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900억어치…사형도 두렵지 않은 대륙의 도굴꾼들 [김지산의 '군맹무中']

도굴 당한 조조무덤 /사진=게티이미지

'인류 문명의 요람' 중 한 곳, 5000년 중국 역사를 증명해주는 문화재는 여전히 예술품 애호가들에게 매혹적인 존재다. 그것이 정상적인 경로로 나온 것이든 약탈에 의한 것이든 수집가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2002년 2월 중국 정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골동품 경매업체 키리스티와 소더비가 홍콩에서 청동 호랑이 머리상과 청조 유물 세 점을 경매에 부치자 중국의 한 대기업이 유물을 모조리 사들인 일화는 유명하다.


중국 문화재 시장은 지하 세계에서 출발한다. 문화재 속성상 합법적으로 상품이 공급될 수는 없는 노릇. 땅 밑 공급자들은 오늘도 중국 각지를 돌며 무덤을 판다.

이달 9일 간쑤성 쯔우링린 지방법원은 두모씨 등 14명을 고분 도굴 혐의로 재판을 열었다. 두씨 등은 2018년부터 2년간 20곳 이상 전국시대 및 한나라 왕조 무덤을 파헤쳐 40개 이상 유물을 훔쳤다. 원래 일당은 15명이었는데 그 중 한 명은 땅굴이 붕괴돼 그대로 묻혔다.

중국에서 도굴꾼들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일부는 오랜 시간을 들여 도굴 대상 현장 감시 상태를 점검하고 일부는 도굴 현장 전문가로 참여하고 일부는 매매를 맡는다고 한다.


2019년 1월 벌어진 사건은 대륙 도굴꾼들의 남다른 스케일을 보여줬다. 허난성 위저우 공안은 도로에서 한 차량을 검문했는데 차를 가득 채운 자루에서 1000년 전 북송시대 동전이 발견됐다. 그 무게만 2.2톤. 그 자리에서 검거된 양모씨 일당 4명은 위저우시 한 시골 밀밭에서 동전을 캐냈다고 자백했다. 경찰이 밀밭을 수색했더니 2m 아래에는 아직 캐내지 못한 송나라 동전이 묻혀 있었다. 양씨 등이 팔아치운 동전 1.8톤에 추가 발굴한 1.3톤까지 합쳐 무려 5.3톤이 무더기로 출토된 것이다.

진짜 '도굴왕'은 따로 있다. 2015년 체포된 야오위종은 풍수와 지리 전문가였는데 금속탐지기와 3D 입체 영상기를 동원해 유물을 찾아내고 파헤쳤다. 전문가들이 뒷목을 잡은 부분은 따로 있었다. 야오위종이 직접 제작한 '자쯔'라는 길고 얇은 삽에서다. 그는 땅에 삽을 박아 넣어 파낸 흙 색깔로 땅속에 뭐가 묻혔는지 단번에 파악했다. 전문가들도 흉내 내기 힘든 솜씨다.

도굴범들은 땅굴을 이용해 무덤까지 접근하곤 한다./사진=바이두

그는 30년간 나라에서 지정한 문화재 보호구역만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경찰이 그의 집을 덮쳤을 때 그의 집에서는 2063점 유물이 발견됐다. 경매가격으로 5억위안(약 950억원)어치였다.

그는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재판 중 한 말이 가관이었다. "평생 5억위안 문화재를 훔쳤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 100명 전문가가 있어 봐야 나보다 못하다."

과거 중국 정부가 문화재 보호 노력에 소홀했던 건 사실이다. 중국 문화재청에 다르면 2016년에만 103건의 도굴과 유물 절도 사건이 벌어졌다. 오늘날 중국의 역사적 가치 있는 무덤 10개 중 8개는 이미 파헤쳐졌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도굴에 관한 인기 저자 리팡류는 "문화유산 보고인 허난은 이미 텅텅 비었다. 더 이상 훔칠 게 없다"고 한탄했다.

중국에서 도굴은 현대에 이르러 두드러진 현상이 아니다. 기원전 239년에 쓰여진 뤼스춘추는 "약탈자들을 막기 위해 검소한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써있을 정도로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삼국지의 조조는 도굴을 위한 관청까지 만든 희대의 도굴꾼이었다. '위씨춘추' '삼국지 위서' '삼국지(배송지 저술)' 등은 조조의 도굴 전력을 낱낱이 기록했다. 조조는 발구중랑장, 모금교위라는 도굴 전문 관청을 만들어 닥치는 대로 무덤을 파헤치고 유물을 훔쳤다. 마지막에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무덤을 짓밟았다.

조조는 자기 무덤이 파헤쳐지는 건 두려웠는지 72개 가짜 묘를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0년 진짜 조조의 무덤이 발견됐는데 그때는 이미 도굴꾼들이 싹쓸이한 뒤였다.

중국 정부는 수년째 도굴꾼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2020년에만 2400명을 체포했다. 그리고 유물 3만1000여점을 압수했다.

그러나 식을 줄 모르는 중국 고대 미술품, 유물 인기 때문에 지하 도굴 산업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위조품이 판을 치자 일부 수집가들은 위조 위험이 없는, 아예 새로운 유물을 찾고 있다. 이들이 도굴꾼들의 스폰서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도굴꾼들의 시선은 레드오션이 된 중원 대륙을 벗어나 신장, 내몽고 등 블루오션으로 향하고 있다. 인류 문화 유산은 오늘도 소수의 애호가들과 도굴꾼들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