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반도체 노후장비 중고판매 중단…미국 반발 우려"-FT

지난 2월21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4 스마트 SMT&PCB 어셈블리 전시회'에 모바일, 반도체 후공정 등 최첨단 전자기기 제조의 핵심기술인 SMT(표면실장기술) 와 관련한 다양한 장비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뉴시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노후 반도체 장비를 중고시장에 파는 것을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파이낸셜타임즈(FT)가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 러시아 측에 반도체 장비가 흘러갈 경우 미국 정부와 관계가 틀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엄한 사람 손에 들어가면 미국 정부와 문제"이날 FT는 중고 반도체 장비 중개상 3명을 통해 교차 확인했다면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사용하지 않는 반도체 노후장비를 중고시장에 내놓지 않고 창고에 보관 중"이라고 보도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보관 장소가 모자란 탓에 최근 일부 장비를 시장에 내놓고 있으나, 미국제 장비는 여전히 판매를 기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의 반도체 산업 관계자는 FT에 "(장비가) 엄한 사람 손(Wrong hands)에 들어갈 경우 미국 정부와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조심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한 한국 중고 반도체장비 중개상은 "일부 중국 바이어가 러시아에 장비를 되파는 경우가 있었다"며 "그래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정부가 반발할까 걱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두 기업이 노후장비 판매를 중단한 것은 2022년,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를 개시한 때부터라고 한다. 그해 중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과학법(CHIPS·칩스)에 서명했다.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들에게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대신 중국 내 사업 확장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긴 법이다. 미국은 산업 육성과 국가 안보를 위한 법일 뿐 중국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나, 중국은 자국 '반도체 굴기'를 저지하기 위한 불공정한 조치라며 꾸준히 비난하고 있다.

"10년 된 장비도 보수하면 최신 반도체 생산 활용 가능"FT 보도에 따르면 삼성, SK는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 없어진 노후장비를 재포장해 중개상에게 매각해왔고, 중개상들은 이를 경매에 부쳐 판매했다. 경매에서 가장 큰 손은 중국이었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가전, 자동차에 필요한 구형 반도체 생산에 주력한다. 구형 반도체는 미국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나, 반도체 생산 장비는 얘기가 다르다.


한 일본 중고장비 중개상은 FT 인터뷰에서 "반도체에 회로를 그려넣는 노광장치의 경우, 10년 정도 된 것도 보수하면 첨단 반도체 생산에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의 한 관계자는 FT에 "중국에 배송하려 해도 미국에 가로막힐 게 분명하다"며 장비 판매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와드화니 AI·첨단기술 연구센터 소속 그레고리 앨런 국장은 "삼성이나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장비가 중국 SMIC, YMTC 반도체 생산공장에 들어갈 경우 한미 관계에 좋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