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오징어게임' 전화폭탄 집중보도…"콜롬비아에서도 전화온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오징어게임' 속 한 장면/사진=넷플릭스

"거기, 오징어게임 맞나요? 저도 게임에 참여하고 싶어요."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시리즈 '오징어게임'의 전화번호 노출 문제와 관련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중 분석했다.


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은 '오징어게임' 드라마 시리즈 초반에 빚에 쪼들린 주인공이 건네 받은 명함 속 8자리 전화번호가 노출됐는데 이것이 의도치 않은 '전화 폭탄 테러'로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한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 남미 등 전 세계 사람들이 해당 번호를 누르면서, 실제로 그 번호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의 전화 벨이 쉬지 않고 울리는 피해를 입고 있다고 전했다.
하루 4000통 전화 폭탄…"콜롬비아에서도 전화 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오징어게임' 속 한 장면/사진=넷플릭스

구체적인 피해 사례도 소개했다. 문제의 번호와 똑같은 휴대폰 번호를 사용하는 40대 한 남성은 하루에 4000통의 전화를 받고 있다. 그는 "나는 오징어게임을 본 적도 없어 더 황당하다"며 "20초 마다 한 통씩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밤에 잠도 잘 못 잔다"고 괴로움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사업과 연관돼 있어 번호를 쉽게 바꿀 수도 없다"며 "마지막 자리만 다른 번호를 사용하는 아내 역시 전화와 문자 폭탄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에 사는 20대 중반 회사원 김모 씨도 지난달 '오징어게임'에 푹 빠져 정주행 할 때까지만 해도 황당한 상황에 처해 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자신의 휴대폰 번호가 문제의 그 번호와 비슷하다는 사실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는 연결되면 끊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진위 여부를 확인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김씨는 "심지어 콜롬비아에서까지 전화와 문자가 온다"며 "하나 같이 이 번호가 오징어게임 하는 곳이 맞느냐고 물어온다"고 말했다.


20대 초반 대학 졸업생인 정모 씨의 경우 휴대폰 번호가 드라마 속 가상번호와 2자리가 다른 데도 하루 100통 이상 전화를 받고 있다. 그는 "직장을 구하고 있어 모든 전화를 다 받고 있다"며 "장난 전화에 지쳐서 수신하지 않았다가 취업 제의를 놓칠 까봐 걱정된다"고 울먹였다.

넷플릭스와 제작사인 사이렌픽처스는 전화번호 장면을 편집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수정 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피해자들에게 대한 보상에 대해서도 양측 모두 외면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미국에선 '555' 전용번호 100개 자유롭게 선택 사용

넷플릿그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오징어게임' 속 한 장면/사진=넷플릭스

이 같은 문제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미국 영화·드라마의 본고장인 할리우드에서는 '555-0100'부터 '555-0199'까지 100개 전화번호 리스트를 선택해서 사용하고 있다. 영화 뿐 아니라 TV, 라디오, 만화, 노래까지 모든 창작물에 쓸 수 있다.

하지만 '555'와 같이 획일화 번호가 아니라 다양한 번호를 사용하고 싶어하는 요구가 늘고 있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 영화예술대학 코너 교수는 "관객들이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요소를 넣고 싶어하는 영화 제작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 2003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가 '오징어게임'과 비슷한 문제을 겪은 것도 이 때문이다. 영화에서 하나님의 호출기에 전화번호가 찍힌 장면이 노출됐는데 이후 이 번호를 소지한 개인들과 교회 등에 전화가 폭주했다. 제작사인 유니버설픽처스는 할 수 없이 이 영화의 DVD 버전에서 문제의 번호를 '555' 번호로 바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 역시 정부 산하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가 일반 전화번호 4개, 이동전화번호 2개 등을 별도로 개통해 영화제작자에 무료로 제공하고 있지만 사용 빈도는 미미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용번호 수가 적기도 하지만 스크린 개봉하는 영화가 아니면 드라마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는 사용할 수 없도록 제한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오징어게임'이 촉발한 '전화의 물결'은 문자 등 메시지로 대화하는 것에 익숙한 현대인들의 행동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해석했다. 기술전략컨설팅업체인 액티비티의 마이클 J. 울프 최고경영자(CEO)는 "문자가 전화를 대체한 지 이미 오래됐다"며 "이번 전화 테러는 모순된 현대사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