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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이런 개뼈다귀 같은 삶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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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수 시인
  • 2019.04.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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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신휘 시인 ‘꽃이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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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돋우다’라는 순우리말이 있다. 여기서 ‘북’은 식물의 뿌리를 싸고 있는 흙을 말한다. 식물이 잘 자라도록 뿌리 주위에 흙을 더 넣어줘 북돋우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기운이나 정신 따위를 높여 용기는 주는 것이 바로 ‘북돋우다’이다.

1995년 ‘오늘의 문학’으로 등단한 신휘(1971~ )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꽃이라는 말이 있다’에는 동식물이나 자신, 주위 사람들을 북돋아 주는 시편들이 포도알처럼 맺혀 있다. 비바람에 깎인 흙을 다시 긁어모아 덮어주어야 식물이 튼튼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다. 북돋아 주지 않으면 죽든지 감자나 고구마처럼 푸른 독을 품는다.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아이가 있었다. 수많은 상념이 그 아이를 백치로 만들었다. 머리는 적산처럼 기울었고 얼굴에 수심이 가난처럼 아프게 박혔다. 입은 있으되 말은 할 수 없고 귀는 있으되 들을 수 없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와도 단 번 닫힌 말문 열리지 않고, 밤마다 붉은 환청만 부적처럼 귓전에 남아 떠돌았다.

곧 돌아올 것이다. 어디에 가서든 쉬 발설하지 말라. 일찌감치 할아버지 북방의 먼 나라로 가고 없었지만 애비의 가난은 만대의 수치로 남아 저리도 처참한 몰골이다. 이런, 개뼈다귀 같은 삶이 있는가. 온몸이 꽃으로 단청된 붉은 가계의 적장임에도 찾아오는 벌 나비 하나 없다니.

아이가 있었다. 꾀죄죄한 몰골의 아이였다. 철 지난 씨앗을 훈장처럼 가슴에 매단 채 세상의 거리와 거리를 다 기웃댄 뒤에야 비로소 귀가할 수 있는 기구한 운명의 팔자. 상처뿐인 영광의 혈손이 있었다.

- ‘붉은 가계 - 맨드라미’ 전문


경북 김천으로 귀향해 포도농사를 짓고 있는 시인은 대대로 가난했다. 할아버지가 너무 일찍 “북방의 먼 나라로 가”신 후 시인은 “애비의 가난”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남의집살이 삼 년 만에 겨우 장만한 갯논 서마지기”(‘삽달’)를 밑천 삼아 “우리 집 재산목록 일호”(‘말뚝에 대하여’)인 소를 키우면서 소처럼 일했지만 가난을 벗어날 순 없었다.

가난은 “붉은 가계”를 “처참한 몰골”로 만들고, “아이를 백치로 만들”어 끝내 말문을 닫게 만들었다. 어린 나이에 슬픈 상처를 몸 안에 들인 “꾀죄죄한 몰골의 아이”는 너무 일찍 철이 들었다. “매일 학교와 집, 직장을 옮겨 다니며”(‘말뚝에 대하여’) 살던 시인은 실직을 계기로 말뚝에 매여 있는 소와 같은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깨닫고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 봄에는 울타리를 칠 거야. 너무 높게는 말고 작은 키의 참새들이 단번에 톡톡 뛰어오를 수 있을 만큼의 높이, 이 지구의 중력이 새에게 미칠 원활함의 최대치만큼의 높이로 담장을 두를 거야. 그러면, 그 안에서, 나의 시계가 허용하는 내 눈의 최대한도의 편안함에서 새도, 나도 다 같이 마당을 갖게 될 거야.

오는 봄이 걸려 넘어지지 않고, 가는 겨울이 걸려 자빠지지 않도록 이 봄엔 너와 나, 나와 우리 사이에 튀어나온 벽을 허물고 높고 낮은 각의 편견도 없는 울타리를 두를 거야.

예쁜 나비들이 폴폴 날아오를 수 있는 최대한도의 편안함 안에서, 바람이 제 허리를 꺾지 않고도 넘을 수 있는 최소치의 높이 안에서 담장을 칠 거야. 그러면, 그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넘어다볼 수 있는 그 담장 안에서, 이 봄엔 너도나도 다 같이 저마다의 정원을 새로 하나씩 갖게 될 거야.

