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강국' 기틀 마련 '故이어령' 영면..문화계 "유지 받들 것"

2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문화체육관광부장(葬) 영결식이 거행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시대의 지성으로 불린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영결식이 2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엄수됐다. 평생을 문인으로 살며 글을 쓰고, 국민 문화향유를 확대하기 위해 도서관 발전에 힘을 쏟았던 고인의 삶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애초에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모인 문화계 후배들은 그의 유지를 받들어 문화강국의 기틀을 다지겠다고 약속했다.
"큰 스승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벽에 마련된 미디어 캔버스 '광화벽화'에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추모 문구가 나오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달 26일 별세한 고인은 문체부장(葬)으로 거행한 닷새 간의 장례절차를 마무리하고 이날 오전 8시30분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발인을 치렀다. 빈소를 떠난 운구차는 평창동 영인문학관과 옛 문화부 청사였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거쳐 영결식장으로 향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마련된 '광화벽화'에는 고인이 생전 남긴 말과 그를 추모하는 문구가 흘러 나왔다.

영결식은 오전 10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2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문체부는 문화부 장관 재임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국어원 설립 외에도 도서관 발전 정책의 기반을 마련하며 문화정책 기틀을 마련한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성의 상징인 국립중앙도서관을 영결식장으로 골랐다고 설명했다.


이날 영결식에는 고인의 장남인 이승무 한예종 교수 등 유족과 이채익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박정 더불어민주당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 김승수 국민의힘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 이병훈 더불어민주당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을 비롯해 송태호·신낙균·김성재·김종민·유인촌·정병국·박양우 문체부 전임 장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화예술 공공기관장과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모였다.

고인의 영정 입장을 시작으로 묵념,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인 박정렬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장의 약력보고, 장례위원회 위원장인 황희 문체부 장관의 조사, 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이근배 시인과 문학평론가인 김화영 고려대 교수의 추도사가 진행됐다.
"못 다 이룬 일, 후배들이 할 것"

2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문화체육관광부장(葬) 영결식이 거행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황희 장관은 "고 이어령 장관은 불모지였던 문화의 땅에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서 문화정책의 기틀을 세워 문화의 새 시대를 열어주셨다"며 "그 뜻과 유산을 가슴 깊이 새기고, 두레박과 부지깽이가 되어 이어령 장관의 숨결을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근배 시인은 '한 시대의 새벽을 깨운 빛의 붓, 그 생각과 말씀 천상에서 밝히소서'라는 제목의 헌시를 올렸다. 그는 "선생님은 문단에 첫걸을 떼는 철부지였던 저를 거두어주셨다"고 회상하며 "선생님은 대한민국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문화 대역사(大役事)를 이루셨고, 20세기 한국의 뉴 르네상스를 떠받친 메디치로 영원히 새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화영 교수는 "긴 세월 동행하며 느끼고 생각하고 창조하는 정신의 도전을 선생님께 배웠다"며 "죽음을 기억하는 일이 삶을 진정하게 사는 것임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 메멘토 모리. 이제 편히 잠드소서"라고 고인을 추도했다.

조사와 추도사 이후에는 고인의 생전 영상이 상영됐다. 영상에는 고인이 이룬 방대한 업적을 비롯해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라"는 고인의 생전 당부, 그리고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애초에 있던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와 같은 고인이 별세하기 전 남긴 말이 담겼다.

이어 헌화와 분향을 진행하고 고인이 문화부 장관 시절 일군 대표적인 성과인 한예종의 교수와 학생들이 추모공연을 펼쳤다. 이들은 고인을 보내는 안타까움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첼로 앙상블로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e)'의 '엘레지(Elegie)'를 연주했다. 국악 공연으로는 고인의 명복을 비는 조창(弔唱) '이 땅의 흙을 빚어 문화의 도자기를 만드신 분이여'를 연주했다.

이날 영결식장에 모인 문화계 인사들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문화정책 발전을 위해 힘쓰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한 달 전쯤 찾아 뵀을 때, 지난 30년을 짚으시면서 앞으로 30년의 해야할 일을 말씀하셨다"며 "예술은 표현하기 위해 기술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 깊이 새기면서 더 좋은 한예종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인이 문화부 장관 재임 당시 수행비서였던 박광무 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은 "장관께서 못 이루신 일들을 후대 문화부 후배들이 감당해 우리나라 문화의 발전 뿐만 아니라 세계 문화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며 "천국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면서 계속 응원하시리라 본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 석학 이어령은 누구?

=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권노갑 상입고문의 회고록 '순명(順命)' 출판기념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2014.11.3/뉴스1

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암 투병 끝에 향년 88세로 별세했다. 지난 5일 간 문체부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윤석열·안철수 등 대선 후보들을 비롯해 조정래·이문열 작가, 김남조·신달자 시인, 김병종 화가 등 정치·문화예술·학계 인사들이 찾아 조문했다. 영결식을 마친 고인은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한 뒤 충남 천안공원묘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석학인 고인은 1933년(호적상 1934년) 태어나 문학평론가와 언론인, 교수 등으로 활약했다. 서울대 재학 시절인 1956년 문단의 권위의식을 질타하고 문학의 저항적 기능을 역설하는 '우상의 파괴'로 문단에 등장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삶과 죽음, 한국인의 정체성과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 천착했던 고인은 2000년대 디지털 기술에 아날로그 정서를 담은 '디지로그(Digilog)' 개념을 제시해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금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문화기획·행정가로도 굵직한 업적을 남겼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을 총괄하며 냉전의 종식을 외치는 '벽을 넘어서'란 구호를 만들었고, 서울올림픽의 상징으로 꼽히는 '굴렁쇠 소년'을 연출해 박수를 받았다. 이후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0년 1월 초대 문화부 장관을 맡아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 △조선총독부 철거 등 경복궁 복원계획 수립 등을 이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