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네이버, 카카오…우리금융판 '적과의 동침'

우리은행과 카카오페이가 지난 10일 각 회사의 화상회의실에서 온택트(온라인 대면) 방식으로 업무협약을 맺었다. 권광석 우리은행장(왼쪽 네번째),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왼쪽 세번째) 등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사진제공=우리은행

'디지털 퍼스트'(Digital First)를 선언한 우리금융그룹이 KT에 이어 네이버, 카카오와 잇따라 손잡으며 '문어발식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빅테크는 기존 금융기관의 '공공의 적' 취급을 받지만 '적과의 동침'도 마다않는 건 디지털 혁신이 절실해서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최근 카카오페이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권광석 우리은행장과 류영준 카카오페이 대표는 온택트(온라인 대면) 방식으로 도장을 찍고 상품 개발부터 서비스 출시, 마케팅까지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우리은행은 카카오톡 등 카카오의 막강한 플랫폼을 이용하게 됐다. 카카오페이는 우리은행의 넓은 고객 기반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카카오페이가 카카오톡으로 제공하는 '내 대출 한도 서비스'에 우리은행 상품을 포함하면서 구체적인 협업을 시작했다. 앞으로 맞춤형 상품, 서비스를 함께 내놓고 마케팅을 공동으로 벌이는 등 적극적인 협업을 잇기로 했다.

우리은행은 이처럼 온라인에서 카카오와 협력관계를 다지는 한편 오프라인에서는 네이버의 손을 잡았다. 금융권에서 네이버와 카카오의 손을 동시에 잡은 경우는 흔하지 않다. 우리은행 영업점 대기 정보를 네이버 모바일 앱(애플리케이션)에서 확인할 수 있게 제휴를 맺었다. 네이버 앱에서 '우리은행 A지점'을 검색하면 실시간 대기 인원이 뜬다. 영업점에 도착하기 전부터 네이버로 모바일 번호표도 뽑을 수 있다.

우리금융그룹과 KT가 지난달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서 업무협약을 맺었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왼쪽 세번째), 구현모 KT 대표(왼쪽 두번째), 권광석 우리은행장(왼쪽 첫번째), 이동면 BC카드 사장(왼쪽 네번째)이 기념촬영에 임한 모습./사진제공=우리금융

우리은행을 비롯해 우리금융이 가장 '통 크게' 협업하는 대상은 KT다. 금융과 통신을 융합해 마이데이터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과 구현모 KT 대표는 합작회사를 세우는 데까지 합의했다. 당장은 KT 고객이 우리은행 적금에 가입하면 금리를 더 주거나 통신료 납부 정보를 대출 신용 평가에 활용하는 식으로 협업한다. 또 각사의 본인인증 방법을 활용해 인증절차를 간소하게 바꾸고 KT 자회사 BC카드와 우리금융 계열사 우리카드가 마이 페이먼트 제도에 함께 대응하면서 디지털 동맹관계를 다져갈 계획이다.


우리금융이 통신사, 빅테크에 손을 건넨 건 코로나19(COVID-19)로 디지털 흐름이 빠르게 변화해서다. 언택트(비대면)는 이미 일상이 됐고 데이터가 공유되면서 플랫폼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손 회장은 코로나가 한창이던 지난 5월 디지털혁신위원회를 탄생시키면서 "지금이 디지털 혁신의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진행한 디지털혁신 포럼에선 과·차장급 직원들에게 "디지털 혁신 속도가 시장 트렌드를 못 따라간다"는 쓴소리를 들어가며 디지털 전략을 재정비했다. 그 결과 통신사, 빅테크와의 동맹관계가 이어진 것이다.

손 회장은 '디지털 퍼스트'를 강조하며 말 없이 관련 도서를 건네곤 한다. 그룹사 CEO(최고경영자)와 임원들, 자회사 직원들을 차례로 만나면서 동일하게 선물한 책은 '경영을 넷플릭스하다'였다. 이 책엔 디지털 혁신을 이룬 넷플릭스, 아마존 등 기업의 스토리가 담겼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더이상 기존의 은행 채널만으로 디지털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워졌다"며 "손 회장은 다른 업계와 경계를 허무는 '빅블러'를 늘 강조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