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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조선청년이 만든 '한국환상곡', 유럽서 연주되던 그날[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 김지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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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2.2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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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기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안익태가 작곡한 '만주환상곡'을 베를린에서 지휘하던 장면./사진=광복회
안익태가 작곡한 '만주환상곡'을 베를린에서 지휘하던 장면./사진=광복회
1938년 2월20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한국인 지휘자에 의해 그가 작곡한 관현악곡이 연주됐다. 한국환상곡. 정식 명칭은 '교향적 환상곡 제1번 한국'이다. 1936년 독일 베를린에서 작곡하고 2년 뒤 아일랜드에서 아일랜드 방송 교향악단이 초연했다.


작곡가는 '애국가'의 안익태. 1906년 평양에서 태어나 일본과 미국에서 클래식 음악을 공부했다. 이후 아일랜드, 헝가리에서 주로 머물며 첼리스트로서 활동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같은 독일 후기 낭만주의 영향을 받은 음악가로 평가된다. 특히 후반부 합창은 애국가 가락을 차용했다. 민족 탄생과 유구한 역사, 일본의 침략과 광복까지 스토리를 담았다.

한국환상곡을 작곡한 1936년은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일본 선수 자격으로 월계관을 쓴 해다. 안익태는 일본 선수단에 있던 조선 선수들과 따로 만나 그때 막 작곡을 마친 애국가를 그들과 함께 처음으로 불렀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1961년 초대 대통령 이승만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음악회에서 연주됐다.



애국자 안익태, 친일파 안익태


그의 행적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1930년대 중반 유럽으로 건너가면서 일본식 이름인 에키테이 안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긴 상태여서 법적으로 일본인으로 살 수밖에 없던 처지를 이해하더라도 '만주환상곡'에 이르러서는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안익태가 베를린에서 지휘봉을 잡았을 당시 만주국 건국 10주년 기념 음악회였는데 그 때 만주환상곡이 연주된 사실이 2000년 들어 밝혀졌다. 만주국은 일본이 조종하는 '아바타' 국가였기 때문에 사실상 일본 찬양이라는 의심을 받았다. 학자들은 게다가 한국환상곡과 만주환상곡에 다수 유사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도 찾아냈다.

안익태가 한국환상곡을 먼저 작곡했다고 해도 6.25 전쟁 이후 개작해 최종 완성한 한국환상곡에 만주환상곡의 일부가 삽입됐다는 건 친일 행적의 진의를 의심케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안익태는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됐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안익태 케이스-국가 상징에 관한 한 연구'에서 안익태가 에키타이 안이라는 이름으로 유럽에서 활동할 당시 일본의 정보 요원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안익태가 1940년대 초반 베를린 체류 당시 거주하던 곳이 주베를린 만주국 공사관 참사관을 지낸 에하라 고이치 집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다. 독일의 한국학자 프랑크 호프만이 발굴한 미 육군 유럽사령부 정보국 문건에는 에하라가 주독 일본 정보기관 총책으로 묘사됐다.

이 교수의 주장이 근거가 빈약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안익태 조카 안경용씨는 "스파이 특성상 비밀유지를 위해 특별 에이전트(안익태)를 자기 집에 두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안익태가 바르셀로나 백작 가문의 딸 로리타 안과 결혼하면서 한국 국적을 버리고 스페인 국적을 얻은 것과 달리 로리타 안은 한국 국적을 평생 유지했다. 그녀는 2005년 "애국가는 한국인들의 것이니 마땅히 한국에 돌려줘야 한다"며 저작권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스페인전에서도 한국을 응원했다고 할정도로 한국을 사랑했다.
/사진=안익태기념재단
/사진=안익태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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