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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만나는 북한 문화유산] ⑧ 묘향산 서산대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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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05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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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북한은 200개가 넘는 역사유적을 국보유적으로, 1700개 이상의 유적을 보존유적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지역적 특성상 북측에는 고조선과 고구려, 고려시기의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지난 75년간 분단이 계속되면서 북한 내 민족문화유산을 직접 접하기 어려웠다. 특히 10년 넘게 남북교류가 단절되면서 간헐적으로 이뤄졌던 남북 공동 발굴과 조사, 전시 등도 완전히 중단됐다. 남북의 공동자산인 북한 내 문화유산을 누구나 직접 가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하며 최근 사진을 중심으로 북한의 주요 문화유산을 소개한다.

(서울=뉴스1) 정창현 머니투데이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장 =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는 임진왜란 때 73세의 노구로 왕명에 따라 '팔도십육종도총섭(八道十六宗都摠攝)'이 되어 승군을 조직하고 왜군과 싸워 큰 공을 세운 승려로 유명하다. 법명은 휴정(休靜)이고, 별호는 서산대사·백화도인(白華道人)·풍악산인(楓岳山人)·두류산인(頭流山人)·묘향산인(妙香山人) 등이다.

그의 별호는 1556년부터 금강산·두륜산·태백산·오대산·묘향산 등을 두루 다니며 수행하고, 후학을 지도한 것도 관련이 있다. '묘향산인'이란 별호에서 알 수 있듯이 묘향산에는 그를 기리는 사당과 사리탑, 기거했던 암자들과 직접 건립한 석탑 등 여러 유적들이 남아 있다.

묘향산 보현사 경내에 있는 수충사(酬忠祠)의 정문인 충의문과 수충사 비각. 충의문에는 팔도십육종도규정문(八道十六宗都糾正門)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묘향산 보현사 경내에 있는 수충사(酬忠祠)의 정문인 충의문과 수충사 비각. 충의문에는 팔도십육종도규정문(八道十六宗都糾正門)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묘향산 보현사 경내에 있는 수충사의 본전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묘향산 보현사 경내에 있는 수충사의 본전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사당으로는 서산대사가 사망한 후에 서산대사의 화상을 걸어놓고 제사지낸 수충사(酬忠祠, 국보유적 제143호)가 묘향산 보현사 안에 남아 있다. 지금의 건물은 1794년에 지은 것으로 정문인 '충의문'으로 들어서면 왼쪽(북쪽)에 사당의 본전인 '수충사'(영당)가 있고 오른쪽(남쪽)에 수충사비각이 있다. 원래는 이밖에도 여러 건물들이 더 있었으나 1915년 대홍수 때 파괴되어 없어졌다.

묘향산 보현사 경내에 있는 수충사의 본전 안에 걸려 있는 서산대사(중앙)와 제자들인 유정(惟政)과 처영(處英)의 화상.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묘향산 보현사 경내에 있는 수충사의 본전 안에 걸려 있는 서산대사(중앙)와 제자들인 유정(惟政)과 처영(處英)의 화상.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본전 안에는 서산대사와 그의 제자들인 사명대사 유정(惟政)과 처영(處英)의 화상이 걸려 있고, 서산대사의 저작과 유품이 전시돼 있다. 서산대사는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설법을 마치고 자신의 영정(影幀)을 꺼내 그 뒷면에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라는 시를 적어 유정과 처영에게 전하게 하고 가부좌하여 앉은 채로 입적했다고 한다. 입적 후 묘향산 안심사(安心寺)와 금강산 백화암에 사리를 봉안한 부도(浮圖)와 비석이 세워졌다. 비문은 모두 조선 중기 4대문장가의 한 사람인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1564~1635)가 썼다.

묘향산 보현사 옆에 있는 안심사터 부도군. 서산대사 부도와 비도 이곳에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묘향산 보현사 옆에 있는 안심사터 부도군. 서산대사 부도와 비도 이곳에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현재 안심사터에는 44기의 부도와 19기의 비가 남아 있다. 안심사부도떼(보존유적 제122호)라고 부르는 부도 가운데 만든 연대가 가장 오랜 지공나옹의 부도와 비(1384년에 세움), 그리고 서산대사의 부도와 비(1632년에 세움)가 있다. 서산대사의 비석은 6·25전쟁 때 폭격으로 조각나 있다. 16세기에 각 도의 지리, 풍속, 인물 등을 자세하게 기록해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는 묘향산에 369개의 암자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현재는 10여 개의 암자만 남아 있다.

