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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억 전세 살아도 서민?…소득 안 보는 '묻지마' 대출, 전세사기 키운다

머니투데이
  • 권화순 기자
  • 이창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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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5.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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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전세사기, 집값, 가계부채까지…전세대출 영향권 (上)

[편집자주] 전셋값이 뛰고 있다. 가격 자극 요인 중 하나는 정부가 보증하는 전세대출이다. 전세대출은 지난 5년간 5배 늘었다. 기준이 느슨해 고가전세에도 2조원이나 나갔다. 전세보증은 전세사기 원인 중 하나로도 지목된다. 가계부채 증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세대출 문제점을 다각도로 짚어본다.



[단독]9억 이상 고가전세에도 대출 2조원…배려 속 손 놓은 '전세보증'


전세대출을 이용한 전세사기 사례/그래픽=이지혜
전세보증금별 전세대출 잔액/그래픽=김다나
전세보증금 9억원 이상의 고가전세에도 전세대출이 2조원 가량 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대출은 주택금융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서울보증보험 등 3개 보증기관의 보증으로 금융회사를 통해 나간다. 쉽게 보증을 받을 수 있다보니 지난 10년간 전세대출 잔액은 160조원 가까이 급증했다. 고삐 풀린 전세대출은 전세가격 상승을 이끌고 갭투자(전세를 낀 매매), 전세사기를 야기하는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다.

28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전세보증금 구간별 전세대출 잔액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으로 전세보증금 9억원을 넘는 고가전세에 전세대출이 1조9000억원 나간 것으로 집계됐다. 9억~12억원 구간에 1조3000억원이 나갔고 12억원 초과에도 6000억원 잔액이 잡혔다. 서울 아파트 기준으로 전세가격은 평균 3억~4억원 가량이지만 6억~9억원 미만 구간에도 8조3000억원 가량 대출이 나갔다.


보증금 9억원 넘는 고가 전세대출은 2019년말 잔액이 9000억원으로 1조원이 되지 않았지만 2020년 1조원을 돌파한 이후 2조원 내외로 확대됐다. 이 기간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오른 반면 전세 보증 기준은 계속 완화됐다. 여기에 낮은 금리 효과가 더해지면서 전세대출을 이용자가 대폭 늘었다.

전세대출은 은행이 주로 취급하고 있지만 사실상 은행 리스크(위험)은 거의 없는 대출이다. 정부의 공적자금이 투입됐거나 공공기관으로 분류되는 주금공, HUG, 서울보증 등 3개 보증기관에서 대출액의 90~100%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은행은 돈 떼일 염려없이 이자 이익을 얻을 수 있어 '땅 짚고 헤엄치는 대출'로 통한다. 대출금이 떼이면 사실상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전세자금대출 잔액과 전세가격, 매매가격 비교/그래픽=김다나
전세자금대출 잔액과 전세가격, 매매가격 비교/그래픽=김다나
대출자 입장에서도 전세대출은 '서민의 주거안정'이라는 정책적인 배려 속에 '문턱이 낮은 쉬운 대출'이었다. 소득 기준없이 1주택자도 대출을 받을 수 있으며 서울보증의 경우라면 전셋값과 상관없이 대출이 나온다. 금융당국의 가계부채관리 수단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서도 빠져있다.


이로 인해 전세대출 잔액은 지난 10년간 급증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잔액은 3000억원에 그쳤으나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말 36조원으로 늘었고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162조원으로 급증했다. 전셋값 조정으로 윤석열 정부에서 잔액은 전 정부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으나 신규 공급액 기준으로는 높은 수준을 유지 중이다. 특히 전국 평균 전세가격이 2016년말 이후 2억원대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전세대출 잔액은 5배로 불어난 상황이다.

지난해 5월 이후 전세가격 오름세가 1년간 지속되고 있다. 향후 전세공급 부족 전망도 나오면서 정부가 전세공급 위주로 대책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고삐 풀린 전세대출도 전세가격을 자극하는 주요인으로 지목된다. 김희곤 의원은 "전세대출이 서민의 주거안정에 그동안 기여한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재원의 한정성을 감안할 때 좀 더 절실한 임차인에게 우선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대차 시장에서 이미 월세가 전세를 추월한 만큼 전세대책이 아닌 월세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민대출' 맞아? 억대 연봉자 10억원 강남 전세도 "승인"




전세대출 보증 조건/그래픽=김현정
전세대출 보증 조건/그래픽=김현정
전세대출이 2016년 이후 5배 이상 급증한 이유는 대출조건이 느슨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정부 보증으로 나가는 대출임에도 다른 정책모기지처럼 소득 기준이 없다. 1주택자도 받을 수 있고 전세가격이 20억원을 넘어서도 나온다. '서민대출'이라는 굳건한 인식에서다. 급증한 전세대출이 전세가격을 밀어 올리고 매매가격을 자극하면서 급기야 전세사기까지 유발하자 시민단체가 나서 "전세대출 보증을 제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뒷짐을 졌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전세대출 신청을 받으면 전세보증 기관인 주택금융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서울보증보험으로부터 대출액의 90~100%의 보증을 받아 대출을 실행한다. 전세대출 가능 여부는 결국 보증기관의 전세대출 보증 조건을 충족하냐에 달린 셈이다.

