내 국민청원 게시판이 여론을 유리한 쪽으로 이끌기 위한 장(場)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사법부가 판결을 끝낸 사안에 대해 행정부인 청와대에 재차 호소하는 사례가 늘어 '삼권분립'을 해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사건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난 6일 올라온 '제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 글은 이날 오전 기준 약 25만명이 동의했다. 청원자는 그의 남편이 부산지법 동부지원에서 강제추행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은 뒤 법정구속됐다며 글을 올렸다. 이 국민청원은 청와대의 공식 답변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청원이 올라온 뒤 30일간 20만명 이상 동의를 받으면 정부 관계자가 직접 답변을 해준다.
청와대 국민청원방은 '여론 재판장(場)?'
청원자는 게시글에서 "제 남편이자 8살된 아들의 아빠가 성추행범으로 몰렸다. 죄명은 강제추행"이라며 "제발 그렇게 되지 않게 많이 알려주시고, 재조사하게 해달라"고 적었다. 이어 "우리나라 법은 성적인 측면에서 남자 쪽에 너무 불리하다"면서 "저희 남편이 그 법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덧붙였다.

청원 글에 따르면 남편 A씨는 지난해 11월 참석한 행사의 뒷정리를 위해 식당으로 들어갔고 그 순간 옆에 있던 한 여성과 부딪혔다. 해당 여성은 A씨가 본인의 엉덩이를 만졌다며 경찰을 불렀고, 검찰에 송치돼 재판을 받았다. 청원자는 "CCTV 영상에 하필 그 장면이 신발장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남편이 여자의 뒤를 지나가며 손을 앞으로 모았는데, 판사는 신체 접촉 후에 취하는 행동으로 판단했다고 한다"고 적었다.

청원자가 함께 게시한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강제추행 혐의로 그의 남편에게 징역 6월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피해 내용, 피고인이 보인 언동 등에 관하여 일관되고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자연스럽다"며 피고인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제는 해당 사건이 이미 사법 절차가 끝난 사안이라는 것. 이에 따라 법적으로 유죄판결이 된 사건을 '국민청원'으로 이끌어 여론 몰이를 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즉 국민청원 글이 온라인커뮤니티 등을 통해 확산되는 과정에서 공공연하게 2차 가해가 가해져 피해자에게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이에 대해 직장인 김모씨(28)는 "법적 근거에 따라 이미 유죄 판결이 난 사건인데, 이런 사건을 감정에 호소해 무죄라고 우기고 '국민 청원'으로 문제를 풀려는 건 옳지 않다"며 "법보다 국민청원이 우위에 있다고 여기는 것 같은데, 이는 무서운 발상이다. 억울하면 항소하면 된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모씨(25)는 "댓글을 보니 판사 성별을 묻는 댓글도 많더라. 판사 성별이 왜 중요한지 모르겠다. 또 댓글과 온라인 게시물에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아가는 2차 가해도 많았다. 유죄 판결이 난 성추행 사건에 사람들이 왜 가해자 측에 이입해서 피해자를 멸시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내용의 국민청원이 화제를 모으자 유사 청원도 늘고 있다. 지난 9일 밤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전 성추행범이 아닌데, 대한민국이 성범죄자랍니다'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게시자는 2016년 본인이 신혼이던 시절 친구 두 명과 술집에 놀러갔고, 여성들과 합석해 놀던 중 성추행 시비에 휘말려 벌금형을 선고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같은 제목으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물도 올렸는데, 해당 게시물 역시 커뮤니티 이용자의 공감을 얻으며 10일 오후 4시 기준 4000명의 서명을 받았다.

일각에선 이 같은 국민청원이 민주 국가의 가장 기본적 원칙인 '삼권분립'을 위배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사법 기관에서 처리가 끝난 일에 대해 행정 기관에 호소하는 건 국가 근간을 흔드는 발상이라는 것이다. 삼권분립은 국가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권력을 입법·행정·사법의 셋으로 나누어, 각각이 서로 견제·균형을 유지시키도록 한 원칙이다.

이 같은 비판은 앞서 지난 2월 국민청원 게시판에 '판사를 파면하라'는 청원글이 잇따라 게시될 때도 나온 바 있다. 지난 2월 청와대 게시판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파면을 요구하는 국민 청원이 수백건 올라왔다. 해당 내용의 국민청원에 동의를 한 국민의 수가 23만명에 달하자 같은 달 22일 정혜승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은 이승련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정 부장판사에 대한 국민 청원 내용을 전달했다.
정혜승 청와대 뉴미디어 비서관이 지난 2월20일 청와대의 페이스북 생중계 '11:50 청와대입니다'에 나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부장판사를 감사해달라는 국민 청원에 답하고 있다. /사진='청와대입니다' 캡처
정혜승 청와대 뉴미디어 비서관이 지난 2월20일 청와대의 페이스북 생중계 '11:50 청와대입니다'에 나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부장판사를 감사해달라는 국민 청원에 답하고 있다. /사진='청와대입니다' 캡처
이에 대해 당시 법조계에서는 청와대가 사법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 전산망 '코트넷'에 글을 올려 "법관의 의사표현기구인 법관대표회의는 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성명서 채택 등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외부로부터 사법권 침해가 이루어진다면, 그 주체는 행정부가 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판사 파면 국민청원 전달에 우려를 표한다"는 공식 성명을 내놨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청와대 관계자가 대법원에 전화한 것이 사실이라면 법원의 독립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청와대가 국민청원 사실 자체만을 전달했다고 하고 직접적으로 외압을 행사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개별 사건마다 국민청원이 있다고 이를 모두 법원에 전달하면 법원은 여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법부 독립은 엄정하게 보장되어야 하고, 이를 조금이라도 훼손할 우려가 있는 일은 엄격하게 금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민청원방이 국민의 여론을 모으는 순기능도 하지만 동시에 차별적 시선이 결집되는 공론장으로 기능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앞서 지난 6월12일 올라와 15만명이 넘게 동의한 '난민수용 거부' 청원이 대표적이다. 당시 청와대는 지난 6월16일 이 청원을 삭제했는데, 당시 청원에 담긴 '이슬람 사람들은 여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애 낳는 도구로만 생각하는 사람들로 성범죄가 만연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는 표현이 차별적·선정적이라 문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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