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해제 홍원식 회장, 사퇴·승계포기 등 대국민약속도 '유야무야'?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지난 5월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불가리스 사태'와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남양유업은 지난달 '코로나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 제품이 코로나19를 77.8% 저감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해당 연구 결과는 동물의 '세포단계' 실험 결과를 과장해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이에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은 이날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통해 사임 의사를 밝혔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남양유업 (495,000원 ▼1,000 -0.20%) 매각이 무산되면서 홍원식 회장이 불가리스 사태 이후 대국민 사과를 통해 약속했던 회장직 사퇴와 경영권 승계 포기도 유야무야하게 됐다. 홍 회장 측은 한앤컴퍼니(한앤컴)와의 분쟁 해결 이후 경영권 재매각에 나선다는 입장이지만, 현재로선 홍 회장 측의 재매각 의사가 있는지, 있더라도 언제쯤 재매각이 추진될지를 알 수 없다. 불가리스 사태 등 남양유업을 위기에 빠뜨린 홍 회장 일가의 가족경영 체제가 상당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일 홍원식 회장은 법률대리인인 LKB앤파트너스를 통해 주식매매계약 상대방인 한앤코에 계약 해제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앞서 양측은 지난 5월27일 홍 회장 측이 보유한 남양유업 지분 53.08% 전량을 3107억원에 매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계약은 양측의 협상이 없을 경우 8월31일을 넘기지 못하도록 돼 있는데 이 기간이 지나자마자 홍 회장 측이 계약 해제를 통보한 것이다.

홍 회장 측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한앤코의 부당한 사전 경영간섭, 비밀유지의무 위반, 신뢰 훼손 등을 계약 해제의 이유로 주장했다. 반면 한앤코 측은 "주식매매계약 상 규정된 어떤 비밀유지도 위반한 적 없다"고 반박했다. 한앤코 측은 홍 회장이 지난 7월30일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거래를 종결하기로 해놓고 갑자기 입장을 바꿔 매각을 결렬시켰다고 주장해 양측 입장이 갈린다.

홍 회장은 이번 매각 관련 분쟁 후 경영권 재매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이 한앤코 측이 제기한 홍원식 회장 외 1인에 대한 전자등록주식 처분금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홍 회장의 주식 처분권이 동결됐다. 다른 매수인에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하게 된 셈이다. 한앤코 측이 홍 회장 등 주식매매계약 매도인들을 상대로 거래종결 의무의 조속한 이행을 촉구하는 소송도 제기해 양측간 치열한 분쟁이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홍 회장의 회장직 유지가 길어지는 셈이다. 지난 5월4일 홍 회장은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고 눈물을 흘리며 회장직 사퇴와 자식에 경영권 승계 포기를 선언했다. 하지만 4개월여가 지난 현재까지 홍 회장은 회장 직함을 유지하고 있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지난 5월4일 오전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불가리스 사태'와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 중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남양유업은 지난달 '코로나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에서 불가리스 제품이 코로나19를 77.8% 저감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해당 연구 결과는 동물의 '세포단계' 실험 결과를 과장해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이에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은 이날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통해 사임 의사를 밝혔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그의 가족들도 임원직을 차지하고 있다. 회삿돈 유용 의혹으로 지난 4월 보직 해임된 장남 홍진석 상무는 지난 5월26일 상무로 복직했다. 차남 홍범석 외식사업본부장은 같은 날 미등기임원으로 승진했다. 한앤코로의 매각 계약을 밝히기 하루 전이었다. 부인 이운경 고문(전무)도 임원 자리를 유지하고 있고 모친인 1929년생 지종숙 사내이사도 그대로 비상근 등기임원이다.

남양유업 측은 그동안 홍 회장 일가의 인사와 관련, "임원부터 내부 조직에 대한 부분은 진행 중인 한앤컴으로의 매각 계약 종결 이후 매수자측에 의해 일괄 변동될 예정"이라고 답해왔다.

그러나 매각 계약이 무산되고 재매각 추진도 요원해지며 오너 일가의 임원직 유지 종결 요인이 없어졌다. 이 상황이 이어지면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던 홍 회장의 대국민 사과도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홍 회장은 지난 5월 남양유업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뒤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비대위의 지배구조 개선 요청에 "대주주 일가인 지송죽, 홍진석 이사 2명은 등기이사에서 사임하고 전문성을 갖춘 사외이사 확대를 이사회에 요청하겠다"며 "대주주 지분구조까지 새로운 남양으로 출범하기 위한 모든 방안을 심도 있게 검토 중"이라고 답했었다.

이후 남양유업 매각 소식이 나오며 비대위는 사실상 활동을 중단했다. 매각마저 무산되며 지배구조 개선도 요원해졌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