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370일만에 무죄 윤갑근 "나는 검찰개혁, 공수처 위한 희생양이었다"

윤갑근 전 고검장. /사진=김종훈 기자

24년 경력의 검사를 무너뜨리는 데에는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라임 사태에 연루돼 형사재판에 섰던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58·사법연수원 19기) 이야기다. 윤 전 고검장은 문재인정부에서 '우병우 사단'으로 찍혀 2017년 검찰을 떠났다. 이후 정계 입문을 준비하던 중 '황교안 측근' 딱지가 따라붙었고, 사표를 낸 지 3년 만인 2020년 라임 사건에 휘말려 370일 간 옥고를 치렀다.

윤 전 고검장은 라임 사건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머니투데이가 지난 5일 충북 청주 법무법인 청녕 사무실에서 윤 전 고검장을 만나 소회를 물었다.


"나는 괜찮았던 '타깃'"
-무죄 판결 이후 어떻게 지냈나

▶제가 구치소에 370일 있었다. 일련의 과정이 정상적인 사법절차 속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많은 생각을 했다. 그래서 참담했다. 수없이 검찰개혁, 사법시스템 개혁을 부르짖었는데 공허한 메아리였다.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족을 비롯해 정치에 입문했을 때부터 꾸준히 지지해준 분들에 대한 송구스러운 감정이 있어 복잡한 심경이었다.

-가족도 같이 고초를 겪지 않았었나


▶처음엔 너무 큰 자괴감과 절망감, 주변을 실망시킨 것에 대한 죄스러움 때문에 여기서 삶을 끝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었다. 그 와중에 딸에게 불상사가 생겨서…. 그 순간의 고통이라는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구치소에 있는 동안 면회 온 가족들이나 법정에 온 지인들이 살이 빠진 모습을 보고 너무 슬퍼하더라. 먹고 싶지 않았지만 악착같이 살을 찌우려고 노력했다.

(윤 전 고검장의 딸은 라임 사건 1심 재판 도중 극단적 선택으로 중태에 빠졌었다. 다행히 현재는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회복했다고 한다.)

-라임 사건 수사가 추-윤 갈등 속에서 과잉수사가 이뤄졌다고 주장해 왔다.

▶검찰개혁,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이야기가 나왔던 게 벌써 재작년이다. 조국 전 법무장관 문제도 있었고, 추미애 당시 법무장관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충돌하면서 국회가 시끄러웠다. 그때 '황교안 라인'이라면서 제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 그 과정에서 김봉현이라는 사람이 옥중서신을 보내 '검사장 출신 야당 유력 정치인'이 로비를 한 것처럼 (꾸몄다). 추 전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고, 김진애 전 의원이 룸살롱 접대를 받았다면서 내 실명과 사진까지 공개해 수사가 급물살을 탔던 듯하다. 돌이켜 보면 내가 괜찮았던 '타깃'이었던 것 같다. 야당 정치인이고 고검장 출신이었으니 검찰개혁, 공수처 설치의 명분으로 삼기 좋았을 것이다. 저는 희생양이자 정치적 탄압의 대상이었다.

(윤 전 고검장이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자 김진애 전 의원 측은 실수였다고 법정에서 해명했다. 법원은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인정해 윤 전 고검장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우병우 사단, 황교안 측근이라는 '딱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저는 소위 '스카이(서울대·연세대·고려대)' 출신도 아니고 시골 촌놈이었다. 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것을 상대방 정치권에서 계속 물고 늘어졌다. 검사장 승진할 때 '황교안 라인'의 특혜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때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를 연임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걸 기반으로 (인사가) 이뤄진 것이다. 또 우병우 사단이라는데 우병우 전 수석이 제 인사에 관여할 기회는 마지막 고검장 승진인사를 빼면 아무것도 없다. 내가 우병우 사단일 이유도 없고 그렇게 될 수도 없는데 정치적으로 공격을 한 것이다.