묘향산 보현사 안에 있는 묘향산문화유적안내도 앞에서 해설강사가 묘향산의 여러 암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묘향산 보현사 안에 있는 묘향산문화유적안내도 앞에서 해설강사가 묘향산의 여러 암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묘향산 상원동계곡에 있는 산주폭포 전경. 산주폭포는 묘향산의 폭포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폭포로 알려져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묘향산 상원동계곡에 있는 산주폭포 전경. 산주폭포는 묘향산의 폭포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폭포로 알려져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그중에서도 상원암(上元庵), 국보유적 제41호)이 가장 유명하다. 상원암은 보현사에 딸린 암자로, 묘향산 상원암계곡의 용연폭포, 산주폭포, 천신폭포가 떨어지는 인호대 맞은편 법왕봉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상원암은 고려 때 처음 세워졌고 조선시대 때 여러 차례 중창·보수됐으며, 현재 본전과 칠성각, 산신각, 불유각, 용후각이 남아 있다. 상원암 본전은 정면 5칸(11.06m), 측면 2칸(5.7m)의 기본채에 동쪽 1칸, 서쪽 3칸을 덧붙여 앞면의 총길이는 23.78m이다. 현판 글씨는 19세기 전반기의 명필이었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쓴 것이다.

묘향산 법왕봉 중턱에 있는 보현사의 말사인 상원암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묘향산 법왕봉 중턱에 있는 보현사의 말사인 상원암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묘향산 보현사의 말사인 상원암의 칠성각과 본전의 모습. 묘향산 법왕봉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 뉴스1
묘향산 보현사의 말사인 상원암의 칠성각과 본전의 모습. 묘향산 법왕봉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 뉴스1

상원암의 오른쪽에는 축성전(국보유적 제42호)이 자리하고 있다. 1875년 명성황후가 아들이 세자에 책봉된 것을 기념하여 지은 불전이다. 주로 축원을 위해 왕실에서 파견된 관리, 궁녀, 무당들이 거처했기 때문에 살림집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묘향산 보현사의 말사인 상원암 옆에 있는 축성전 전경. 명성황후가 1874년(고종11)에 출산하고 그 이듬해 아이가 세자로 책봉되자, 세자의 장수를 빌기 위해 세운 불전 중의 하나로 10개월 만에 완공했다고 한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묘향산 보현사의 말사인 상원암 옆에 있는 축성전 전경. 명성황후가 1874년(고종11)에 출산하고 그 이듬해 아이가 세자로 책봉되자, 세자의 장수를 빌기 위해 세운 불전 중의 하나로 10개월 만에 완공했다고 한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상원암에서 법왕봉(1388m) 정상쪽으로 2km정도 더 올라가면 법왕봉의 남쪽 중턱에 능인암(能仁庵, 보존유적 제97호)이 위치하고 있다. 능인암의 창건연대는 잘 알 수 없으나 현재 건물은 1780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묘향산 법왕봉 남쪽 중턱에 있는 보현사의 말사인 능인암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묘향산 법왕봉 남쪽 중턱에 있는 보현사의 말사인 능인암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상원암 동남쪽으로 약 3㎞ 떨어진 불영봉 중턱에는 불영대(佛影臺, 국보유적 제43호) 또는 불영암(佛影庵)이라 불리는 작은 암자가 남아 있다. 1570년에 창건돼 불에 탄 것을 1700년에 중건한 암자다. 불영대(국보유적 제43호)는 정면 5칸(10.77m), 측면 3칸(6.15m)의 건물이며, 예로부터 '불영완월(佛影玩月: 불영대의 달구경)'은 향산팔경(香山八景)의 하나로 꼽혔다. 또한 불영대는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全州史庫)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옮겨 보관한 역사가 깃든 건물이다.

묘향산 불영봉 중턱에 있는 불영대 전경. 예로부터 ‘불영완월(佛影玩月: 불영대의 달구경)’은 향산팔경(香山八景)의 하나로 꼽혔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 뉴스1
묘향산 불영봉 중턱에 있는 불영대 전경. 예로부터 ‘불영완월(佛影玩月: 불영대의 달구경)’은 향산팔경(香山八景)의 하나로 꼽혔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 뉴스1

상원동계곡 동쪽에는 묘향산 향로봉으로 오르는 만폭동 계곡이 있다. 크고 작은 폭포들이 1만개나 있다고 하여 만폭동이라 한다. 기세차고 장쾌한 감을 주는 만폭동 계곡길은 만폭동입구의 서곡폭포에서 무릉폭포, 은선폭포, 만폭대를 지나 유선폭포, 장수바위, 비선폭포를 부감하고 9층폭포까지 오른 뒤 단군성동과 화장암을 거쳐 내려온다. 이곳에서는 단군의 전설이 깃든 단군사와 서산대사가 기거했던 금강암을 볼 수 있다.

