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소 불지른 러 유권자…"푸틴 5선? 유사 선거" 서방 비판 [영상]

예상된 결과가 나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5선 확정 선거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불공정하고 자유롭지 못했다며 의미가 없다고 비판했다. 탄압과 폭력을 통해 사실상 미리 결과를 정해놓은 선거였단 지적이다. 러시아 안팎에선 푸틴 대통령에 항의하는 시위가 잇따랐다.

17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주재 러시아 대사관 앞에 정오 시위에 참여하려는 러시아인들이 집결한 가운데 푸틴 대통령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핏물이 담긴 욕조에서 목욕하는 푸틴 모형이 등장했다./AFPBBNews=뉴스1

1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존 커비 전략소통조정관은 "푸틴이 정적을 구금하고 출마를 막은 것을 고려하면 이번 선거는 분명히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며 선거의 의미가 없었음을 지적했다.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독재자가 또 선거를 흉내 내고 있다"면서 "이 자가 종신 집권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거란 걸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맹비난했다. 이어 그는 "선거 모방 행위는 정당성이 없다"며 "이 자는 헤이그(국제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그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독일 외무부도 "푸틴의 통치는 권위주의적이며 검열, 억압, 폭력에 의존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유사 선거는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AP/뉴시스] 15일(현지시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투표소에서 한 여성이 대통령 선거 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재선이 확실시되는 러시아 대선 투표가 15일부터 3일간 이어진다. 2024.03.15. /사진=민경찬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불법적으로 선거가 치러지고 유권자의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으며 독립적인 선거 감시가 이뤄지지 않은 러시아의 투표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의 모습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선 선거관리 직원들이 투명 투표함을 들고 가정집을 방문하고, 군인이 기표한 투표용지를 접지 않은 채 투명 투표함에 넣는 모습이 공개됐다.


반면 친러 성향 베네수엘라는 푸틴의 당선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냈다. 이반 길 베네수엘라 외교장관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국민을 대표해 푸틴 대통령이 거둔 압도적 선거 승리를 축하했다"고 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BBNews=뉴스1

사실 이번 대선 결과는 일찌감치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선거에 앞서 푸틴 대통령의 주요 정적들이 제거되거나 사라졌고 크렘린궁은 비평가들을 수감하고 언론을 통제했다. 정권을 비판한 러시아 독립 언론들은 우크라이나 침공 후 대부분 불법화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하는 정치평론가 보리스 나데즈딘은 선관위 방해로 출마조차 못 했다. 선거를 앞두고 일부 지역에선 인터넷 접속 차질과 왓츠앱 등 메신저 이용이 제한되는 등 인터넷 검열도 강화됐다.

워싱턴DC 유럽정책분석센터의 안드레이 솔다토프 선임 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러시아 당국은 선거를 핑계 삼아 검열과 탄압 수위를 높이고 있다"며 "이런 활동은 선거 이후에도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대선이 치러지는 16일(현지시간) 한 투표소에서 유권자가 투표함 근처에 불을 질렀다./사진=X

선거가 치러지는 사흘 동안 러시아 안팎에선 크고 작은 항의와 시위가 잇달았다. 모스크바의 한 투표소에선 여성 유권자가 투명한 투표함에 잉크로 추정되는 액체를 쏟아부어 투표용지가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모스크바의 한 투표소에선 여성 유권자가 투표장에 불을 질렀고, 일부 지역에선 유권자가 투표소를 향해 화염병을 투척했다.

선거 마지막 날인 17일엔 선거 전 옥중 사망한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지지자들이 기획한 정오 시위가 열렸다. 17일 정오에 일제히 투표소로 모여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투표를 하자는 것이다. 러시아 곳곳과 해외 러시아 대사관 앞에선 시위에 참여하려는 러시아 국민들이 긴 줄을 늘어서는 모습이 포착됐다.

나발니의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는 17일 독일 베를린 주재 러시아 대사관에서 정오 시위에 참여했다. 그는 투표를 마친 뒤 환호를 보내는 지지자들을 향해 감사를 전하면서 "물론 나는 나발니의 이름을 적었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유튜브 영상을 통해 지지자들에게 푸틴을 찍지 않는 방식이라면 어떤 식으로건 투표소에 나타나 정오 시위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