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라벨 어떻게 믿나?"…글로벌 그린워싱 반대 움직임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녹색연합 회원들이 18일 제54기 정기 주주총회가 개최된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삼척 석탄발전소 중단 촉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2.3.18/뉴스1

탄소중립이 시대 가치로 떠오르며 친환경 전환을 서두르는 기업이 늘어나는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그린워싱(Greenwashing)'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린워싱은 기업이 제품과 운영·서비스 등에 있어서 친환경적인 특징을 과장하거나 잘못 표현해 경제적 이익을 보는 마케팅 관행이다. '친환경 라벨'에 엄격한 인증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커지면서 기업들도 고심에 빠졌다.

1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그린워싱을 방지하는 내용을 포함한 EU 소비자 규칙 개정안을 발표했다. 집행위는 소비자가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친환경 상품의 소비를 결정하도록 보장함으로써 EU의 탄소중립 기후정책인 그린딜 목표 달성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그린워싱 방지를 위해 제3자 인증기관이나 공적 기관의 인증이 없는 지속가능성 라벨의 사용이 금지된다. 제품의 친환경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에코프렌들리(eco-friendly)', '그린(green)', '에코(eco)' 등 친환경 표시 문구 사용도 금지된다. 집행위는 그린워싱 방지 규정의 효과적인 적용을 위해 불공정영업관행지침(UCPD)의 블랙리스트 개정도 함께 제안했다.


이 같은 그린워싱 단속과 규제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그린워싱 단속을 위한 친환경 마케팅 시행지침을 발표했다. 프랑스는 그린워싱을 위반하는 경우 벌금을 부과하는 제재조치를 내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친환경 표시 제품의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해 그린워싱 위반을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 환경단체가 글로벌 석유화학기업 등이 탄소중립·친환경을 내세운 광고에 문제 제기해 국제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늘고 있다. 지난해 말 일본 국제협력기구(JICA)는 녹색채권 자금 일부를 방글라데시 소재 석탄화력발전소에 투입했다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소됐다. 프랑스 토탈에너지도 화석 연료 프로젝트 투자를 계획 중이면서 2050년 탄소중립을 약속했단 이유로 지난달 고발당했다. 대중을 속여 EU 소비자보호법을 위반했다는 주장이다.

한국도 SK E&S가 호주 바로사 지역 LNG(액화천연가스)전을 '탄소중립' 등으로 광고해 거짓·과장광고라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됐다. 공정위는 CCS(탄소포집·저장) 기술 사용 계획이 있다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지만, 환경단체는 인정할 수 없단 입장이다. 최근엔 포스코가 삼척블루파워 석탄화력발전소를, 두산중공업이 베트남 등 해외에 역시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친환경 이미지를 강조한단 이유로 환경단체로부터 '그린워싱'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국내 녹색채권 등 사회적책임투자(SRI) 채권 사후보고 역시 외부 검증 없이 자체 평가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어 그린워싱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SRI 채권 사후보고를 제출한 기업 64곳 중 46곳이 자체 평가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SRI 채권은 발행 후 다음 연도 말까지 자금사용 현황과 사회·환경 효과 등을 담은 사후보고를 받아야 하는데 외부 검증이 의무가 아니어서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이처럼 그린워싱 규제가 엄격해지자 기업들은 긴장하고 있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친환경의 기준이지만, 앞으론 질소산화물 등 환경오염 물질도 포함해 친환경 여부를 따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며 "연결 회계 기준의 해외 자회사 사업까지 그린워싱 규제에 포함시킬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그린워싱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무엇보다 '일관된 기준'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린워싱 기준이 통일되고 그에 따른 사례를 축적하기 전까진 기업 차원의 대응책 수립이 어렵다는 뜻이다. 글로벌 탄소중립 목표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 등에 따라 기업이 친환경 사업 홍보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 정부도 관련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다만, 기업들은 그린워싱 규제에도 유연성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글로벌 석유화학기업, 철강기업 등 탄소배출이 많은 기업들은 탄소중립 목표에 따라 CCS 기술 개발과 수소사업 등 신재생에너지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화석연료발전인 LNG발전도 탄소중립 중간단계로 K-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에 한시적으로 포함됐다.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을 비판하고 '그린워싱'이라며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친환경 전환에도 장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친환경 사업이 이제 막 가시화되고 막대한 투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주요 수익처인 기존 사업을 바로 포기하기는 힘들다"며 "에너지 기업들도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 수립에 맞춰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강도 높은 규제를 곧바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