윤갑근 전 고검장이 이모 검사 사건 공소장을 내보이고 있다. 윤 전 고검장은 이 검사 사건의 피해자로, 공소장은 법원에서 적법절차를 거쳐 열람 등사됐다고 한다. /사진=김종훈 기자

"먼지털이 수사, 표적수사 바로잡는 것이 검찰개혁"윤 전 고검장은 취재진 앞에 '윤중천 면담보고서 허위 작성' 혐의로 기소된 이모 검사의 공소장을 들고 나왔다. 윤 전 고검장은 이 검사 사건의 피해자다. 이 검사는 윤 전 고검장이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로비를 받았다는 허위내용을 담아 '윤중천 면담보고서'를 불법 작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이 검사는 '윤갑근과 친분이 없다'는 윤씨의 진술에도 윤씨가 윤 전 고검장과 아는 사이라고 말한 것처럼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후 식사를 하는 척하면서 윤씨의 진술을 몰래 녹음하라고 수사관들에게 지시했다. 수사관들은 핸드폰에서 증거를 찾았다는 거짓말로 윤씨를 유도심문했고 이 검사는 이 심문결과를 보고서로 옮겼다.

-공소장 내용이 충격적이다

▶공소장을 받아보고 너무 기가 막혔다. 윤씨가 (나를) 모른다고 했는데도 별장에 온 것 같다는 진술이 있었다는 등 허위 보고서를 작성한 거다. 이건 정권 안위를 위해 검사가 국민을 죽이는 것 아닌가. 수사기관에 복무하는 사람들이 이런 사고방식을 가졌다면 대한민국 미래는 암울하다. 이런 사람들은 극소수라고 믿고 싶다.

-현재 검찰은 어떤 것 같나

▶표적수사, 별건수사, 편파수사, 먼지털이식 수사, 공정성 논란 등에서 개혁을 이루지 않으면 검찰은 더 이상 존립할 수가 없다. 개혁은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그런데 검찰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검찰은 수십년 전으로 회귀해버렸다. 검찰이 정권에 장악됐다. 주문식, OEM(주문자위탁생산)식 수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먼지털이 수사, 표적수사 이런 것을 바로잡는 것이 검찰개혁이지 검찰권을 나누고 쪼개고 할 문제가 아니다. 대형 사건은 능력있는 전문 검사들에게 맡기되 검찰권을 철저히 견제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처럼 검찰권을 찢어서 여기 주고 저기 주고 하는 것은 새로운 권한남용 기관을 만드는 것밖에 안 된다.

"공수처 통신조회, 100% 범죄혐의 나온다…수사 자신있다"-공수처에 대한 생각은

▶통신사찰 문제 관련해서 공수처는 '검경도 다 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데, 몇 건 했느냐보다 누구를 했는지가 중요하다. 왜 한결같이 야당 정치인, 공수처 비판하는 기자 등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들을 조회했나. 그리고 통신조회를 한 사유가 명백해야 하는데, 사유를 밝히지도 않았지만 사유 자체가 있을 수가 없다고 본다. 수사하면 100% 직권남용 내지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가 나올 것이다. 나한테 공수처 수사하라고 하면 자신있다.

-검찰개혁을 위한 제언을 한다면

▶검찰개혁은 국민의 입장에서 고소 사건을 정확히, 빨리 처리해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수사관들의 자질을 높인다던지, 인력을 늘린다던지. 검·경 수사권을 조정하더라도 검·경을 '원팀'으로 만들어줘야 한다. 권한 나누기, 뺏기, 쪼개기 이런 것은 개혁이 아니라 조직 장악이고 개악이다.

▶마지막으로 구치소 370일 있으면서 재소자들과 많은 대화를 해보니 억울해 보이는 사람, 억울한 사람들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 스스로도 검사 인생을 돌이켜보며 반성을 많이 했다. 검사 입장에서 사건을 올바르게 밝히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었던가를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우리 수사기관과 사법부도 뜨거운 고민, 깊은 고민을 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