묘향산 만폭동계곡 초입에 있는 서곡폭포. 이곳에서 3km 정도 올라가면 단군사가 나온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묘향산 만폭동계곡 초입에 있는 서곡폭포. 이곳에서 3km 정도 올라가면 단군사가 나온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단군사(檀君祠)는 향로봉 중턱에 있으며 단군이 태어나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단군굴 입구에 있다. 단군사는 1937년에 세운 사당건물인데 살림칸, 제당 건물이 남아 있고 지금의 건물은 1995년에 복구한 것이다. 단군사 아래쪽에는 전망이 좋은 단군대라는 바위가 있다.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이 이 바위에서 건너편 탁기봉 중턱에 있는 천주석을 과녁 삼아 궁술을 연마했다고 하여 단군대란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이곳에서 저녁노을빛에 붉게 타는 연봉들을 바라보는 경치는 그야말로 절경이라 예로부터 단군낙조(단군대의 지는 해구경)는 묘향산8경의 하나로 전해진다.

묘향산 향로봉 중턱에 있는 단군굴과 단군사. 지금의 건물은 1995년에 복구한 것이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묘향산 향로봉 중턱에 있는 단군굴과 단군사. 지금의 건물은 1995년에 복구한 것이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만폭동 계곡의 초입에 화장암(보존유적 제95호)과 금강암(보존유적 제96호)이 있다. 화장암은 단군대 아래에 남향으로 위치해 있다. 고려시대에 처음 짓고 1654년과 1737년, 1818년 등 세 차례의 중수를 거쳤다. 지금의 건물은 1818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절은 정면 4칸(11.95m), 측면 2칸(5.55m)의 2익공합각집이며 모루단청을 하였다. 정면 벽에는 비천도를 그리고 툇마루를 놓았다. 화장암은 조용히 앉아서 좌선하는 다른 암자와는 달리 불교경전 뿐만 아니라 유교 서적까지 교육해 이곳에는 불교와 유교를 숭상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고 한다.

묘향산 만폭동 계곡 초입에 있는 보현사의 말사인 화장암.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묘향산 만폭동 계곡 초입에 있는 보현사의 말사인 화장암.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화장암 동쪽에 있는 금강암은 서산대사가 기거했던 곳이다. 산마루에서 먼저 굴러 내려온 큰 바위에 또 다른 바위가 굴러와 겹쌓이면서 자연동굴(금강굴)이 형성됐는데, 고려 말에 이 굴 안에다 금강암을 지었다. 건물은 정면 7.15m, 측면 3.5m 되는데, 방과 부엌은 바위 밑에 있고 앞면 툇마루부분만 굴 밖으로 나와 있다. 원래 '금강방장'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었으나 북한이 보수하면서 '청허방장'이란 현판을 걸었다. '청허(淸虛)'는 서산대사의 또 다른 법호이다. 서산대사를 비롯한 묘향산의 이름 있는 승려들이 흔히 이 암자에서 살곤 하였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조선 건국에 기여했고, 왕사를 지낸 무학대사(無學大師)도 이곳에서 수도했다.

서산대사가 기거했던 묘향산 금강암. 원래 있던 ‘금강방장’이라는 현판이 지금은 ‘청허방장’으로 바뀌어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 뉴스1 <사진16> 서산대사가 기거했던 묘향산 금강암의 내부에 걸려 있는 서산대사의 화상.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서산대사가 기거했던 묘향산 금강암. 원래 있던 ‘금강방장’이라는 현판이 지금은 ‘청허방장’으로 바뀌어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 뉴스1 <사진16> 서산대사가 기거했던 묘향산 금강암의 내부에 걸려 있는 서산대사의 화상.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서산대사가 기거했던 묘향산 금강암의 내부에 걸려 있는 서산대사의 화상. &#40;미디어한국학 제공&#41;2020.12.05. &copy; 뉴스1
서산대사가 기거했던 묘향산 금강암의 내부에 걸려 있는 서산대사의 화상. (미디어한국학 제공)2020.12.05. © 뉴스1

금강암에서 1km 정도 동쪽에 하비로암(보존유적 제98호)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부터 이선남폭포까지 오르는 구간을 하비로동 계곡이라 부른다. 하비로암은 17세기 이전의 건물인데 1882년에 고쳐지었다. 특별한 장식이 없이 소박하다. 주변에 부속건물인 보련대, 산신각, 칠성각이 있다.

