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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팥 망가진 환자, 돌려보냈다"…몸 사리는 의사의 속사정

머니투데이
  • 정심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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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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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료사고 유죄 비율 67.5%, 일본은 15.8%
산부인과 의사들 "분만 사고 시 거액 배상 판결 두려워"
불가항력 분만 의료사고 시 국가 부담률 100% 곧 추진

※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콩팥 기능이 심각하게 떨어진 환자가 찾아왔다. 예전 같았으면 치료했겠지만 큰 병원 가라고 돌려보냈다. 괜히 손댔다가 환자 상태가 위중해지기라도 하면 형사 처벌받을까 봐 무서웠다."(비뇨의학과 전문의 A씨)

"누구나 일하면서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직업군에서도 실수한다고 5억, 10억을 배상할 일은 없다."(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

의료사고 후 의료진에 대한 구속과 거액이 배상 판결이 잇따르자 의료사고의 의사 책임제가 필수의료 붕괴를 앞당길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25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 창립 10주년 심포지엄'에서 단국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박형욱 교수는 "우리나라는 다른 서구 민주국가와 달리 통상적인 의료과실에 대한 형사처벌이 남발되고 있다"며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형욱 교수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의료과실에 대해 의료진의 법적 책임을 덜어주는 추세라는 것. 박 교수는 "미국과 영국에선 의료과실을 입증할 책임이 환자에게 있고, 통상의 의료과실에 대해 의사를 형사 처벌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영국은 보건의료체계를 국가의 책임하에 두는 NHS(국가건강서비스; National Health Service)를 운영하고, 의료사고의 배상 책임을 전적으로 NHS에서 진다. 영국 정부는 NHS에 대한 의료과오 소송과 보상을 위해 1995년 NHS 산하 특별 보건 위원회 형태로 'NHS소송국(NHSLA)'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NHS소송국은 의료기관의 과오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환자의 근거 없는 배상 청구 난발에도 대처한다. NHS는 공적 의료보장체계이지만 개원의(GP)와도 계약을 맺어 개원의의 의료사고에 대한 배상도 부담한다.

미국은 과거 의료사고에 대한 배상액이 커지자 병원은 위험도 높은 환자의 진료를 거부하는 방어 진료, 진료 수가 인상으로 대응하고 보험사는 보혐료를 인상했다. 이런 문제가 심각해지자, 일부 주에서는 의료진의 의료사고 배상액 한도를 규정하기도 했다.

단국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박형욱 교수가 25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 창립 10주년 심포지엄'에서 의료사고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
단국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박형욱 교수가 25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 창립 10주년 심포지엄'에서 의료사고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
한국은 형법에 따라 의사가 진료를 거부하지 못한다. 그는 "다른 나라들은 응급환자만 진료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우리나라는 의사가 모든 환자에 대해 진료를 거부할 수 없게 돼 있다"며 "수가까지 낮은데, 거액의 배상 판결 위험을 안고서라도 필수의료에 매진할 의사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결국 의사들의 유일한 대응 방안은 위험도 높은 의료, 필수의료를 이탈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라며 "현재 대한민국 의료계에서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4월엔 수원고등법원은 최근 분만 과정에서 과다출혈로 뇌 손상 장애를 입은 환자가 의료기관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10억6180만원과 지난 2016년 2월부터 발생한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배상액과 이자를 합치면 의료기관이 지급할 금액이 15억원 상당이다.

또 올해 초, 대법원은 폐 조직검사 중 환자의 동의 없이 폐 우상엽 전체를 제거하는 절제술을 한 의사에게 11억원의 손해배상 책임에 이어 형사 소송에서도 10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해당 의사는 "조직검사 당시 절제한 오른쪽 폐상엽 말초 부위 조직 판독 결과 정확한 진단이 나오지 않아 확진·치료 목적으로 폐 우상엽 전체를 절제했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채 폐 우상엽의 영구적 손실이라는 상해를 입혔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콩팥 망가진 환자, 돌려보냈다"…몸 사리는 의사의 속사정

실제로 필수의료 분야를 담당하는 의사들은 의료사고에 따른 소송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동경희대병원 산부인과 설현주 교수가 2020년 12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산과교수 120명, 4년 차 전공의 82명, 전임의 28명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4년 차 전공의 및 전임의의 47%가 "전문의 취득 및 전임의 수련 이후 산과를 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이들이 산과를 포기하는 이유의 79%는 '분만 관련 의료사고 우려 및 발생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산과를 택하겠다고 응답한 경우에도 현재 분만을 수행하는 데 가장 걱정되는 부분으로 75%가 '분만 관련 의료사고 우려 및 발생'을 꼽았다.

박형욱 교수는 "진료 거부 금지, 요양기관 강제 지정제, 강제 수가, 강제 심사로 운영되는 우리나라 의료 환경에선 건강보험 의료에서 국가(보험자)의 의료배상 책임을 강화하고 형사처벌을 완화하면 환자와 필수의료 제공자 모두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의료과실로 인한 형사처벌을 '중과실'로 제한하는 입법적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단, 비급여 의료 영역에서의 의료 과실에 대해서는 의사나 의료기관이 전적으로 책임보험료와 배상책임을 부담하는 게 합당하다는 게 그의 견해다. 그는 "경과실의 경우 급여(국민건강보험) 의료는 보험자가 배상하게 하고, 비급여 의료는 민간보험자의 종합보험과 연계해 의료진의 '경과실'을 면책하는 입법적 조치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정홍주 성균관대 경영대학 교수는 의료사고와 책임보험에 대해 강연했다. /사진=정심교 기자
이날 심포지엄에서 정홍주 성균관대 경영대학 교수는 의료사고와 책임보험에 대해 강연했다. /사진=정심교 기자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최근 11년간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재판 건수가 354건이었는데, 그중 유죄 건수는 239건(67.5%)이었다. 반면 일본의 경우 최근 18년간 202건 중 유죄 건수가 32건(15.8%)이었다. 이날 성균관대 경영대학 정홍주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소송은 해외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며 "의료행위에 대한 징벌적 접근은 전공의들이 필수의료를 더 기피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의료진의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지는 제도를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9일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 혁신 전략'을 발표하면서 필수의료 종사자의 의료사고 부담을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필수의료 분야에서 의료분쟁이 발생하면 환자의 피해를 구제하면서도 의료인의 법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불가항력적인 분만 의료사고에 대해 국가의 부담률을 종전 70%에서 100%로 높이기로 했다. 새로 개정된 의료분쟁법에 따라 이 방안은 내달부터 시행될 것으로 예고됐다. 또 현행 보상금액은 산모 사망 시 3000만원, 신생아 사망 시 2000만원, 태아 사망 시 1500만원인데 이 보상금액을 올리기로 했다.

또 형사 처벌 특례를 확대하기 위해 별도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의료사고 피해 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의료계, 환자 단체, 법률 전문가 등으로 구성한 '의료분쟁 제도개선 협의체'도 운영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필수의료 분야 의료배상 책임보험 가입을 지원하는 등 필수의료 종사자의 민·형사상 부담을 줄이는 데 팔을 걷어붙이겠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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