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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광장]박물관의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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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30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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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이태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중국 고대 양나라의 왕이 맹자를 자신의 정원으로 초대했다. 커다란 연못 주위로 기러기가 날고 사슴이 뛰노는 모습을 보여주며 왕이 물었다. "현명한 분께서도 이런 걸 즐기시나요." 그러자 맹자가 답했다. "현명한 사람이라야 즐길 수 있답니다. 현명하지 못하면 이런 게 있어도 즐기지 못하지요." 왕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맹자는 말을 이어갔다. "옛날 주나라의 훌륭한 군주였던 문왕이 정원에 누대를 지으려 하자 백성들이 너도나도 돕겠다고 모여들어 하루 만에 완성했습니다. 문왕은 이 누대를 '영대'(靈臺)라 이름하고 백성들과 함께 정원을 즐겼습니다. 진정한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지요." '백성과 함께 즐기다'라는 뜻의 성어 여민해락(與民偕樂)은 여기서 온 말이다.

그러나 누구나 주나라의 문왕이 될 수는 없었다. 권력자나 부유한 사람들만이 갖고 누릴 수 있던 세상의 진귀한 물건들이 그들의 서재나 금고 밖으로 나와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가기까지 길이 모두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박물관인 루브르 박물관은 프랑스 대혁명의 산물이다. 왕으로부터 궁궐을 빼앗고 왕실과 귀족, 교회가 갖고 있던 것을 거둬들여 박물관을 열었다. "근대 박물관의 탄생은 기요틴(단두대)의 등장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어느 학자의 말이 다소 지나치게 느껴지긴 해도 박물관의 등장이 시민사회의 성장에서 비롯된 것임은 틀림없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은 "나라 안에 전하는 미술품과 현대문명의 진기한 물건을 수집해 두루 관람케 함으로써 국민의 지식을 계발"하고자 궁궐 안에 동물원, 식물원과 더불어 박물관을 뒀다. 처음에는 따로 건물을 두지 않고 창경궁의 전각을 전시실로 삼아 1909년 11월1일 일반에 공개했다. 바로 이 땅의 첫 박물관인 대한제국 제실박물관이다. 그러나 이는 이미 일본에서 메이지유신 이후 신정부가 도쿠가와 쇼군가의 원찰(願刹·조상의 영령을 봉안한 사찰)에 박물관과 동물원을 만들었듯이 일본의 관료들이 대한제국 황실의 권위를 훼손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획책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뒤 대한제국의 국운이 다하면서 지식의 영대를 지으려던 순종의 뜻도 퇴색됐다. 여하튼 박물관이 왕실 귀족의 보물창고나 학자의 표본실과 다른 것은 모두에게 열린 시민들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일국의 문화에서 박물관이 갖는 의미도 여기에 있으며 또 그런 까닭에 박물관도 완공이나 설립이 아닌 개관일을 생일로 삼는다.

얼마 전 가족들과 함께 '1947 보스톤'이란 영화를 봤다. 사실과 다른 부분도 적지 않다고 하나 영화는 내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서윤복 선수, 그리고 그의 선배이자 코치인 손기정, 남승룡 선수까지 그들이 일궈낸 보스턴 마라톤 우승의 이야기도 그렇지만 광복 직후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제 우리 손으로'라는 당시 사람들이 품은 시대적 소명에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 박물관 역시 그렇게 탄생했다. 일제의 무조건 항복 소식이 들리자 훗날 초대관장이 된 고고학자 김재원은 전쟁으로 오랫동안 닫혀 있던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향했다. 건국준비위원회의 위촉을 받아 일본인들로부터 박물관과 소장품을 접수하고 미군정청의 도움을 받아 일본인 부호들이 우리 문화재를 갖고 돌아가지 못하도록 거둬들이고 이미 일본으로 유출된 것은 되찾아오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까지 박물관은 일본인의 전유물이었기에 박물관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 일도 중요했다. 전시를 정돈하고 일본어로 된 설명문을 우리말로 싹 바꿔 새로 문을 연 날 미군정장관 아널드 소장도 찾아와 "조선의 새로운 문화창건의 바탕이 되는 고미술 유적의 보존과 진가를 세계에 드날리는 데 앞으로 만큼은 조선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축하했고 신문들은 '민족문화의 전당'이 '태극기 아래 기쁨의 문을 열었다'며 기뻐했다. 해방되던 해 겨울, 박물관은 그렇게 문을 열었다. 오는 12월3일은 국립박물관의 개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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