묘향산 보현사의 말사인 하비로암의 본전과 보련대 전경. &#40;미디어한국학 제공&#41; 2020.12.05.&copy; 뉴스1
묘향산 보현사의 말사인 하비로암의 본전과 보련대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이선남폭포 전경. 하비로암에서 600m 정도 올라가면 나온다. 폭포는 두 줄기로 갈라져 떨어지는데 마치 두 선남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이선남폭포라고 한다. &#40;미디어한국학 제공&#41; 2020.12.05.&copy; 뉴스1
이선남폭포 전경. 하비로암에서 600m 정도 올라가면 나온다. 폭포는 두 줄기로 갈라져 떨어지는데 마치 두 선남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이선남폭포라고 한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묘향산 비로봉의 북쪽에 있는 부용봉에도 금선대(金仙臺)·법왕대(法王臺), 만수암(萬壽庵) 등의 작은 암자가 남아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자강도 희천시 장평리에 속한다. 법왕대(보존유적 제815호)는 고려시대에 처음 만들어졌고, 1433년에 중창됐다. 법왕대는 서산대사가 수도하던 곳으로 전해진다. 선승들도 가장 찾아오기 어려운 오지 중의 오지 암자로 예로부터 북에선 묘향산 법왕대를, 남쪽에선 지리산 묘향대를 꼽았다고 한다.

묘향산 부용봉 중턱에 있는 법왕대와 다층탑&#40;청탑&#41; 전경. 서산대사가 수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40;미디어한국학 제공&#41; 2020.12.05.&copy; 뉴스1
묘향산 부용봉 중턱에 있는 법왕대와 다층탑(청탑) 전경. 서산대사가 수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묘향산 법왕대의 다층탑&#40;청탑&#41;과 금선대의 다충탑&#40;백탑&#41;. 1576년 서산대가 세운 탑으로 추정된다. &#40;미디어한국학 제공&#41; 2020.12.05.&copy; 뉴스1
묘향산 법왕대의 다층탑(청탑)과 금선대의 다충탑(백탑). 1576년 서산대가 세운 탑으로 추정된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2.05.© 뉴스1

특히 법왕대와 금선대에는 서산대사가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두 개의 다층탑이 남아 있다. 법왕대 다층탑(청탑, 보존유적 제189호)은 청석으로 만들었고, 높이가 1.5m 정도로 복연양연의 연꽃대좌형 기단 위에 4층 탑신(원래는 5층으로 추정)을 올렸다. 탑의 기단 밑돌 측면에 북쪽으로부터 동쪽으로 돌아가며 글을 새겼는데, '석가여래유교제자 겸판선교사사구 도대선사휴정원'이라고 하여 서산대사가 이 탑을 세웠음을 밝히고 있다.

법왕대와 약 200m 거리를 두고 서쪽에 금선대(보존유적 814호)가 자리 잡고 있다. 금선대 백탑은 흰 대리석으로 만들었고, 높이가 1.5m 정도 됐으나 현재는 상층부가 많이 파손됐다. 재질이 다를 뿐 크기와 모양은 법왕대 청탑과 동일하다. 법왕대 청탑에는 탑을 만든 연대를 알 수 있는 기명이 없으나 금선대 백탑의 1층 네 면에 둘러가며 새긴 글자 가운데 남쪽 면에 '만력4년립(萬曆四年立)'이라는 글을 판독할 수 있어 이 탑이 1576년에 세운 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수암(보존유적 181호)은 묘향산 부용봉의 남쪽 중턱 산세가 아주 험한 곳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30년에 개축한 것인데 17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묘향산 부용봉 남쪽 중턱에 있는 만수암의 대웅전 전경. 만수암에는 현재 높은 축대 위에 있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관음전, 명월방 등이 남아 있다. 석조물로서는 1652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미륵불공덕비가 남아 있다.&copy; 뉴스1
묘향산 부용봉 남쪽 중턱에 있는 만수암의 대웅전 전경. 만수암에는 현재 높은 축대 위에 있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관음전, 명월방 등이 남아 있다. 석조물로서는 1652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미륵불공덕비가 남아 있다.© 뉴스1

현재 전라남도 해남의 대흥사에는 서산대사의 사리를 봉안한 '부도탑'을 비롯해 여러 유물이 보존돼 있다. 남쪽 대흥사와 북쪽 보현사 인근에 남아 있는 서산대사의 유적, 유물들을 매개로 남북교류가 이뤄지고, 서산대사를 제향하는 공동행사가 이루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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