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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세라핌의 여유롭고 느슨한 음악적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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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iz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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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2.2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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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적 진화를 보여준 미니앨범 3집 '‘Easy’

사진=쏘스뮤직
사진=쏘스뮤직
"아름다움(美)은 미리 우리의 환심을 얻는 공개적인 추천장이다."


르세라핌의 새 미니앨범 ‘Easy’의 타이틀 트랙 ‘Easy’의 퍼포먼스를 보며 나는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을 떠올렸다. 데뷔 이후 르세라핌의 “공개적인 추천장”은 언제나 퍼포먼스였고 그것은 좋은 음악, 저마다 색깔이 분명한 멤버들의 ‘아름다운’ 음색과 합을 이뤄 늘 “우리의 환심”을 얻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언젠가 르세라핌을 ‘자신감’이라 정의 내린 적이 있다. 세상을 자신들의 뜻대로 해 끝내 그 세상을 가지겠다는 당찬 포부를 저들은 독특한 ‘3개국어 선언’을 통해 펼쳐왔다. 신작의 문을 여는 ‘Good Bones’도 어느새 그룹의 시그니처가 된 영어, 한글, 일본어 내레이션을 앞세운다. 사실 앨범의 시작에서 이들의 선언은 앨범에 담을 메시지의 요약이기도 한데, 저기 뒤에 있는 ‘Swan Song'의 가사처럼 "상처뿐인 다리로 살기 위해 춤추는" 절박함과 "수많은 날 수많은 눈물"로 초조해하던 자신들의 모습을 통해 무대 뒤의 불안, 고민을 다룬 이번 앨범에서 이들은 그 역시 헤쳐나가겠다는 의지를 ‘Good Bones’로 다지고 있다. 그건 다음 곡 "하날 보면 열까지 간파해 돌파"하겠다는, "난 나비가 될 애송이"이라고 스스로 간주하는 'Smart'에서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마디로 쉽게 이룬 듯 보여도 절대 쉽게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는 게 이번 작품의 주제다. 진흙 속에서 핀 연꽃의 이미지, 나탈리 포트만이 주연한 영화 ‘블랙 스완’의 정서 등이 모두 거기에서 나왔다.


사진=쏘스뮤직
사진=쏘스뮤직


지난 정규 앨범의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가 그랬듯 작가 매기 스미스의 시 ‘Good Bones’에서 영감을 얻은 르세라핌의 ‘Good Bones’는 문학과 음악의 연계로 모종의 지적(知的) 이미지를 그룹에 심겠다는 의지로 보인다(이런 걸 아니꼽게 보는 이들은 “서사 그만 좀 쓰라고” 비꼬는 모양이다). 매기의 시는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속물적 ‘절망’의 불가피성과 그럼에도 아름다움이라는 불굴의 ‘희망’을 믿어보리라는 낙관의 여지를 다루고 있다. 르세라핌은 그것을 “추악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힘을 믿겠다”는 전투 의지로 승화시켰는데, 이들은 그걸 얼마 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미국 록 밴드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의 'Sleep Now in the Fire'를 닮은 헤비한 하드록 리프 위에서 자존감과 냉소를 동시에 머금은 독백들로 읊어냈다. 여성 록 밴드 홀(Hole)과 에이브릴 라빈이 반사적으로 스쳤던 'No Celestial'과는 또 다르게 케이팝 아이돌 음악에서 만나는 이런 록킹한 ‘헤드뱅잉 타임’은 향후 르세라핌 고유의 영역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타이틀 곡 ‘Easy’는 비록 표면적으론 쉽다는 뜻을 지녔지만 사실 그건 쉽지 않았다는 역설이며, 그러니 자신들이 쉽게 만들어 보이겠다는 각오이기도 하다. 이 입체적 감정을 의식한 듯 귀에 쏙 들어오는 플루트 루프와 보컬 라인은 곡을 넘으려는 대신 곡에 스미는 쪽을 택하고 있다. 점점이 썰어나가는 하이햇 비트 아래 여백을 강조한 이 차분한 바이브는 언뜻 2024년판 'Dreams Come True'(S.E.S.) 같게도 들리는데, 가볍고 흐릿하고 공허하다는 일각의 평가는 되레 이 곡이 노린 '쉬움'과 통한다는 데서 일말의 부정적 뉘앙스를 떨어낸다. 글 머리에서 언급한 퍼포먼스, 즉 느긋한 곡 분위기와 대척에 있는 격렬한 안무는 퍼포먼스로만으로도 음악이 들린다는 측면에서 'Impurities'와 비슷한 코드를 공유하고 있는데 참고로 이 곡의 최초 뮤직비디오는 ’KBS 뮤직비디오 심의 결과'에서 부적격을 받았다. 부적격 사유는 '모방 위험'. 아마도 헤어드라이어를 욕조에 빠뜨리는 장면을 문제 삼은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지상파 TV로 뮤직비디오를 즐기는 시대가 아니므로 저들의 심의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질지는 의문이다.


사진=쏘스뮤직
사진=쏘스뮤직


인트로 기타 멜로디와 곧이어 들어오는 보컬 멜로디만 들어보면 달콤한 사랑 노래일 것 같지만 다음 곡 ‘Swan Song’은 앞서 언급했듯 무대에 오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멤버들이 흘려온 땀에 관한 노래다. 마지막 곡 ‘We Got So Much'에 앞선 팬송이었던 '피어나 (Between you, me and the lamppost)'의 팝록 스타일을 잇는 곡으로, 비록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타일라(Tyla)에게 66회 그래미상(베스트 아프리칸 뮤직 퍼포먼스)을 안겨준 아프로팝 넘버 'Water'의 비트와 유사성을 지적받긴 했어도 분명 나름의 매력을 지닌 ‘Smart’와 더불어 무난히 미니앨범의 허리를 받치고 있다.


전체적으로 힘을 뺀 느낌이다. 앨범 제목 ‘Easy’는 혹시 ‘Easy Listening’의 줄임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곡들은 지난 미니앨범들에 비해 한층 느슨하고 여유롭다. 한숨 쉬어가며 자신들의 입장을 들려주는 방법으론 꽤 괜찮아 보인다. 아울러 ‘NME’의 말을 빌리면 앨범 ‘Easy’는 주제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르세라핌의 새로운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새로운 사운드를 시도하길 주저하지 않았던 그들은 이번 앨범에서도 사운드 팔레트를 확장”했다는 얘기다. 진화와 확장이란 으레 불확실한 도전과 공명하는 법. 응집력과 세련된 측면이 부족하다면서도 이들의 역량과 잠재력을 동시에 보여주었다는 '빌보드 필리핀’의 ‘Easy’에 대한 평가는 그래서 이 작품이 내포한 성취와 과제를 뭉뚱그려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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