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도박 총판" 믿기 힘든 첩보…그 뒤엔 5000억대 불법 사이트[베테랑]

이윤호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수사관(경감)./사진=경기북부경찰청

"중학생들이 도박사이트 총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말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믿기 힘든 첩보를 입수했다. 관내 중·고등학생들이 도박에 사이트 운영 조직에서 총판으로 활동한다는 내용이었다. 통상 도박사이트 운영 조직에서 총판은 도박 참가자를 유인하는 '영업사원' 역할이다. 도박 참가자가 건 돈이나 잃은 돈의 일부를 성공보수로 받는다.


수사팀은 청소년들이 또래 학생들에게 불법 도박사이트를 홍보하며 돈을 번다는 소식을 접하고 실체 파악에 나섰다. 관내 중학생 탐문에서 시작한 수사는 약 4개월만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기반을 둔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도박사이트 홍보하던 중학생 3명…배후에 '거대 조직' 있었다
이윤호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수사관(경감·38)과 팀원들은 경기 의정부에 있는 중·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수사를 시작했다. '중학생 총판'에 대한 결정적 단서는 지역 법무부 보호관찰소에서 얻었다.

도박 중독 상담과 재활 프로그램을 듣는 학생들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중학교 2학년 남학생 3명이 한 도박 사이트에서 총판으로 활동한 사실을 확인하고 검거했다. 만 14세를 갓 넘긴 이들은 3~4개월간 텔레그램 등에 도박사이트 홍보글을 올리고 200여만원을 받았다.


이어 수사팀은 수사를 윗선으로 확대됐다. 휴대폰을 포렌식하고 계좌이용 내역 등을 종합해 경기도 모처에서 조직원 4명이 사무실을 차려놓고 활동 중이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지난해 12월 27일 수사팀은 이 사무실을 급습해 이들을 긴급체포했다. 체포된 조직원의 진술은 수사팀을 놀라게 했다. 이들 중 2명은 '한국지부' 사장이고 두바이에서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는 한국인 총책의 지시를 받아 활동했다는 것이다.

이윤호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수사관(경감)./사진=경기북부경찰청

검거된 조직원 1명은 두바이를 기반으로 운영중인 도박 사이트의 승률, 배당률, 입출금 내역, 포인트 충전과 환전 내역 등을 기록한 엑셀 파일을 가지고 있었다.

증거를 분석한 결과 두바이에서 조직을 지휘하는 A씨는 2018년 12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면서 회원 약 1만5000명으로부터 5000억원대의 도박자금을 챙긴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각종 스포츠 경기를 편법으로 중계하거나 경기 결과를 예측하는 유튜브 채널, SNS(소셜미디어)를 운영하며 적은 돈으로 고수익을 낼 수 있다고 홍보했다. A씨 수익금은 5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월에는 서울에서 한국 총사장 B씨와 청소년 12명 등 총 35명을 도박개장 및 범죄단체조직죄 등 혐의로 검거했다. 이 중 10명을 구속하고 A씨 등 두바이에 체류 중일 것으로 추정되는 조직원 9명을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을 통해 적색수배했다. 84억원에 대해선 기소 전 몰수·보전 조치했다.

도박 중독된 중학생들…잘못한 '어른들' 일망타진
이 수사관은 "아이들이 또래 아이들을 상대로 불법 도박사이트를 홍보했다"며 "도박에 중독된 학생들은 도박자금 마련을 위해 절도나 갈취 등 학교폭력부터 사기, 보이스피싱 수거책 아르바이트 등도 서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사태가 심각하다고 보고 이런 공간과 수익 구조를 만든 어른들을 일망타진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수사팀은 청소년 12명이 총판과 도박 가담자 등으로 검거된 점을 고려해 피해회복에도 노력했다. 필요한 경우엔 도박 중독 재활프로그램을 받게 했다. 이 수사관은 "경찰관으로 일하는 동안 수사를 계속하는 게 꿈"이라며 "피해자들의 피해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했다.

이윤호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수사관(경감)./사진=경기북부경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