- ‘봄의 담장’ 전문


“상처뿐인 영광”의 귀향이지만 그를 한결같이 반겨준 것은 열무꽃, 분꽃, 맨드라미, 감자꽃, 가시연꽃, 등꽃 그리고 나비, 거미, 매미, 자벌레, 잠자리와 같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식물이다. 그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떠난 것은 사람이었다. 시인은 그들을 들여다보며 가난의 상처를 치유하고 오랜 슬픔을 내려놓는다. “가비얍게 꽃대 위를 오고 가는”(‘나비’) 나비를 눈부시게 바라보며 “어둑했던 마음이 대궐처럼 환해”(‘꽃을 훔쳤다’)지는 ‘봄의 담장’을 친다.

울타리를 치는 건 나만의 것을 소유하려는 행위다. 달이나 별처럼 너무 멀리 있어 소유할 수 없는 것들도 아름답지만 나 혼자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공간에서 작고 소중한 것들과의 대화는 더 아름답다. 시인은 봄날에 중력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울타리를 친다. 작은 참새가 날아 넘을 수 있는 높이가 아닌 “단번에 톡톡 뛰어오를 수 있을 만큼의 높이”이므로 이 울타리는 경계나 소유라기보다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준비에 가깝다.

“예쁜 나비들이 폴폴 날아오를 수 있는”, “바람이 제 허리를 꺾지 않고도 넘을 수 있는” 높이의 담장은 소유이면서 경계의 역설이다. 울타리와 담장을 두르거나 쌓을수록 사람에 대한 편견이나 관계를 허물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과의 간극을 통한 자기 성찰은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갈 여유와 힘을 보유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넘어다 볼 수 있는 그 담장 안”의 정원에서는 더 이상 “슬픔에 발목이 삐”(‘발목이 삐었다’)지 않아도, “오래고 슬픈 길”(‘고비라는 말을 밤새 읽었다’)을 걷지 않아도, “한숨처럼 멀찍이 혼자 않”(‘나무’)지 않아도 된다. 삶의 무게를 내려놓자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진다.

주걱 하나 닳아 없애는 데 꼬박 사십 년이 걸렸다는 어머니는 부엌 한켠에 신주단지 모시듯 입이 뭉툭한 밥주걱 하나 걸어놓고 사셨다.

―목숨이란 실로 이와 같다

모질고 찰지기가 흡사 밥의 것과도 같거니와, 그 곡기 끊는 일 또한 한 가계의 조왕을 내어다 버리는 일만큼이나 어렵고 힘든 일이다.

대저 쇠로 만든 주걱 하나를 다 잡아먹고도 남는 구석이 밥에게는 있는 것이다.

―「주걱」 전문


“거름이 너무 많으면” 감자가 꽃을 피우지 않는다는 걸 “감자를 먹고 산 지/ 꼭 사십 년만”에 알 만큼 어설픈 농부인 시인을 온전한 농부로 키운 건 부모님이다. 어렵게 농사를 지어 대학에 보내고, 대처에 나가 성공하기를 바랐는데 “대체 뭘 먹고 살”(‘실직’)지 고민하다가 농사를 짓겠다며 귀향한 아들을 보고 아버지는 돌아누웠을 것이다. 실직한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오래 설득했을 것이고.

그런 아들의 영원한 후원자는 어머니다. “주걱 하나 닳아 없애는 데 꼬박 사십 년”이 걸린 밥주걱을 “부엌 한켠에” 걸어놓은 어머니나 40년 만에 거름을 너무 많이 주면 감자꽃이 안 핀다는 사실을 안 아들에게서 강한 연대감이 느껴진다. 사실 어머니에게는 객지에 나간 자식은 아픈 손가락이다.

어머니는 40년 동안 사용한 밥주걱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면서 객지에서 고생하는 아들이 ‘밥은 먹고 사는지’ 걱정하고 빌었을 것이다. 밥주걱을 버리는 행위는 아들의 “곡기 끊는 일”이나 “가계의 조왕을 내어다 버리는” 것 같아 곱게 간직했을 것이다.

시인은 요즘 “몸속 깊이”(이하 ‘낙타, 둘 -우물’) “가만히 오래 들여다볼 수 있는” 우물 하나 가지고 있다. “세상과 맞장 뜨다/ 지쳐 쓰러”(‘시인의 말’)질 때마다 우물 안을 들여다보며 나 자신과 가족, 평생 가야 할 시의 길을 생각한다. 그에게 시는 ‘북’과 같다.

◇꽃이라는 말이 있다=신휘. 모악. 104쪽/ 9000원.


[시인의 집] 이런 개뼈다귀 같은 삶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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