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도는 태양광·풍력…제주도가 '수소'에 진심인 이유

28일 제주시 한경면 두모리 탐라해상풍력 단지에 설치된 풍력발전기가 가동되고 있다./사진=권혜민 기자

"제주도가 처음부터 '그린수소도시'를 표방한 건 아닙니다. 수소 산업에 관심 없던 제주도가 그린수소 실증사업을 시작한 건 태양광, 풍력에서 남는 전력을 수소를 만드는 데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지난 15일 제주시 구좌읍 동복·북촌 풍력발전단지에서 만난 강상현 제주에너지공사 발전단지 운영사업소 팀장은 "재생에너지 출력제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린수소 수전해 실증 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제주에너지공사가 운영하는 30MW(메가와트) 규모의 동복·북촌 풍력단지는 남는 전력으로 연간 그린수소 1000톤을 생산하는 실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오는 2026년 3월까지 총 사업비 622억원을 투입해 12.5MW급 수전해 설비를 구축한다. 수소 1000톤은 수소승용차 20만대를 충전할 수 있는 양이다. 도내 수소청소차 약 300대와 수소 혼소 발전 등에 활용된다.

제주에선 이미 2017년부터 상명풍력단지 내 260kW(킬로와트) 수전해 기술 개발 실증과제가 추진됐다. 지난해엔 행원풍력단지에서 그린수소 실증사업이 진행되면서 3MW급 수전해 수소 생산 시스템을 구축했다.

제주도 재생에너지 딜레마 '출력제어'…해결책은 '수소'제주도가 그린수소 생산 사업을 서두르는 이유는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출력제어는 발전량이 과잉 공급돼 전력 계통의 과부하가 우려될 때 전력거래소가 발전 사업자에 설비 중단을 요청하는 조치다. 공급전력이 소비전력보다 많을 경우, 고전압으로 인해 송전설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기자가 동복·북촌 풍력발전단지에 방문한 날도 5~7m/s의 바람이 불어 풍력발전을 돌리기에 최적화된 날이었지만, 풍력발전기 15기 중 2기만 돌아가고 있었다. 강 팀장은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기준치를 초과해 ESS(에너지저장장치)와 연결된 2기만 가동시켰다"고 말했다.

제주시 구좌읍 동복·북촌 풍력발전단지의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모습 /사진=최민경 기자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국내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가장 높은 제주도 내 출력제어 횟수는 2015년 3건에서 2019년 46건, 2020년 77건, 2021년 65건 등 급증하고 있다. 올해도 벌써 69건의 출력제어 조치가 내려졌다. 특히 기존 출력제어 조치가 공공 풍력발전단지 위주로 내려졌다면 올해부턴 민간 태양광 발전까지 출력이 제어됐다.

제주도는 지난해 기준 870MW 규모의 태양광·풍력 설비를 구축했다. 전체 발전설비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39%에 이른다.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로 제주도 내 전력 수요의 100%를 충당하겠다는 '탄소 없는 섬 2030' 정책을 추진하면서 도 내 재생에너지 비율이 급증했다. 그러나 수요와 전력계통 안정화를 위한 인프라는 이에 미치지 못하면서 전력계통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제주에너지공사가 지난해 내놓은 재생에너지 출력제약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 제주도 재생에너지 출력제약은 약 179일(4294시간)에 달할 전망이다. 출력제약 예상 발전량은 2078GWh(기가와트시)로, 2030년 제주도 신재생에너지 최대 발전량 5164GWh의 40.2% 규모다.

제주도는 수소에서 해답을 찾았다. 잉여 전력을 그린수소 생산에 활용하는 식으로 수요를 창출한 것이다. '플러스 DR(전력수요자원거래)'의 일환이다. 플러스 DR 제도는 전력계통의 안정을 위해서 특정 시간에 고객의 전력 사용량을 증대시켜 공급과 수요를 맞추고 참여 고객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다. 정부는 지난 3월부터 제주도에 플러스 DR 제도를 우선 도입했다.

강 팀장은 "그린수소 수전해 설비를 만들고 남는 전력을 수소 만드는 데 쓰거나 ESS(에너지저장장치)에 저장하는 방식으로 플러스 DR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며 "도 내 수소·전기차를 확대해 수소와 ESS에 저장된 전력을 쓸 수 있게끔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소도시' 꿈꾸는 제주도…"2024년부터 수소 대량 생산"
제주도는 국산화, 표준화, 상용화를 통해 대규모 그린수소 실증 기술 완성도를 높일 방침이다. 대규모 그린수소 생산을 위한 수전해 설비 설계 기술과 기자재의 국산화를 추진한다. 재생에너지 연계형 대용량 그린수소 생산 시스템의 기술 표준도 수립한다. 태양광, 풍력, 전력계통 직결 등 다양한 조합에서의 수전해 방식별 운영기술도 확보하고 안전기준을 고도화한다.

지자체 정책과 연계해 안정적인 수소 수요를 창출할 계획이다. 강영심 제주특별자치도청 CFI(카본프리아일랜드)총괄팀장은 "재생에너지 기반 대규모 그린수소 생산 설비 국책 사업에 착수했는데 2024년에 수소가 대량 생산될 것으로 본다"며 "수소버스, 수소청소차, 수소관용차 등 공공부문에서 먼저 활용하고 연료전지, 농기계·선박 등 민간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연말을 기점으로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수소버스 등 전주기 수소 생태계가 구축될 예정"이라며 "도내 LNG(액화천연가스) 화력발전소를 수소혼소 또는 수소전소터빈 발전으로 전환하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