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심리 커질라" 레고랜드발 '돈맥경화'에 대기업도 사정권

강원 춘천 레고랜드 호텔 전경. /사진 제공=레고랜드

"자금조달 시장에 불안심리가 확산되는 것이 가장 우려스럽습니다."(A기업 자금파트 담당자)

레고랜드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로 채권 투자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기업들의 돈줄이 마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규모 현금성 자산을 보유한 대기업의 경우 당장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없지만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조달비용이 급격히 올라가거나 협력업체가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도 있는 만큼 자금시장 상황을 면밀히 살피는 모습이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3년물 국고채 금리는 4.221%로, 전날보다 0.084%p(포인트) 내려갔다. 3년물 회사채(AA-) 금리도 0.064%포인트 떨어진 5.528%를 기록했다. 다만 3년물 회사채(AA-)와 국고채 금리차를 나타내는 신용스프레드는 1.307%p로 전 거래일( 1.287%p)보다 확대됐다. 신용 스프레드가 확대됐다는 것은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 부담이 그만큼 커진다는 뜻이다.

레고랜드 사태가 터지기 전에도 기업들의 자금사정은 지표상으로 악화되고 있었다.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일반회사채 발행 규모는 올해 1분기 12조 9050억원, 2분기 8조 8975억원, 7~8월 4조 6135억원으로 감소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채권으로 자금을 조달하는데 부담이 커진 탓이다. 지난해 8월부터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8차례 인상돼 연 0.5%에서 3%까지 급등했다. 회사채 3년물(AA- 등급) 금리는 올 초 2.46%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5.5%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산업계에선 코로나19(COVID-19) 이후 기업 유동성 악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부도 사태가 시장의 불안심리를 가중시켰다고 본다. 불안심리는 자금시장에서 채권 발행 실패로도 이어졌다. 실제로 이날 발행을 시도한 한국가스공사 공사채 2년물은 AAA 신용등급 임에도 투자자를 찾지 못해 유찰됐다. AA+ 등급 인천도시공사 그린본드 채권도 유찰됐다. 이달 20일엔 롯데건설이 단기차입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자 롯데케미칼로부터 5000억원을 긴급 대여했다. 만기는 3개월로 금리는 연 6.39% 수준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B사 관계자는 "회사채 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었다"면서 "고금리로 대출받기도 힘들어지는 등 기업들이 자금 마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은 맞다"고 말했다. C사 관계자는 "최근 대형 M&A가 많았는데, 당장은 그동안 벌어놓은 자금으로 대응이 가능하다지만 결국은 자금 끌어다 쓸 수밖에 없지 않겠나"면서 "최근과 같은 금리 인상기에 자금시장까지 얼어붙게 되면 추후 금융비용 부담 급격히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업들의 상환 능력도 이전보다 떨어졌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작년 상반기 7.6%에서 지난 상반기 7%로 0.6%포인트 낮아졌다.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감소폭이 1.5%포인트로 커진다. 자본금 대비 부채 비율은 작년 6월 말 77.7%에서 지난 6월 말에는 82.5%로 커졌다.

중소중견기업엔 더 큰 위기일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신용도가 B등급인 중소기업의 경우 최근 회사채 금리가 11%가 넘어갈 정도다.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할 경우 결국 은행문을 두드려야 하는데, 대기업에 비해 신용도가 낮은 만큼 높은 금리를 적용받는다. 대여기간도 1년 미만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기에 자금조달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밖에 없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의 연쇄 도산 가능성도 커진다. 한은은 3년 연속 한계기업으로 지정된 기업의 비율이지난해 14.9%에서 올해 18.6%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만큼 우리 산업의 기초체력이 부실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재계에선 최근 정부가 급속도로 경색된 채권시장 안정 등을 위해 50조원+α(알파)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키로 한 것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근본대책이라고 보기엔 한계가 있는 만큼 보다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정부차원의 실질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호 전경련 경제정책팀장은 "금융시장은 심리가 굉장히 중요한데 사태가 부각되자마자 조기에 정부가 50조원의 안정자금 공급 등 대규모 금융안정 조치를 취한 것은 시의적절 하다"면서 "문제가 부각이 되자마자 바로 액션을 취한 것은 불안감을 잠재우는데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봤다.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실장은 "단기적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들에 대한 정책 금융을 늘린다거나 하는 것이 일반적인 대책될 수 있다"면서 "채권 시장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금융권 예대율 규제(대출에 비례해서 예금을 보유해야 하는 규제) 완화하면 기업이 그만큼 은행에서 가용할 수 있는 자금이 확보되고 또 대출 늘리는데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