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중동 급파 美블링컨의 "정교한" 이중전략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7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모하메드 빈 압둘라만 알타니 총리 겸 외무장관과 회담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로이터=뉴스1

중동 내 충돌 확대 조짐이 이는 가운데 지난 5일(각 현지시간)부터 임기 네 번째 중동 순방 중인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이스라엘과 이란을 향한 메시지를 연달아 발표하고 있다. 이스라엘을 향해서는 가자 지구 강제 이주 등 자극적 주장을 철회하고 '두 국가 해법'을 적극 고려하라는 주문을, 이란을 향해서는 갈등을 부추기지 말라는 경고를 냈다.

'두 국가 해법' 지지 재확인…'가자 지구 강제이주' 주장에는 선긋기7일 미 국무부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전날 튀르키예, 그리스를 연달아 방문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확전 방지와 홍해 항로 안정화를 위한 방책을 논의했다.


국무부는 "블링컨 장관은 레젭 타입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만나 확전 방지, 인질 석방, 인도주의 지원 확대 등을 논의했다"며 "이스라엘이 안보를 확립하고 팔레스타인 정부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한다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방침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블링컨 장관은 그리스에서도 "가자 지구는 팔레스타인 정부 주도로 재건돼야 한다"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벤야민 네타냐후 총리,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부 장관 등 이스라엘 극우파 각료들이 외치는 하마스 완전 섬멸, 가자 지구 주민들의 강제이주 주장과 결을 달리한다. 특히 블링컨 장관은 가자 지구 강제이주 주장에 대해 "주민들에게 가자 지구를 떠나라고 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며 "이스라엘 내각과 의회 일각에서 제기되는 강제이주 주장은 무책임하며 우리는 이를 거절한다"고 했다.


'가자 지구 확전'에 민감…"헤즈볼라 관계국" 이란 저격가자 지구 강제이주는 확전을 부를 수 있는 민감한 주제다. 이란은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 초기부터 가자 지구에 직접 개입할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같은 시아파 헤즈볼라(레바논 무장정파), 예멘 후티 반군을 앞세워 이스라엘, 미국을 압박해왔다. 또 CNN에 따르면 이라크와 시리아에 주둔한 미군도 하마스 전쟁 개전 이후 이란 추종세력으로부터 120차례 넘게 공격을 당했다.

블링컨 장관은 전날 그리스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지대가 가장 우려스러운 곳"이라며 "이곳이 확전의 빌미가 되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6일(현지시간)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와 그리스 크레테에서 회담 중이다./로이터=뉴스1

특히 후티 반군이 최근 들어 홍해 상에서 이스라엘로 향하는 상선들을 공격해 세계 해운 운송량의 20%가 타격을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미국은 그리스 등이 참여한 다국적군을 운용해 상선을 보호하는 '번영의 수호자' 작전을 개시했다. 블링컨 장관이 그리스를 찾은 것은 작전 참여에 대한 감사와 함께 향후 운영 지침을 논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스 기자회견에서 블링컨 장관은 "레바논 정부 입장에서도 확전은 득될 것이 없다"며 "헤즈볼라가 어떻게 하느냐, 헤즈볼라의 관계국이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하느냐의 문제"라고 했다. 헤즈볼라의 뒷배로 꼽히는 이란을 직접 겨냥한 발언이다. 또 후티 군에 대해 "세계 시민 전체가 피해를 입고 있다"며 "예멘 빈민과 가자 지구 시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시 아닌 상담" 미국의 대이스라엘 외교전확전 가능성, 민간인 피해 등 민감한 주제를 제외하면 이스라엘의 하마스 공격을 지지한다는 미국 입장은 변화가 없다. 이는 블링컨 장관의 카타르 순방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7일 블링컨 장관은 모하메드 빈 압둘라만 알타니 카타르 총리와 합동 기자회견에서 "최근까지도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한 것으로 아는데 아직도 이스라엘을 지원해야 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전쟁법, 국제인권법에 맞게 지원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어 블링컨 장관은 다른 기자와 대화하면서 "어떤 국가든 이스라엘이 마주한 위협을 똑같이 겪는다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려 할 것"이라며 "하마스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또 다시 이스라엘을 공격하겠다는 의사를 계속 내비쳤다. 이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어떤 국가든 용납할 수 없는 위협"이라고 했다.

CNN은 또 다른 익명의 미국 고위 관계자 발언을 인용, 미국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정교한 외교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스라엘에 지시하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하지 않으면서 미국이 원하는 출구전략을 이끌어 나가려 한다는 것. 이 관계자는 "우리는 이스라엘에 지시하지 않는다. 다만 가까운 동맹으로서 어떤 시각에서 어떤 목표를 설정했는지, 이런 점을 고려하고 있는지 상담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후 블링컨 장관은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쳐 이스라엘 텔아비브, 서안 지구(팔레스타인 거주지)와 이집트를 방문한다. 서안 지구는 가자 지구와 함께 최대 갈등지역으로 꼽힌다. CNN은 "팔레스타인 마무드 아바스 정부의 미래를 가를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