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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워싱턴 출신' 女사장 억대 기부, 매출이…

[당당한 부자]<3-1>아너 소사이어티 첫 여성회원, 송경애 BT&I 대표

2013 당당한 부자 머니투데이 류지민 기자 |입력 : 2013.10.29 07:30|조회 : 24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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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애 BT&amp;I 대표
송경애 BT&I 대표
포춘코리아가 선정한 '2011 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40인',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최초 여성회원, 포브스 선정 '아시아 기부 영웅 48인'······.

송경애 BT&I 대표(52)의 이름 앞에 붙는 각종 수식어들이다. 최근 몇 년간 기부문화가 많이 확산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부는 '돈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 '나와는 거리가 먼 특별한 일'로 인식된다.

그래서일까. 화려한 이력을 처음 접했을 때 자연스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잘 나가는 여성 CEO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미스워싱턴 출신의 빼어난 외모와 맵시 있는 패션 감각, 25년 이상의 CEO 경력 등을 알게 된 뒤에는 '기부활동이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수단은 아닐까'하는 근거 없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직접 만난 송 대표는 이런 선입견을 단숨에 깨뜨렸다. "중학생 때 미국으로 이민가 어려서부터 기부 문화를 보고 자랐어요. 평소 나눔을 몸소 실천하신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단순히 돈이 많다고 해서 의무감에 기부를 하는 것은 아니에요. 나눌 때마다 행복을 느껴서죠. '즐거우니까' 제가 나눔을 실천하는 이유예요"

그녀는 '기부'라는 말보다 '나눔'이라는 말을 쓰는 게 좋다고 했다. 기부는 성공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베푸는 느낌이 든다는 이유에서다. "작은 것 하나라도 함께 한다는 의미로 '나눔'이라는 표현을 좋아해요. 돈 많은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나눔이니까요"

◇날마다 기부하는 여자
송 대표는 2010년 2월14일 자선단체에 '2010만214원'을 기부했다. 자신의 생일을 기념해서다. 숫자에 의미를 두기 좋아하는 그녀는 첫째 아들의 생일인 6월23일에 2010만623원을, 남편의 생일에는 2010만828원을 기부했다.

결혼기념일과 둘째 아들의 생일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기부를 실천한 송 대표는 그해 1억원 이상을 기부해야 가입할 수 있는 '아너 소사이어티'의 22번째 회원이자 첫 번째 여성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녀가 이처럼 특별한 방식의 기부활동을 하는 이유는 '기부의 생활화'가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기념일에 케이크를 사고 외식을 하기보다는 단돈 만 원이라도 기부가 필요한 곳에 뜻 깊게 사용하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해요. 금액이 크든 작든 의미를 부여해 기부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나라 기부문화를 한 단계 올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송 대표는 두 아들에게 생일선물을 해준 적이 없다. 대신 생일이 되면 아이들의 이름으로 기부를 한다. '받은 만큼 나눠야 한다'는 그녀의 가르침에 두 아들 역시 어려서부터 기부하는 습관을 익혔다. 이런 그녀를 주위 사람들은 '날마다 기부하는 여자'라 부른다.

송경애 대표가 지난 25일 '아름다운 쌀 나눔 서약식'에 참석해 쌀 나눔을 이어갈 것을 약속했다./사진제공=BT&amp;I
송경애 대표가 지난 25일 '아름다운 쌀 나눔 서약식'에 참석해 쌀 나눔을 이어갈 것을 약속했다./사진제공=BT&I
◇20대의 여사장, 성공한 사업가가 되기까지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기업인이지만, 처음부터 거창하게 사업을 벌인 것은 아니었다. 스물다섯이던 1987년, 송 대표는 달랑 가방 하나만 들고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원치 않는 결혼을 시키려는 아버지를 피해서였다.

그렇게 돌아온 한국에서 전 재산 250만원을 털어 여행 사업을 시작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아직 통용되던 때였으니, 새파랗게 어린 20대의 여사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했을 지는 굳이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능했다.

"남자 사장 나오라는 말을 듣는 건 예삿일이었죠. 젊은 여자가 외국인들을 쫒아 다니며 영어로 말을 거니 오해도 많이 받았어요. 무작정 외국인 학교에 찾아가 명함을 돌리다 쫒겨나기도 했죠. 오로지 실력과 서비스로만 승부하겠다는 의지로 쉬지 않고 부딪치다 보니 고객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1990년 1월, 여행사를 시작한지 2년6개월 만에 항공권 판매액이 100만달러를 돌파했다. 구두 뒷굽이 부러지는 줄도 모르고 발로 뛰어다닌 결과였다. 25년이 지난 현재는 BT&I는 2600억원대의 항공권을 판매하는 코스닥 상장기업으로 성장했다.

회사가 커 가는 과정에서 나눔의 크기도 커졌다. 직원들과 나눔의 기쁨을 공유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회사 내에서 컵라면을 팔아 그 수익금을 기부하고, 매년 연말에는 송년회 대신 장애인 복지시설을 찾아 봉사활동을 펼친다. 2011년부터는 전 직원이 급여의 1%를 기부하는 '나눔 펀드'를 조성해 운영 중이다.

◇행복한 CEO, 오드리 햅번을 꿈꾼다
25년 넘게 CEO 자리를 지켜오면서, 또 나눔을 실천하면서 남편은 송 대표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치과의사인 그녀의 남편은 10년 넘게 탈북자 정착시설인 '하나원'을 정기적으로 찾아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둘은 아너 소사이어티 부부 회원이기도 하다. 나눔의 기쁨을 이해하고 공유한다는 점에서 천생연분인 셈이다.

"기부를 할 때마다 남편의 도움과 이해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돼요. 아무리 좋은 일을 하더라도 배우자의 마음이 불편해지면 안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하는 일을 전적으로 믿고 지지해주는 남편과 결혼한 일은 제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죠"

송 대표의 꿈은 두 아들의 이름을 딴 'A&W Yoo' 복지재단을 만드는 것이다. 원래는 50세를 맞아 재단을 설립할 예정이었으나 아직은 준비가 부족하다는 판단에 60세 전후로 출범을 미뤘다.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남편과 함께 꾸는 꿈이기에 그녀에게는 더욱 소중한 꿈이다.

나이가 들면서 그녀에게는 새로운 소망이 생겼다. 바로 배우 오드리 햅번과 같은 삶이다. 오드리 햅번은 젊어서 할리우드의 스타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살았지만, 인생의 후반부에는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봉사와 나눔을 몸소 실천했다.

송 대표는 "오드리 햅번은 아름다운 배우로 기억되기보다는 정열적인 구호활동을 펼치다가 떠난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된다. 나도 그녀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아름다운 삶을 살다간 사람으로 많은 이에게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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