3개의 보증회사는 정부가 지분을 갖고 있거나 공적자금이 투입된 회사다. 보증회사별로 4억~5억원 한도의 전세대출 보증을 해 주고 있는데 보증 대상이 되는 전세보증금 기준은 좀 다르다. 주금공과 HUG는 7억원 이하 전세에 대해 보증을 해주지만 보증료가 상대적으로 비싼 서울보증은 전세가격 기준이 따로 없다. 3개 회사 모두 1주택자에게도 보증해 준다.

주금공 기준으로 보면 2018년 1주택자의 부부합산 소득이 1억원 이내일 경우만 보증을 해 줬다. 2019년에는 9억원 초과 고가주택에는 보증이 제한됐다. 하지만 이 같은 조건은 2023년 이후로 대부분 사라졌다.

전세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정부도 전세보증 개선 필요성을 절감했다. 2018년 정부는 여당과의 합의를 거쳐 보증 기준을 연소득 7000만원 이하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없던 일"로 돌렸다. '갭투자'가 집값을 계속 끌어 올린 2021년에는 고가전세에 보증 제한을 검토했으나 역시 제도화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전세대출=서민대출'라는 등식을 깨는 게 정부로서도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묻지마' 전세대출이 세입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집주인에게 유동성을 공급하고 전세사기 문제를 키우는 주요인이 되면서 인식이 차차 달라지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정택수 부장은 "전세제도는 전세를 내놓은 집주인은 매매가격이 오르면 이득을 보는 반면 세입자는 전세보증금을 떼일 위험을 떠 안아야 하는 제도"라며 "궁극적으로 집주인이 목돈을 빌리는 셈인데 이자는 세입자가 내고 보증은 정부가 해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세보증은 결국 막대한 세금부담을 야기한다. 고소득자나 유주택자에게도 무분별하게 전세대출을 확대하는 것을 일차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신축 빌라에 '혹' 했다가 '헉'…"느슨한 전세대출, 전세사기 키웠다"





전세대출을 이용한 전세사기 사례/그래픽=이지혜
전세대출을 이용한 전세사기 사례/그래픽=이지혜
최근 몇 년동안 급증한 전세사기의 근본 원인으로 부분별한 전세대출이 지목되고 있다. 전세대출 보증 조건이 워낙 낮다보니 이를 활용한 전세사기가 가능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세 대신 월세를 택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는 만큼 정부의 임대차 정책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경제만랩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수도권 소형 빌라 월세 비중은 54.1%로 집계됐다.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월세가 전세 비중을 추월한 것도 처음이다. 소형 빌라의 월세 거래가 늘어난 건 전세 사기 영향으로 분석된다.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월세 선호 현상을 부추긴 것이다.

전세사기 주요 피해자는 청년들이었다. 지난 23일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전세 사기 특별법'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피해자 1만7060명 중 73.71%가 20~30대였다.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전세대출이 전세사기의 자금줄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예컨대 건축업자인 임대인이 감정평가사와 분양업자, 공인중개사 등과 공모해 시세 1억원 주택을 이보다 비싼 1억5000만원에 전세 매물로 내놓는다. 신축건물은 거래정보가 없어 임차인은 임대인의 말만 믿고 보증금의 80%까지 전세대출을 받아 임대차 계약을 맺는다.

하지만 계약이 끝난 직후 임대인은 취득세 등 리베이트를 제공하며 바지 임대인에게 주택의 명의를 넘긴다. 바지 임대인은 자금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집값 하락 시 보증금을 반환 능력이 없다. 결국 임차인은 보증보험금이 나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마저도 가입되지 않은 임차인은 원래 집값보다도 비싼 1억5000만원이 보증금을 떼이고 거리로 내몰린다.

전세대출 보증 기준이 느슨하다보니 전세사기가 용이하다는 것이 전문가 시각이다.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이 연령대별 전세자금 대출 공급액을 분석한 결과 20·30대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지난해 9월 기준 20·30대의 전세자금 대출액은 26조5000억원으로 전체 공급의 65%를 차지했다.

정택수 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감시팀장은 "정부가 보증을 해주지 않으면 개인 신용으로 어떻게 돈을 빌릴 수가 있었겠냐"며 "특히 20대와 30대의 대출을 가능케 한 게 무분별한 전세대출 보증"이라고 지적했다.

전세대출 제도를 손보는 동시에 월세를 택하는 청년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정부는 여전히 전세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책에만 집중한다. 김현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를 선택함으로써 얻는 인센티브를 줄여나감으로써 전세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며 "월세 비용 소득공제 확대, 공공 및 민간 임대주택 공급 확대 방안 등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지원책도 종합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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